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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서 더 위대한 농구스타 피셔 이곳 날짜로 6월14일 밤에 NBA 최종전이 끝났습니다. 아시는 대로 LA 레이커스가 우승했고, 필 잭슨 감독은 10번 우승한 최초의 명장 반열에 올랐고, 코비 브라이언트는 파이널에서 처음으로 MVP가 되어 MVP 그랜드슬램(정규리그, 올스타전까지)을 거머쥐었다고 하는군요. 올랜도 매직과 벌인 최종 시리즈에서 역시 분수령은 올랜도에서 벌어진 네번째 게임이었습니다. 드와잇 하워드를 앞세운 올랜도는 힘이 넘치고, 슛은 정교했습니다. 2차전에서도 99% 이긴 게임을 놓치고야 말았지요. 올랜도는 홈경기인 3차전에서 이기고 역시 홈경기인 4차전에서도 여세를 몰아 승리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LA는 11초를 남기고 골밑에서 고의 파울을 하여 하워드에게 쉬운 골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3점차로 리드하던 올랜도는 하워드가.. 더보기
막걸리가 발렌타인보다 인기있는 이유는? 지난 토요일 저녁 우리 집에서 가든 파티가 있었습니다. 파티라고 하여 특별한 것은 아니고 뒷마당에 탁자를 펴놓고 음식과 술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바베큐 틀에다 갈비와 꽁치를 구워 뜨거운 채로 바로 먹는 맛과 재미를 느낄 수 있지요. 우리 집에서는 갈비와 꽁치, 부침개, 밥만 준비했고, 나머지는 Potluck으로 했습니다. 열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각자 음식과 술을 싸오는 Potluck을 하면 언제나 풍성합니다. 술 또한 모두가 쭉 뻗을 만큼 충분한 양을 가져옵니다. 아주 넉넉하게들 가져옵니다. 캐나다이니만큼 물론 양주가 있고, 와인도 함께 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맥주입니다. 물이 많은 나라에서 나오는 좋은 물로 만들어서 그런지 맥주 맛이 일품입니다. 소주 또한 이곳의 리쿼스토어에서 살 수 있습니.. 더보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줄잇는다 지금부터 10여년 전 한국에서는 이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 직후인 1990년대 말에 시작하여 2000년대 초중반까지 그 바람은 계속 되었다. 나 또한 그 바람에 실려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이곳에 와서, 월드컵의 열기와 더불어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보수 언론은 "나라 경영을 잘못하여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된다"며 이민 바람을 당시 정부를 비판하는 소재로 적절하게 써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나를 포함하여 한국이 아까워 할 만한 인재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그때 많은 이들이 이민 보따리를 쌌는데, 가장 선호되던 나라가 바로 캐나다였다. 캐나다 중에서도 최대 도시 토론토로 한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토론토 풍경. 숲과 맑은 공기가.. 더보기
캐나다 · 미국 교수들도 시국선언 "韓 민주주의 후퇴 우려한다" 2009년 한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캐나다 미국의 교수들도 동참했다고 합니다. 한국인 교수뿐만 아니라 한국 사정에 밝고 관심이 많은 외국인 교수들도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그 내용을 소개한 토론토 한국일보의 기사 내용 전문입니다. 사노맹 사건으로 복역했던 백태웅 교수의 이름이 눈에 띕니다. 캐나다의 대표적 대학인 토론토대. 빅토리아 칼리지 건물이다. 토론토대 송제숙 이은정 황미로스 교수가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1990년대초 시인 박노해씨와 더불어 사노맹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백태웅씨는 현재 밴쿠버의 명문 UBC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번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한국 민주주의 후퇴 우려" 캐나다교수들도 시국선언 동참 북미대학 24.. 더보기
'시국선언' 기사 가치가 이 '연예인 연애' 보다 못해? 교수 시국선언에 관한 한국 미디어들의 보도를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1980년대 중반 피로감에 젖어 있던 당시 민주화 운동의 불꽃을 다시 지핀 것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교수들의 시국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에게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대단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명박 정부 들어 '괜한 오바'로 MB와 함께 묶여 동네북이 되었던 고대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그 숫자와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데 관심이 많이 갔기 때문입니다. 시국선언과 관련한 사진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한겨레에서 겨우 보게 된 사진입니다. 시국선언을 하고 나오는 성대 교수들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서는 대학사회 지식인들의 시국선언 .. 더보기
