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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서태지 빠'들이 항의하던 하나의 방식 *2017년 5월17일 페이스북에 썼던 글. '빠질'을 하더라도 품위있게 하자는 의도로 적었던 듯. 기자로 일할 때 마침 서태지가 등장하여 기사를 엄청 많이 썼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갈라졌기 때문. 바로 그 분수령이 되는 결정적인 시점에 서태지가 등장했다고 봐도 좋겠다. 시대가 서태지를 만들고, 서태지가 시대를 만들었다. 서태지 기사만 썼다 하면 항의 전화 혹은 편지가 여러 통 왔다. 폭주는 아니고. 처음에는 기사 내용에 불만이 있는 어린 팬들의 항의쯤으로 여겨 귀찮아 하다가 차츰 생각을 바꾸었다. 항의는 진지했다. 내가 모르는 내용도 많았다. 물론 "울 오빠 왜 건드려" 하며 불만스러운 감정을 표출하는 어린 팬도 일부 있었으나, 진지하고 차분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 더보기
기자의 아주 오래된 습관 혹은 관성 *2017년 5월15일 페북에 썼던 글 직장 떠난 지 십수년 만에 SNS에서 만난 어느 선배가 과거 동료 선후배들에게 "사회 생활하기가 쉽지는 않았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기자 그만두고 난 뒤, 여느 모임에 가면 거의 혼자 떠드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난 척이겠다. 현역 때는 훨씬 더 했을 것이다. '뭐가 잘 났다고 그랬을까?'를 생각하면 두 가지였다. 매체에 종사하니 크든 작든 갖게 되는 영향력. 또 하나는 정보 혹은 뉴스를 남들보다 먼저 알고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 한편으로는 일부러 거칠게도 행동했다. 때로 그럴 필요가 있었다. 남들에게는 그런 것이 안하무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기자를 그만두었는데도 그 '관성'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것이.. 더보기
기자라고 다 밥 얻어먹고 다니는 거 아니다 *과거 페이스북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씩 옮겨올 예정. 물론 읽을 만한 것들로. 페북의 단점 가운데 하나가 예전에 썼던 글이 묻힌다는 것. '과거의 오늘'에 뜨는 글을 보고 여기에라도 옮겨오면 좋을 듯하여. (2020년 5월13일) 기자들이 얻어먹고 다닌다고들 아시는데, 다 그런 거 아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취재원 만나면 얻어먹지 말고 사줘라"라고 하는 부자 회사를 다녀서, 누구를 만나도 사는 편이었다(올리면 회사에서 취재비가 나왔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밥을 사려고 했다. 기자가 밥값을 내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불안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멀리서 나를 만나러 왔는데 밥도 못 사게 하냐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좋은 일로 취재하는 경우가 그랬다. 그래도 내가 꼭 밥을 .. 더보기
윤여정의 뼈있는 수상소감 방금 배우 윤여정 씨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발표가 있었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나도 그걸 직접 보려고 기다렸다. 상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분위기가 될 지경이었으니 윤여정의 수상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나와 소감을 이야기하는 윤여정. 텔레비전으로 보던 후배가 찍은 사진. 정작 내가 기다리며 기대했던 것은 수상 발표보다는 수상 소감이었다. 윤여정이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도 물론이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이는 인터뷰에서든 수상소감에서든 늘 독특했다. 한국 배우, 그것도 한국의 나이 든 배우로서 대단히 특별했다는 것이다. 윤여정의 말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바로 유머 코드. 윤씨는 어느 인터뷰에서든.. 더보기
동유럽 여행 : 도시들 3 처음에는 프라하, 비엔나, 부다페스트 세 도시에만 가려 했었다.어느 사이트에서 보니 프라하에서자동차를 빌려서 체스키 크롬로프와할슈타트를 경유해 비엔나로 들어가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도시 간의 거리를 보고 선뜻 결정했다.멀어야 300km 정도. 토론토에서 뉴욕을 자동차로 자주 갔던 터라몇 시간 운전은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다. 체코 플젠에서 필스너 맥주공장을 투어하려 했으나오후 1시가 가장 빠른 시간이었다.예약을 미리 하는 바람에 괜히 돈만 날렸다. 프라하에서 자동차를 빌렸다.폭스바겐 골프.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차를 타고 움직인 나흘이었다. 체스키 크롬노프에서 1박하고오스트리아 할슈타트로 바로 넘어갔다. 오스트리아 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할슈타튼는 과연 명성 그대로 예뻤다.호수의 나라 캐나다.. 더보기
