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쾌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흔히 쓰는 '낭보'라는 말이 이 일처럼 잘 어울리는 것도 경험한 적이 없다. 축구로 말하자면 월드컵 우승에 버금가는 일이지만 문화적 파장으로 보자면 그보다 훨씬 윗길에 놓인 대선이다.
환갑 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해 데뷔작 출간을 앞둔 내 친구가 내게 소식을 전해왔었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대박!!!"
이 친구와 나를 포함한 내 친구들은 꼭 45년 전 "우리나라는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할까?"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고교 1학년생 문예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였다. 그때, 누가(아마 지도교사였던 전신재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우리 문학을 세계에 소개할 마땅한 번역자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 말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때 들은 그 말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을 보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가와바다 나스야리의 <설국> 번역자는 일본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서 일본 말과 글을 거의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가톨릭 신부님이었다고 했다.
친구가 전해준 소식을 들으면서 "대박"이라는 용어를 다시 생각했다. 저 말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떤 말로 우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쁨과 충격을 표현할 수 있을까도 생각했다. 대박이란 용어는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단 한 번 제대로 사용된 용어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잠시 했다. 그만큼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박이다.
그렇다고 내가 노벨문학상 하면 끔뻑 죽는 독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1990년대말 기자 시절, 나는 "노벨문학상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국 문학이 발전한다" 혹은 "세계화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적은 적이 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문단에서 일부 힘 쓰는 인사들이 노벨상 받기 운동을 벌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한국의 대학에 들어와서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들을 주로 만났었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지적했던 것이 한국 문학의 노벨문학상 집착이었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상이냐는 이야기다.
그들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문학 자체로 보자면 맞는 말일 수 있다. 상을 받았다고 하여 한국 문학 내용 자체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있던 문학의 색깔이 변하거나 깊이가 더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문학의 모습은 그대로이다. “상을 주거나 말거나, 소설가 시인은 개의치 말고 좋은 작품 쓰면 된다” “작품이 좋으면 상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받는 게 상이지 문학이 상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가” 하는 소리였다.
그들의 말은 맞고도 틀리니 묘하고 문학적이다. 수상을 목적으로 글을 써도 안 되고, 수상을 백날 노래해봐야 받을 수도 없지만 일단 받기만 하면 한국 문학은 달라진다. 그것도 대내외적으로.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문학 자체 때문이 아니라 문학을 둘러싼 세상과 환경 때문에 그렇다.
지금 한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강이라는 작가가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독서 시장이 들썩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식은 캐나다 매체도 하루종일 전할 만큼 큰 뉴스였다. 한국 관련 뉴스를 캐나다 방송에서 하룻 동안 꼬박 들려주는 예를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각국에서 한강 작품 출간이 봇물을 이룬다는 것은 당연한 이이다. BTS 말고 이런 예를 본 적이 없다. BTS야 산업적 성격도 있으니, 문학으로 말하자면 그 방면으로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인기나 수상을 만들어낼 만한 어떤 기획사 혹은 기획자도 없다. 문학에서 발휘되는 힘이란 오로지 작가와 작품의 것이다. 작품이 인기를 끌게끔 만드는 것은 작품 외에는 없다. 문학에 방시혁이 있나, 박진영이 있나.
우리는 우리를 잘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른다. 우리의 위치가 세계에서 어느 정도 되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문학이나 한국 문학이나, 문학의 우열을 따질 수는 없으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우리의 문학이 세계의 보편 문학이 될 수 있을가에 대한 확신은커녕 믿음조차 없었다. 번역이 문제라고들 하는데, 좋은 번역가를 만날 수나 있을까,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지지 못한 상태였다.
한강은 좋은 작가다. 노벨상에 확인했듯이 세계 톱 클라스의 작가이다. 다음부터는 이것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오해는 마시라.