고대 교수들, 몇배는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고대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는 뉴스가 지금 막 올라온 것을 보았습니다. 교수 131명이 선언문에 서명을 했군요. '고대 교수들, 고민 참 많겠다'는 글을 써 올렸더니, 어느 재학생이 '재단과 학교당국이 MB 편이니 재임용 탈락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기우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대학 교수들에 비해 부담을 2~3배 더 가졌을 것입니다. 큰 부담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대학에 비해 많은 교수가 서명을 했군요.  부담만큼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하여 선언의 효과나 상징성은 어느 때보다 클 것입니다. 대학은, 좌파가 되었건 우파가 되었건 권력과 늘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대학이 권력과 붙으면 야합이 됩니다. 고대.. 더보기
뉴욕 화가 조숙진의 화실을 방문했습니다 뉴욕은 세계 미술의 메카라고 합니다. 미술로 말하자면 뉴욕은 세계의 수도인 셈이죠.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작가들은 뉴욕 시장을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미술뿐 대다수의 예술 장르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경쟁이 얼마나 피터지겠습니까? 그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 남아 세계 미술을 이끄는 한국 작가들이 적잖게 있습니다. 조숙진씨도 그 중의 한 명입니다. 뉴욕에서 유학한 뒤 소호의 유명 화랑 오케이해리스에 픽업되어 20년 동안 전속 작가로 활동중입니다. 전속 작가란 것은 영구직을 얻은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5월말, 에 기고하기 위해 막 떠오르는 젊은 작가를 인터뷰하러 뉴욕에 갔었습니다. 뉴욕에 들른 김에 조숙진 선생의 맨해튼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실로 10년만의 일입니다. 사람 좋은 조선생.. 더보기
고대 교수들, 고민 참 많겠다  절친이자 후배인 K가 "제발 한국 정치 이야기 좀 그만 쓰라"고 충고를 해왔다. 한국 정치에 대해, 속된 말로 쥐뿔도 알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이민을 오던 해에 이곳의 일부 한인들이 정치를 비롯한 한국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코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관한 정보를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아무리 상세하게 전해 듣는다 한들, 몸을 한국에 담그지 않은 이상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느낄 수가 없는데, 알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면 그 규모를 한눈에 볼 수 있겠다"고 썼더니, 어떤 분이 "전체는 볼 수 있으나 그 뜨거움은 느낄 수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정확한 지적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외국에 살면서 한국의 상황에 대해.. 더보기
맨해튼 '한국 명물' AM Records, 역사 속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 32가 코리안타운에 있던 AM Records가 지난 5월31일 문을 닫았습니다. 임차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5년 가까이 맨해튼 K타운을 지키던 전설의 레코드 가게가 역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레코드 가게가 '웬 전설?'이냐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AM Records는 전설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전설. 뉴욕의 한 복판에서 한국 음반과 영화 DVD를 판매했다는 사실. 주 고객이 누구냐 하면,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DVD가 아니더라도 영화나 드라마를 '무료로' 구해볼 통로를 여럿 알고 있습니다. 굳이 돈 주고 사지 않습니다.또한 음악의 경우도 직접 다운 받거나 무료로 다운 받는.. 더보기
盧 죽음 평가했던 외국인 "이명박은 정치인이 아니다"  지난번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 국민'을 지목했던 Chinese-Canadian을 오늘 또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불쑥 이명박씨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이명박씨는 기업가이지 정치인은 아닌 것 같다." 편의상 그의 이름을 J라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듯이, 그는 중국 출신의 엘리트입니다. 학력 학벌이 좋다하여 엘리트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사, 특히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고 객관적인 눈과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J는 재작년 대통령 선거 당시 누구보다 이명박씨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더랬습니다. 샐러리맨들의 신화라는 사실에서부터 청계천 복구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습니다. 기업가로서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해 당연히 기.. 더보기