동유럽여행 : 도시들(2) 여행을 준비하면서 방문할 도시에 대한 조사를 꼼꼼하게 하지는 못했다.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예전처럼 "반드시 봐야겠다"는 것도없었다. 그저 도시의 풍경을 보고그곳에서 하나만 건져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함께 가려했던 분이 팁을 주었다.호프온호프옵, 그러니까 도시 투어버스를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해당 도시의 유명한장소는 다 가니까,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내리면 된다고 했다. 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계속 돌아다니니까. 프라하에서는 이틀,비엔나와 부다페스트에서는 하루씩을끊었다.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는함께 하면 싸게 해주었다. 부다페스트의유명한 다뉴브강 크루즈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라하에서는 첫날, 둘째날한 번씩밖에 타지 않았다. 두 개 코스가있었는데, 그냥 앉아서 한 바퀴를 돈 다음적당한 곳에 내려서 .. 더보기
기형도 시인 '동생' 유재복 시인 기형도 시인과 관련한 일로재작년에 한국에 갔었다.유재복 시인을 그때 처음 만났다. 기형도 시인이 내 형의 대학 친구여서형들이 대학 1학년 때이던 1979년,그러니까 내가 고교 1학년 때부터나는 형들과 어울렸다.어울렸다기보다는, 한 방에서 뒹굴었다.거의 매일.형과 함께 쓰던 방에 날이면 날마다그 문학회 사람들이 놀러왔으니까.그래서 기형도 시인의 대학 서클 선후배는아래 위 5년 정도까지 웬만하면 다 안다.직접은 몰라도 이름은 안다. 누구 글은 어떻고 저떻고 하며엄청나게들 떠들어댔으니까. 형도 형은 중앙고 절친들까지 우리 집에 데려와서 같이 놀았다.그래서 알게 되거나 나도 친하게 된 이들이 병준 형, 상현 형 이런 사람들이다. 형도 형이 죽고, 내가 기자가 되어서는,그가 몸담았던 신문사 사람들을 알게 되.. 더보기
하키 단일팀 구성의 핵심 문제였던 것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결혼한 친구가 있었다. 복학생이었으나 결혼이 빨랐으니, 어른들 눈에는 신랑 친구들도 모두 '애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친구 한 명이 판소리로 축가를 불렀다. 춘향가 중 한 대목. 조금 길기는 했으나 부채까지 촤~악 펴가며 열심히 해서 보기에도 좋았다. 구글에서 빌려온 이미지 사진. 소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주례 목사가 찬물을 끼얹었다."그만 하세요."친구는 머쓱해져서 그냥내려올 수밖에 없었다.나는 목사가 무도·무례·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랑의 기도를오래 오래 했다. 물론 나중에라도축가를 일방적으로 멈춘 데 대한사과나 해명은 없었다. 이후에도 나는 그와 비슷한 일을 몇번 겪었다. 매체에서 문화면 일을담당하면서. 주례 목사가자기 기도는 중요시하면서'젊은 애'가 하는 축가 따.. 더보기
맑은 글씨 예전, 대학의 서클실 책상에는 늘 공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어느 서클이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공책은 만능 잡기장이었다.공지도 하고, 낙서도 하고,마음속 말도 쓰고,싸움도 하고, 요즘 말로 썸도 타고. 나는 그 공책에서 이런 내용을가장 좋아했다."학사로 술먹으러 간다.쓸쓸한 사람은 와라.""이대앞 000 시낭송회에 가니우제는 이 글 보면 와라.""이번 금요일 00여대와 공동합평회. 필참!" '언집' 혹은 '언설'이라는 이름이붙은 잡기장이었으니,거기에는 온갖 소리들이 난무했다.우리 서클은, 게다가 문학회여서모두들 강철 같은 '이빨'을 자랑했다.글로 서로를 물어뜯으며상처를 주고 받는 것은 예삿일. 모두가 예민하고 자존감 드높았으나그래도 그때는 피투성이가 되도록싸우고 상처를 주고 받아도요즘 페이.. 더보기
폴란드 맥주 지비에츠와 마리아 할머니 김장을 하면 돼지고기를 푹 삶아서 먹게 마련.여기서 술이 빠져서는 안 되는데,예전에는 소주를 하다가술이 점점 약해져서 이제는맥주로 대신한다.그 대신 맥주를 아주 차갑게하면 생김치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 맥주를 사러 갔다가폴란드 맥주를 발견했다. 오랫 동안 잊고 있던 맥주. 맥주 가게에 들어서면늘 고민을 하게 마련. 그러나 이번에는 고민없이바로 집어 들었다.그동안 이 맥주가 내 눈에 띄지않았던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폴란드 맥주 지비에츠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1월경이다.캐나다에 살러온 지 7개월쯤 되었을 무렵 나는 빵집에서빵굽는 일을 했다. 아토피/비염/분노조절장애/원기회복 캐나다산 천연생약 기능성건강보조제 http://cafe.daum.net/drkimcanada/QXTI/1 폴란드 사람이 주.. 더보기
