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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김민선 논란, 답은 명확한데 왜 싸우나? 한국 뉴스를 보니 배우 김민선씨의 미국산 쇠고기 관련 발언으로 논란이 다시 점화된 모양입니다. 쇠고기 수입업체가 김씨를 고소하였고, 모 국회의원이 공격에 가세했고, 모 배우가 반박에 나섰으며, 우익 논객이라 자처하는 모 인사가 재반박을 했다는 것까지 전해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산보다 더 위험하다고 알려진 캐나다산 쇠고기에 저와 가족이 100% 노출되어 있는 터라 미국산 쇠고기 논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캐나다는 심심찮게 광우병이 발견되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캐나다 정부당국과 언론은 광우병이 발견될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상세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바람에, 광우병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와도 이제는 모두들 심드렁한 편입니다. 좋게 말하면 광우병이 발생해도 당국의 '철저한 관.. 더보기
기자 구출...참 대단한 나라다, 미국은... 클린턴이 북한에 갔다고 했을 때, 빌이 갔는지 힐러리가 갔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누가 가긴 간 모양이다 싶었다. 빌이 간 것을 알았을 때도, 북한이 말을 안들으니 과거 지미 카터처럼 갔나 싶었다. 그런데 왠걸? 빌 클린턴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 기자 2명을 데리고 나왔다.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던 미국 시민들이다.  과거 미국은 한국전쟁 때 전사한 미군의 시신을 죽자하고 찾아 미국으로 운구해갔다. 자기 나라 국민이 해외에 나가 죽거나 다치거나 억류되면, 만사 제쳐놓고 일단 구해낸다. 기자들이 소속된 방송사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엘 고어 전 부통령은 구출된 기자들을 맞으며 "오늘은 미국인이 해(害)를 입을 위험에 처해 있으면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날"이라고 했다... 더보기
나도 유진박을 노예로 만든 죄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은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 소개된 그는, 당시 문화부 기자였던 내 눈에는, 처음부터 '천재'는 고사하고 '바이올리니스트'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천재'는 팔아먹기 위한 광고 카피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비극은 그가 진짜 천재였고, 많은 천재들이 그러한 것처럼 세상을, 더군다나 한국을 너무 몰랐다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의 나라를 따뜻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믿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텔레비전으로 연주를 보았던 것 말고,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간접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유진박을 인터뷰한 후배 기자가 그에게 한마디로 '뻑갔다'. 기사를 그렇게 쓰면 안되는데도 칭찬을 하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줄리.. 더보기
40대 중반, 2개월에 5kg을 빼다  오늘 아침 5마일을 뛰고나서 체중계에 올랐다가 '좋아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2~3주째 요지부동이던 75kg의 눈금이 73kg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하긴 75kg을 돌파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술자리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뛰는 것이 좋은지, 이틀 연속 뛰었더니 저울의 눈금은 정확하게 73을 가리켰습니다. 저울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어 저울에서 내려오니 눈금은 분명 0이었습니다. 10여년 전부터 달리기에 취미를 들인 이래, 이렇게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든 것은 처음입니다. 달리기를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담배를 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금연을 하면 몸무게가 6kg 정도 갑자기 불어납니다. 살도 뺄겸, 피 속에 들어 있는 니코틴도 땀으로 뺄겸 하여 달리기를 하였으나, 금연.. 더보기
공지영이 '부채386'보다는 낫겠다  며칠 전 토론토에 후배 한 명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바쁜 출장 일정 중에 2시간 정도를 빼 밤잠 줄여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씨원한' 캐나다 맥주가 이야기 중간중간 끼여 있었고…. 한국의 새로운 소식과 분위기를 전하는 후배의 말 가운데 '부채 386'이라는 용어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386이라는 용어에 대해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용어를 혐오한다. 첫번째 이유는, 386세대 전체가 마치 변혁 세력인 양 포장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그 세대의 대표를 '80년대 학번' 곧 대학생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출신이 아니면 최소한 386이라는 용어에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이 일찍이 지적한 바다). 어쨌거나 '부채 386'이라는 용어.. 더보기
