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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지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국인 참 많습니다 며칠 전 미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블로그가 좋은 글 하나를 올렸습니다. 제목은 였습니다. 그 내용은 30대 중반에 미국에 온 한국 유학생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유학생이 대학의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처음에는 친절했던 동료 학생들이 왕따 분위기를 만들고 여기에 교수까지 가세해 까다롭게 굴었다, 이러한 따돌림 때문에 방황하고 좌절하여 목적했던 '미국에서의 전문직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우려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73년 제가 깡촌에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더니, 서울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촌놈에게 사투리를 가지고 놀리던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청운의 뜻을 품고 온 미국 대학에서 코피 터뜨`려가며 공부하는 '늦깎이 한국 유학생'에게 본토의 학생들이 저런 텃세를 부린다는 것.. 더보기
캐나다 영주권자, 한국군 자원 입대 하는 까닭은? 지난 주말 이곳 토론토에서 만나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가 불쑥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큰 아이를 한국군에 입대시킬 예정이다." 아이는 한국으로 치면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다. 몇년만 지나면 군대 갈 나이가 된다. 이장희의 노래처럼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기에는 그 친구가 너무 진지했다. 아이가 원치 않더라도 기어코 보내고 말리라는 결기까지 느껴지게 했다. "너도 군대 생활 좋아서 한 거 아니잖아. 외국에 살면서 왜 굳이 한국에 보내서 군대 생활 시키려 하는데?"라는 질문에 단순하게 대답했다. "요즘 한국 군대에서는 배울 게 많은 것 같더군. 예전처럼 생고생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는, 한국군 복무가 아이에게 인생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학교라 여기는 듯했다. 또한 한국군에서의 경험은 .. 더보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노무현'과 '마이클 잭슨'의 닮은 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토론토의 신문 방송은 온 종일 추모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문의 톱 기사로 나온 것은 물론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는 그의 죽음과 업적에 대한 해설 및 평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FM 음악 방송에서는 그의 음악과 더불어 "마이클은 영원히 우리 마음에 살아 있다"는 멘트가 하루 종일 흘러나옵니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다룬 캐나다 최대 일간지 . 퀸시 존스, 샐린 디옹, 마돈나 등 팝계 수퍼스타들의 추모사와 슬퍼하는 팬들의 모습,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성취 등을 해설 기사로 다루었다. 평소 이와 같은 뉴스거리가 생길 때마다, 의견을 나누는 중국계 캐네이디언 Jae와 오늘 오전에 만났습니다. 일 때문에 만났으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 더보기
마이클 잭슨을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오늘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알았습니다. 요즘은, 왜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들이 이렇게 줄줄이 사망하는지, 적잖게 서글퍼집니다. 최진실 때가 그랬고, 노무현 때 또 그랬고, 마이클 잭슨까지... 마이클 잭슨은 내 청춘의 불행한 아이콘이었습니다. 반정부 시위 분위기가 대학가의 대세를 장악하던 1980년대 초반, 마이클 잭슨은 나의 눈에 전두환과 더불어 등장했습니다. 전두환 씨에 대한 적개심을 구체적·본격적으로 품게 되던 대학 1학년 시절 마이클 잭슨은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한 앨범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1982년 마이클 잭슨은 바로 이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좋아하면서도 내놓고 좋아할 수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여 마이클 잭슨은 내 청춘에서 아주 아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