예쁜 글씨에 대한 로망 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의진 선생님이 예쁜 글씨에 대해 쓴 페이스북 글을 읽으며 든 생각. 어릴 적부터 예쁜 글씨, 잘 쓴 글씨에대한 집착이 좀 심했다. 계기는 칭찬.어쩌다 중학교 1학년 때 생물 공책 필기를잘했는데, 그걸 본 선생님이"잘 썼다"고 칭찬했기 때문.물론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임한 여자 선생님이었다. 이후, 필기보다는 예쁘게 잘 쓰기에 매진.국어 선생한테는 노트필기가 "대학생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고교내 전시회에서 내 공책이 몇 권이나 전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후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공부보다는 노트 필기가 먼저였다.결국 노트 필기가 문제가 아니라, 예쁜 글씨로 쓰기에 대한 욕망, 로망이 그만큼 컸던 거다. 그런데 그게 열심히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대학에 갔더니.. 더보기
'10대 가수'에 못 넣어 정말 아쉬운...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라는프로그램이 있었다.고교시절 방학 때는 거의 매일 들었다.그냥 재미있었다. 김기덕의 버릇이자 특기는 날이면 날마다 하는 "총결산".상반기 총결산, 하반기 총결산.방학 총결산, 1년 총결산...청취자 집계에 의한 총결산이라고 했으나개뻥 같았다. 자기가 좋아하는가수를 엄청나게 밀어서 한국에서빅스타로 만들기도 했다. 스모키의 왓캔아두는 날이면 날마다나왔다. 바바라 누님의 우먼인러브는팝 역사상 최고의 명곡이다.총결산을 통한 방송 횟수에 따르면. 김기덕 흉아가 그렇게 한 이유를 알겠다.바로 그게 재미를 줬던 거다. 이걸 하는 사람도 이게 참 재미있다.내 맘대로 뽑고 순위를 막 정해버리면 되니까. 그래서 대한민국 10대 가수를 정했는데,아깝게 탈락(김기덕의 표현이다)한 가수가너무나 많다.. 더보기
내 맘대로 뽑아본 해방 후 '대한민국 10대 가수' 어느 분이 페이스북에서광복 이후 대한민국 10대 가수를 '친구'들과뽑다가 중단했다고.5명(팀)까지는 합의했는데산울림에서 의견이 갈라지는 바람에. 그런데 댓글을 달다 보니 퍽 재미있다.하여 말나온 김에 내 맘대로 재미삼아 뽑아본다.한때 DDR 담당 기자하면서 기사를 꽤 쓰기도 했는데...이 쪽 기사 쓸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10대 가수 선정은 순전히 주관적임. 시대순. 남인수 광복 이후 1950년대는 잘 모른다. 찾아보니 현인· 남인수 시대.내 아버지 때문에 꼽은 가수.노래라고는 가곡을 즐겨 부르던 아버지가 남인수를 두고 "천하의 절창"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https://www.youtube.com/watch?v=Rq-en8QlBlc 다음부터는 나도 좀 안다. .. 더보기
윤이상 작곡 교가, 응원가 ◇…한 번도 동포 간담회 같은 데 가고 싶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워싱턴DC 간담회, 베를린 간담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문제는 저런 데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 누가 불러주지도 않고... 하긴 막상 오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 그냥 달려갈 것 같지도 않지만... ◇…미국에서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참배도 그렇고, 이번 윤이상 선생 묘소 참배도 그렇고,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벤트 기획이 참 치밀해 보인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으면 그걸 살려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이번에는 김정숙 여사가 음대 출신이라는 것까지 끌어들였다. 통영의 동백나무 식수 또한 범상치 않은 일. 38년 동안 고향 땅 밟지 못한 예술가의 묘.. 더보기
기형도의 연시에 대한 '술사준 여신'의 일기 글 공개 이틀 전 블로그에 올린 글 '나는 기형도 형의 안양 친구들이 참 좋다'에서 1982년 안양 수리문학회 시절 기형도 시인이 술값을 내준 여성에게 써주었다는 연시를 처음 공개했었다. 그 후 수리문학회 시절을 기형도 시인과 함께 보낸 문우 박인옥 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장이 귀한 자료를 추가로 공개. 선술집에서 술값을 내주고 연시를 받은 여성이, 그 소감을 자기 일기장에 적은 1982년 글이다. 이 여성은, 기형도 시인이 선술집에서 적어준 총 3편의 연시(연서)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번 공개한 것은 그 중의 한 편이다. 1982년 방위병 신분이었던 기형도 시인은, 근무지인 안양에서 수리문학회 문우들과 어울렸다. 가난한 문청들은 커피도 시키지 않고 다방에 죽때렸고, 선술집에서는 외상 긋기는 다반사. 그래도 남자들에.. 더보기