김주완 기자께 보내는 편지 '블로그 운영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김주완 기자의 블로그 지상 강좌를 통해 블로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http://2kim.idomin.com/1028 친구인 안찬수가 통화하던 중에 소개해준 '김주완 김훤주의 블로그'는, 제 블로그의 스승이자 교과서입니다. 이 블로그를 만나기 전에는 블로그를 잘 알지 못했고, 또 블로그를 할 생각조차 없었거든요. 특히 김주완 기자께서는, 블로그 전문가로서 특강을 하고 계시니 가끔씩 올려주시는 그 내용 또한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직 돈은 안되었으나 제 블로그에 광고까지 달았으니까(돈이 좀 되면 기분 내면서 어디에 기부하려고 했더니, 조건이 안되는군요). 블로그를 하다 보니, 걱정되는 대목이 여럿 생깁니다. 김주완 기자의 강의에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 앞.. 더보기
고려대 교가는 '빨갱이 노래'인가 1979년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우리는 음악시간에 교가와 응원가를 배웠다. "얼싸~ 좋구나 빅토리 빅토리"로 시작되는 를 가르치던 음악 선생님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 이 노래 작곡자는 윤이상이라는 분인데, 지금 서독에서 세계적인 작곡가로 활동중이시다. 그 분이 작곡한 오페라 은 수십분에 걸쳐 기립 박수를 받았다. 밖에 나가서는, 학교에서 이 이야기 들었다고 절대 말하지 마라." 나는 음악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저 이야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1979년 봄, 철없는 고교 1년생들에게 윤이상씨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안기부에 끌려가 물고를 당하고 교단에서 쫓겨나고도 남을 행위였다. 그렇다고, 그 유명.. 더보기
네티즌의 벌떼 공격을 당하다 이 글 바로 직전에 쓴 ' 가요제를 나름 심사해보니…'라는 글을 올렸다가 이름 모를 사람들로부터 벌떼 공격을 당했다. 듀엣에다 신곡을 들고나온 프로그램의 형식이 재미있고, 내용 또한 기대 이상이어서, 나름대로 재미삼아 심사한 내용을 올렸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쓴 내 글을 바꾸지 않거나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무한 공격을 받을 뻔했다. 문제는 '당시에는 무명급이었던'이라는 수식어가 가수 윤미래의 이름 앞에 붙었다는 사실. 바로 다음의 글이다. 윤도현을 무색하게 만든 주인공들은 내가 보기에, 단연 윤미래(위 사진)와 이정현, 그리고 제시카였다. 이민을 오기 전에 한류 스타로 부상한 이정현은 인터뷰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무명급이었던 윤미래와 '소녀' 제시카는 '개인'으로는 처음 보는 무대였다. .. 더보기
노무현 추모공연, 부산대 아니면 자리가 없었나? ▲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 ⓒ 유성호 이원기 이원기 회장은 "이 순간을 위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면 서 "대학 측은 쓰레기와 수업차질, 정치 중립 등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불허했고 교직원들이 업무를 못 보게 했으며, '인세산성(부산대 '김인세' 총장의 이름으로 버스로 정문을 막은 것을 빗대 부른 말)'을 설치하고 경찰이 대학에 들어올 뻔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 측이 내세운 실제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그 어떠한 압력 때문인지 지금도 모르겠다"면서 "마음이 넓으신 총장께서 저희들을 교육시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가르치는 교육을 한 것이며, 민주주.. 더보기
외국에서 장사라는 것을 해보니…… 얼마전 서부에 사는 옛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3년 만에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그 사이 그 선배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선배는 이민을 온 후 비지니스(이민 사회에서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비지니스를 한다'고 표현한다)를 찾는 대신, 전문직을 얻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했었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취업을 하여 몇년 동안 직장에 다니다가,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비지니스를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이제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니, 비지니스가 제법 눈에 보인다고 했다. 그 선배가 장사를 한다는 것이 왠지 좀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비지니스를 하여 한 가정이 먹고 살 정도만 된다면, 벌이 하나만 따질 경우 웬만한 전문직 월급쟁이보다는 낫다. 원래 꼼꼼한 성격의 그 선배도 그것을 잘 따져본.. 더보기
개인 이메일 훔치는 검찰이나 검찰 욕하는 사람들이나… 외국에 살다보면, 한국이 어떨 때는 참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떨 때는 이해가 안될 정도로 '후지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사회나 모든 부문이 고르게 발전하기란 불가능하겠으나 한국은 부문 간의 편차 혹은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남의 나라가 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수십년만에 이루었으니, 이제는 정보화시대를 리드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부문간에 벌어지는 그 격차를 돌아볼 틈도 없을 것이다. 돌아볼 틈은 고사하고 과거에는 체면과 염치 때문에라도 반드시 지켰던 기본 상식과 도덕이 무너지는 '골때리는' 사태가 자꾸 빚어진다. 캐나다에는 아직도 편지 문화가 살아 있어서 우편배달부는 여전히 좋은 직업으로 대우 받는다. 우체통도 건재하고 51센트짜리 우표.. 더보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노무현'과 '마이클 잭슨'의 닮은 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토론토의 신문 방송은 온 종일 추모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문의 톱 기사로 나온 것은 물론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는 그의 죽음과 업적에 대한 해설 및 평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FM 음악 방송에서는 그의 음악과 더불어 "마이클은 영원히 우리 마음에 살아 있다"는 멘트가 하루 종일 흘러나옵니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다룬 캐나다 최대 일간지 . 퀸시 존스, 샐린 디옹, 마돈나 등 팝계 수퍼스타들의 추모사와 슬퍼하는 팬들의 모습,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성취 등을 해설 기사로 다루었다. 평소 이와 같은 뉴스거리가 생길 때마다, 의견을 나누는 중국계 캐네이디언 Jae와 오늘 오전에 만났습니다. 일 때문에 만났으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 더보기