한강이 수상했으나, 나는 한국 문학이, 한국 독자가, 한국의 대중문화(요즘 들어 K문화로 일컬어지는)가, 한국 경제가, 나아가 한국의 모든 것이 이 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그 모든 것 때문에 세계 톱 클래스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한강이 대표로 상을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부단히 쌓아올린 경제와 문화, 국민 의식, 이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한국의 힘과 이미지. 한강의 수상에는 이런 바탕이 깔려 있다.
한국 사회가, 정치가 왜 그렇게 삐걱대고 사람을 힘겹게 하는지 아는가? 합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1970년대와 2020년대가 공존하는 사회이다. 두 문화는 격렬하게 부딪힌다. 화해란 있을 수가 없다. 화해는커녕 서로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어느 공공기관장은 “한국의 국민의식은 영국의 1940년대보다 못하다"고 최근 말했다. 그 사람 말은 맞다. 절반만. 2000년대 한국의 초압축 발전에 뒤쳐진 문화 지체자들이 한국 사회의 절반 가까이 된다. 그 말을 한 사람을 포함해서. 한국이 너무 빨리 변해서 문화 지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한강은 앞서가는 사람들, 변화시킨 사람들, 2020년대를 2020년대 의식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강이 쓰는 재미없는 소설, 한강이 소설 속에 투영하는 어둡고 아픈 소재들, 그 어렵고 재미없고 가슴 아픈 소설을 사서 읽은 한국 독자들이 있다. 그 독자들이 한강을 한강이게 했다.
한국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경제가 그렇고, 특히 문화가 그렇다. 한국의 문화는 한국을 고급스럽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전세계에 각인했다.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에 눈을 돌렸다. 데보라 스미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독학으로 공부한 한국어로 한강을 발견하고 영어로 번역했다.
손흥민과 차범근을 비교해보라. 차범근 갑툭튀였으나 손흥민은 한국의 역량이 만들어낸 선수이다. 한국 축구협회와 홍명보가 왜 욕을 그렇게도 많이 먹는가. 우리가 가진 역량도 모른 채 1970년대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한강은 데보라 스미스를 만난 이후 빌드업을 가장 잘한 한국 작가이다. 맨부커상을 받았고 매디치 상을 받았다. 상을 받으니, 이름이 알려지고, 독자들이 무더기 무더기 생겨났다. 그 유명한 상들은 세계 독자들로 하여금 한강에 대한 믿음을 갖게 했다. 21세기에 여러 방면에서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한국에서 그들은 소설가를 발견했다.
한강의 소설은 독자를 괴롭힌다. 그것은 곧 독자를 진지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한다. 번역자도, 독자도 한강의 소설을 곱씹는다. 쓴맛이 단맛보다 훨씬 깊다. 블랙커피가 더블더블보다 훨씬 깊듯이.
노벨문학상으로 화룡점정했으니, 이제 한국 독자나 세계 독자는 죽으나 사나 한강의 어둡고 독자를 괴롭게 하는 소설을 ‘좋은 소설'로 꾸역꾸역 읽게 될 것이다. 소설 나부랭이가 아니다. 소설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줄 아는가. 소설은 원래 그런 거다. 아니, 그런 소설들이 상을 받았고, 그런 소설이 널리 읽히라고 상을 주는 거다. 앙드레 지드, 사르트르, 카뮈, 애니 아르노. 금방 떠올릴 수 있는 프랑스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 누구를 봐도 재미는 없다.
이제 한국 문화는 한강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사람들, 독자들은 괴로워하며 한강 소설을 읽을 것이다. 문학은 원래 사람을 괴롭히는 지적 산물이다. 그런 지적인 경험을 하는 독자들은 달라질 것이다. 이런 소설이 소설이다, 이런 것이 문학이다라고 알게 될 것이다. 블랙커피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은 더블더블로 돌아가지 못한다.
독자가 달라지면 작가들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 문화가 달라진다. 고사 직전이었던 출판계가 살아나는 것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껍데기는 가라”라고 일갈할 필요도 없겠다. 껍데기는 저절로 소멸할 것이다. 한강은 바로 그 일을 해냈다.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근대 이후 네 작가를 꼽는다. 홍명희 박경리 이문구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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