유인촌 장관, 일용이 반만 닮으세요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325071 아주 오랜만에 유인촌씨를 화면에서 보았습니다. 외국에 와서 산다 해도 인터넷 덕분에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지겹도록 볼 수 있는데, 그를 드라마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포털 사이트에 오른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 이가 내가 알던 바로 그 유인촌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학생에게 말하는 품이,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얼른 가서 공부해라, 뭐하러 고생하고 있니, 다 해준다는데…"라는 말의 내용보다는 말하는 태도에서, 브라운관에서 보이던 인상좋은 용식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 오만한 표정이 놀랍습.. 더보기
노정연씨의 '호화 아파트' 논의에 대하여... 4백개에 가까운 의견들이 올랐습니다. 의견들 많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격렬하게라도 의견을 나누는 중에, 어떤 의견이 사실에 더 가까울까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서프라이즈에 글 쓰신 분의 이야기는, 뉴저지에 10년 넘게 살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제의 아파트를 보고 출퇴근하는 제 친구의 이야기와 똑같군요. 쓰레기 매립지 위에 지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냄새까지 나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뉴저지 '터줏대감'이 찍어준 고급 아파트는 바로 이것이랍니다. 정연씨가 계약했다는 허드슨클럽에서 언덕 위를 쳐다보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맨해튼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대서양까지 보일 것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고급'축에 속합니다. 주거 공간으로 '호화' '.. 더보기
노정연씨가 계약한 아파트는 '호화'가 아니었다 지난 주말, 뉴욕에 갔다가 노정연씨가 구입했다고 하여 그 자금 출처에 대해 의혹이 불거졌던 문제의 아파트를 찾아보았다. 내가 찾았다기보다는, 뉴저지에 사는 친구가 "한국 언론이 이번에도 진짜 웃겼다. 재미나는 소설 한 편을 신문들이 썼다"고 하는 바람에 나 또한 '웃기는 소설'을 보고 싶어 들렀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 한국 언론은 노정연씨가 2년 전에 계약했다는 뉴저지의 아파트로 도배를 했었다. 그 핵심 내용은 △노정연씨가 뉴저지의 부자 동네에 있는 '호화' 아파트를 구입했고 △자금 출처가 의심스러우며 △잔금을 치르지 않고 계약 상태로 어떻게 지금까지 '홀드'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자금 출처 못지 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호화'라는 수식어였다. '호화'는 서민 대통령을 표.. 더보기
노대통령의 죽음, 외국인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 이곳 토론토에서 평소 일 관계로 자주 만나는 중국인 남매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단한 엘리트입니다. 30대 후반의 누이는 베이징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30대 초반의 남동생은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워털루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들을 엘리트라 부르는 까닭은, 그들이 가진 학벌이나 학위 때문이 아닙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식견이 남다른 데다, 분석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좀 오랜만에 만났는데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도 충격이 매우 컸다고 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죽었다고 보는가?" "그는 정직하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정직하지 않다면 벼랑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 더보기
백조는 목욕탕에서 왜 헤엄치는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받은 첫 느낌은 ‘예쁘다’였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 모니터들은 갖가지 예쁘고 재미나는 영상을 쏟아내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이 오선지 위에서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고무줄놀이를 하는가 하면, 파란색 실선들이 두 기둥을 감아 올리며 화면을 가득 채워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천장에서 프로젝트로 쏘아 만든 전시장 바닥의 화면을 보면 분홍색 꽃잎이 하늘에서 툭, 툭, 떨어진다. 제목이 인데 꽃잎 치고는 조금 작고 무거워 보인다. 전시장 왼쪽에 마련된 ‘비디오 상영관’에 들어가면 스크린 위에 좀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1980년대에 유행한 텔레비전 CM송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요건 몰랐지, 요건 몰랐지? 0표 짜장면 0표 짜장밥.” 사우나의 냉탕에서 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 더보기