나는 기형도 형의 안양 친구들이 참 좋다 3년 전 가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 기형도 시인과 생전에 교류한 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중앙고 절친들, 연세문학회 선후배들, 중앙일보 동료 기자 들을 두루 만나다가 안양 수리문학회에 이르렀다. 1982년을 전후해 형도 형(나는 고교시절 형을 처음 만난 이후 늘 이렇게 불렀다. 이렇게 부르는 게 편하니 양해 바란다. 형도 형은 내 형 성석제와 대학 친구이다)은, 자취를 감췄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랬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다가 발길을 딱 끊은 건데, 모르긴 해도 안양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서울(대학)과 잠정적으로 절연한 듯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놀러오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나로서는 많이 궁금했다. 형도 형네는 독산동 우리 집에서 388번 버스를 타고 기아대교 종점까지 가서 15분 정도.. 더보기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품격 몇년 전, 은사님을 뵈러 갔다가 우연히 백건우 윤정희 씨 부부와 식사한 적이 있다. 백건우 이 분, 품격과 여유, 유머까지 두루 갖춘 신사였다. 이 분이 아래와 같이 반응했다는 것이, 그래서 놀랍다기보다는 당연해 보인다.그런데 기자는 단어 좀 골라서 쓰면 안 되겠나. '난입' 이라니... '진풍경'은 또 뭐고? 백건우씨의 품격을 칭찬하면서 어떻게 이런 단어를 떠올리냐고. 나 같으면 '자연스러운' 혹은 '뜻깊은' 해프닝 정도로 쓰겠다. 노컷뉴스 사진 공연 중 깜짝 등장한 자폐성장애인…백건우 반응은2017-06-11 19:21제주=CBS노컷뉴스 유연석 기자메일보내기댓글(5)841크게보기작게보기인쇄'지적장애인을 위한 백건우 음악여행' 중 진풍경 … 백건우 "아이들의 표현"공연 시작한 지 17분 정도 지난 무렵.. 더보기
29년 만에 공개하는 고 기형도 시인의 편지 지난 3월7일은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89년 3월8일 정오 무렵 전화를 받은 아버지께서 놀란 얼굴로 "형도가 죽었다는구나" 하셔서 저는 그 소식을 처음 듣게 되었지요. 그날 제 아버지는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빈소가 차려졌는데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며 신부님을 모시러 가야겠다고 급히 나가셨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내 형 성석제와 대학시절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1979년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을 드나들어서 우리 식구들과도 형 못지 않게 친했습니다. 당시 형도 형은 시흥군 소하리에 살았습니다. 신촌에서 버스를 타면 우리 집이 있는 독산동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석제 형이 없어도 집에 찾아와 놀다가곤 했습니다. 놀아도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집안 어른들.. 더보기
꽃피는 3월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과거 기자로 일할 때, 처럼 무엇을 선정하고 소개하는 일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때로는 '이런 걸 해마다 왜 하나?' 싶기도 했으나, 소개를 한 인물(혹은 책)들이 거장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뿌듯해 했습니다. 금방 떠오르는 인물이 1990년대 초에 선정했던 '21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안치환도 생각나고, 신경숙 김영하도 떠오르네요. 독자들로서도, 인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터이고 책의 경우는 선별을 해주니 믿고 찾는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의 경우, 해마다 선정된 책을 다 사는 독자들도 있었지요. 감사하게도... 그 정도의 비중은 아니겠으나 졸저 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좋은책선정위원회가 뽑은 3월의 읽을 만한 책 가운데 한 권이 되고 보니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더보기
오마이뉴스의 빼어난 서평 제주올레 걸을 땐 '울 양말' 준비하세요[서평] 제주올레 26코스 완주기 14.02.25 15:21l최종 업데이트 14.02.25 15:21l김현자(ananhj)크게l작게l인쇄lURL줄이기200메일오블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올레길 화살표와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코스를 벗어나 얼마를 걸었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다. 되돌아서 가는 길이 참 멀고 지루하다. 제주도에 온 이래 처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확 밀려온다. 길에서 벗어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세상사에서 얻은 마음의 상처를 곱씹느라 길을 놓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저 순하게 용서하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다시 바다가 보인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세상살이 그 무엇보다 즐겁다. 제목과 간단한 설명만으로 가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