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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원칙주의자 김영희 PD가 원칙을 깼으니...



  한국 연예에 관한 글을 쓰고 싶지 않은데 또 쓰게 됩니다. 과거 김영희 PD를 여러 차례 인터뷰한 인연이 있고, 또 그의 감각이 탁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이는 최근 <나는 가수다>라는 '탈락' 프로그램으로 인해 홍역을 치렀고 본인이 가장 먼저 탈락하는 비운을 맛보았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김영희 PD만큼 스타성을 가진 이는 별로 없습니다. PD로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가 가진 힘이라는 것은 단단한 도덕성과 원칙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웃음과 그 웃음을 넘어선 교훈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원칙 자체가 고답적이기는 하지만 그 답답함을 웃음과 눈물로 덮어가면서 분명한 자기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영희 PD는 원칙주의자입니다. 원칙을 지켜도 아주 완고하게 지키는 
타협을 모르는 원칙주의자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너무도 쉽고 빠르게 프로그램에서 물러났습니다. 10초 가수가 아니라 가수의 가수다움, 곧 원칙을 보여주겠다는, 김영희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실력파 중견 가수들이 긴장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은 압권이었습니다.

  1등을 차지한 윤도현은 왜 1등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락밴드의 리더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듯 노래가 아닌 음악을 들려줍니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나온 피아니스트도 얼마나 근사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일이 꼬일려고 그랬는지, 하나씩 하나씩 이상하게 꼬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노래에 관한 한 1인자로 알려진 김건모가 꼴찌를 했는지, 김건모는 왜 그렇게 성의없이 했는지, 한 명이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 왜 가수들은 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는지, 일이 참 이상하게 비비 꼬입니다.

  문제는 김영희 PD가 그 패틱 상태의 분위기에 젖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지 않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겁니다. 드라마를 찍다가 주인공이 울면 현장 스태프까지 모두 눈물을 흘리듯이, 현장의 분위기라는 것은 현장에 없는 사람들이 모르는 정말 무시하기 힘든 묘한 것이 있습니다. 글을 써도 현장에 다녀오면 확 달라지는데 하물며 공연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김영희 PD의 패착은 바로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것입니다. 원칙주의자답게, 현장의 상황이 어떠하든 냉정하게 원칙을 지켜야 함에도, 발표를 하는 순간부터 본인부터 뭔가 조금 울먹 한다는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결국은 순간의 판단 미스로 가장 좋은 프로그램이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 이후에도 일은 왜 그리 꼬이는지, 김건모가 "그냥 여기서 끝낼께"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그게 안되었습니다. 한번 꼬이기 시작하니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고, 결국에는 MBC도 패착을, 김건모도 패착을 두었습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새벽 4시에 신호등을 지키는 자동차를 찾아내어 양심냉장고를 주는 스타일이 김영희 PD의 장기입니다. 본인에게는 냉정해도 세상에는 냉정하지 않는 것이 그의 스타일입니다. 그이는,작가 김수현이 비야냥댔듯이, 그 현장 분위기에서 냉정하게 원칙을 지키며 잘라버리는 스타일이 절대 못 됩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지 못하는 스타일인 것입니다. 

  여기서 원칙이란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냉정하게 원칙대로만 가는 게 원칙의 본질인지,  아무도 상처 받지 않고 즐겁게 가는 게 원칙인지... 그러나 김영희 같은 원칙주의자가 세상이 말하는 원칙을 깬 것은 사실입니다. 비극이라면 김영희가 가진 원칙과 세상이 요구하는 원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휴머니즘을 늘 바탕에 깔고 있는 김영희의 원칙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