토론토 조문소에서도 사람들은 자꾸 웁니다 토론토 한국 총영사관과 한인회관에 노무현 전대통령 조문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일요일에 준비를 하고 월요일부터 조문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토론토 한국 총영사관은 아직 조기를 걸지 않았습니다. 조문소를 지키며 문상객을 받는 홍지인 총영사에게 물었더니 "장례식 날에 건다"고 했습니다. 빈소는 검소했습니다. 문상객이 가져온 꽃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총영사관에서는 조문객들로 하여금 국화 한 송이를 놓거나 향을 피우도록 했습니다. 조문객들은 이렇게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왔습니다.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적는 위의 두 분은 빈소에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 또한 고인께 절을 올리면서, 울컥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왜 문상을 갔으며, 왜 눈물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내려가는 중에도 .. 더보기
기자로서 돈 받고? 노무현처럼 죽고 싶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신문 방송 블로그 들을 통해 보고 들으면서 여러가지 감회가 생겨납니다.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크게든 작게든 변혁에 대한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노무현의 자결'은 바로 그 꿈의 좌절을 드러내는 뼈아픈 상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삐찔삐질 나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Dfg8-y72_RA&feature=related 편지로든, 블로그의 답글로든, 특히 외국에 사는 블로그 친구들이 몹시 우울하다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심경을 전해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정성'이라는 말을 퍽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진정성이 통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것이 왜곡되어 화살로 돌아오자 그는 죽음보다 더.. 더보기
'마녀' 노무현 '사냥' 당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것은 캐나다 동부 시간으로 22일 오후 8시께였다.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어, 텔레비전 자막에 노무현 사망 자막이 나오네?"라고 친구가 전했다. 충격. "대한민국이 불쌍하다"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 "폭동이 아니면 하늘(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신문사를 제어할 수가 없다" 같은 생각이 줄을 이었다. 지난 4월8일 위의 이미지를 붙인 노무현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bomnamoo0420.tistory.com/entry/노무현을-다시-좋아하게-되다 '노무현을 다시 좋아하게 되다'라는 제목을 붙였었는데, 그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었다. 다만 '부탁드립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두 마디 말의 진정성이 이역만리 토론토에까지 전해졌던 것 같다. 노무현은 .. 더보기
4 · 19 老혁명가, 토론토에서 영면하다 1957년 5월 5일 경무대(현 청와대) 앞 소요 사건을 아십니까? 건국 이래 학생이 주동이 되어 벌인 최초의 데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이승만 후보를 제칠 것으로 예상되었던 해공 신익희 후보가 급서한 후, 자유당에 염증을 느낀 야당 지지자들은 운구를 모시고 효자동 해공의 집으로 행진을 합니다. 경무대 앞에 다다랐을 때, 운구를 따르던 지지자들이 흥분하여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소요의 주동자들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합니다. 경찰은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총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960년 4월 혁명의 전조가 된 이 데모의 주동자는 당시 고려대 사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정국로였습니다. 정국로는.. 더보기
캐나다에 왜 한국 '난민' 신청자가 많을까? 얼마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E양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토론토의 '최강지' (는 한겨레의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선일보만큼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강 일간지라 할 만합니다)에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대서특필되었고, 그것을 보고 제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는 난민을 받아들여 이런 저런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으나, 이곳에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지원금과 교육 의료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남미 반정부군의 아내가 캐나다에 난민으로 넘어와서, 난민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을 자기 나라 '반정부 활동' 자금으로 써서 문제가 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난민을 모두 3명 만났습니다. 영어학교에서 만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