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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캐나다에서 심형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심형래 감독의 영화 <라스트 갓파더>를 보았다. 얼마전 토론토의 영화관에 가서 한번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마음을 먹기 전에 극장에서 내려져 인터넷에 오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심형래 감독은 지난번 <디워> 때부터 미국에서 제작을 하고, 북미 진출에 큰 뜻을 둔 터여서, 게다가 한국에서 예술성과 흥행에 대한 논란이 워낙 많이 일어난 터여서 남다른 관심을 가졌더랬다. 충무로 출신이 아니어서 핍박을 받는다는 이미지가 있고 보니 관심을 더 갖게 된다(나중에 알고보니, 충무로에서 심형래 정도의 제작비를 따내는 감독도 드물다고 하여 배신감을 갖게 되었지만... 어떻든). 더군다나 내가 사는 토론토에서 개봉된다고 하니, 어느 면에서는 대견하다고 볼 수도 있던 터였다.




  영화를 보니, 심형래는 북미 지역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영화가 성공한다면, 아니 성공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지구 사회 정의에 어긋난다고 나는 믿는다.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어느 것 하나 '괜찮은 구석'이라고 봐줄 만한 게 없었다. 시나리오를 비롯한 모든 것이 어정쩡하거나 수준 이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도대체 이런 수준을 가지고 북미에 거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작품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이다.

  한국에서 먼저 개봉했으니 굳이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것은 없겠다. 다만 캐나다에서 볼 때 과연 저런 영화가 통할 수 있을까라고 제작자와 감독이 잠시라도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같은 코미디 영화라도 재키찬(성룡)의 영화는 이곳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이곳의 웃음 코드를 제대로 파악해 핵심을 찔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성룡의 영화가 줄거리뿐만 아니라 웃음 코드에서도 보편성을 가진 반면 심형래 영화는, 심형래 세대인 내가 봐도 웃기지 않는다. 20년 전에 봤던 바보 연기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배경만 달리 했다 하여 새롭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면 그것이야마로 바보 같은 생각이다. 야구 방망이를 들고 머리를 치는 광경은 과거 <변방의 북소리>의 변주인데, 이제는 우스운 것이 아니라 안쓰러워 보인다. <변방의 북소리>에는 임하룡이라도 있었다. 그 임하룡은 지금 절대 그런 연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바보 캐릭터라 해도 심형래의 영어는 차마 들어주기조차 민망했다. 말을 제대로 하면서 바보 캐릭터로 웃기는 것과 말 자체를 아예 못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웃겨도 말을 하면서 웃겨야지, 바보처럼 말을 제대로 못해 웃길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또한 바보 같은 생각이다. 심형래는 연기를 하기 전에 영어 발음 공부부터 제대로 했어야 했다. 영구와 대사를 주고 받는 여자 주인공의 연기가 어색한 게 아니라 참 안타까워 보일 지경이었다. 주고 받는 대사가 어쩌면 그리도 안맞을 수가 있는지... 



  한국에서야 심형래라는 이름과 잡다한 방송 출연으로 인한 홍보 때문에 관객이 조금 들었어도 캐나다에서 그런 프리미엄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작품 외적인 모든 것은 무시되고, 철저하게 작품 딱 하나만 가지고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원더걸스와 추신수를 아무리 내세운다 한들, 이곳 관객들이 한국과 연결시킬 리 만무하다. 왜 그들을 출연시키고 언급하는지, 이것이 도대체 한국을 겨냥한 것인지 북미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없게 했다.

  추신수가 한국에서만큼 유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왔는지 일본 또는 대만에서 왔는지 별로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아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원드걸스는? 이 영화를 본 사람 가운데 원드걸스를 몇명이나 알까?

  한국에서도 통하지 않을 웃음 코드를 가지고 북미 시장을 노렸다는 것은 만용이라기보다는 무지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런 것이 통하리라고 판단했다는 것 자체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북미에서 성공했든 실패했든 이번 작품이 갖는 의미는, 감독 심형래의 역량을 정직하게 드러냈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그동안 감독으로서의 '대접' 문제가 이슈가 되었고, 영화계 약자로서의 동정표도 적지 않게 얻었다. 그러나 작품이 허접하면 대접이고 동정이고 있을 수가 없다. 어떤 장르든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말을 하게 해야지, 작품 외적인 것으로 말을 하게 한다면 물건 자체에 하자가 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라스트 갓파더>는 그것의 가장 좋은 사례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