"하바드 4년 장학생 남매를 이렇게 키웠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학부모의 화두는 자녀 교육입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진학, 졸업하고 빼어난 인재가 되어 사회에 진출할 때, 부모로서는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연년생 한국인 남매가 미국 하버드 대학에 4년 장학생(등록금 · 기숙사비 등 모든 학비 면제)으로 입학하여 토론토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사회에서 우리의 한국 자녀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아닌 남매가, 그냥도 아닌 4년 장학생으로, 다른 대학도 아닌 하바드에 입학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당분간은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작년 4월 아들 현진 군의 하버드 장학생 입학이 결정되었을 때, 아버지 배철원씨가 제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이 .. 더보기
한국언론은 '네이키드뉴스' 전도사로 왜 나섰나? 최근 한국 뉴스를 보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른바 '네이키드 뉴스'(일명 알몸 뉴스)가 한국에 상륙해 '서비스'를 시작했다면서, 그 뉴스가 시작된 곳이 캐나다라는 것이다. 어느 신문에서는 '캐나다 토론토'라고 썼다. 토론토라고? 캐나다 하고도 토론토에 8년째 살고 있는 나는 캐나다 네이키드 뉴스에 대해, 본 바는 물론 들은 바도 없다. 이곳의 유력 매체들이 뉴스거리라고 떠들기라고 했다면 그 쪽 방면에 남 못지 않게 촉수가 발달했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걸려들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같은 뉴스가 캐나다에도 있고,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한국 언론을 통해 처음 알았다.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 뉴스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철저하게 .. 더보기
유인촌의 문화계 인사, 촌티가 나도 너무 난다 오늘 진중권이 어느 잡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얼마전에 있었다는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자진 사퇴 등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이야기해놓았다. 그 내용을 보다 보니, 다른 곳도 아닌 문화예술계에서 어찌하여 이렇게 촌티를 못내서 안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인촌씨는 '촌티'도 일종의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외국 나와 살다보니 정권 교체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된다. 한국에 살 적에는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구도 때문에 정파에 대해 선과 악의 개념으로 생각했었다. 12 12와 5 17의 쿠데타 주역들이 전면에서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쿠데타 세력을 2대에 걸쳐 따르며 호가호위하던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 그 호가호위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바.. 더보기
아버지로서 더 위대한 농구스타 피셔 이곳 날짜로 6월14일 밤에 NBA 최종전이 끝났습니다. 아시는 대로 LA 레이커스가 우승했고, 필 잭슨 감독은 10번 우승한 최초의 명장 반열에 올랐고, 코비 브라이언트는 파이널에서 처음으로 MVP가 되어 MVP 그랜드슬램(정규리그, 올스타전까지)을 거머쥐었다고 하는군요. 올랜도 매직과 벌인 최종 시리즈에서 역시 분수령은 올랜도에서 벌어진 네번째 게임이었습니다. 드와잇 하워드를 앞세운 올랜도는 힘이 넘치고, 슛은 정교했습니다. 2차전에서도 99% 이긴 게임을 놓치고야 말았지요. 올랜도는 홈경기인 3차전에서 이기고 역시 홈경기인 4차전에서도 여세를 몰아 승리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LA는 11초를 남기고 골밑에서 고의 파울을 하여 하워드에게 쉬운 골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3점차로 리드하던 올랜도는 하워드가.. 더보기
'시국선언' 기사 가치가 이 '연예인 연애' 보다 못해? 교수 시국선언에 관한 한국 미디어들의 보도를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1980년대 중반 피로감에 젖어 있던 당시 민주화 운동의 불꽃을 다시 지핀 것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교수들의 시국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에게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대단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명박 정부 들어 '괜한 오바'로 MB와 함께 묶여 동네북이 되었던 고대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그 숫자와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데 관심이 많이 갔기 때문입니다. 시국선언과 관련한 사진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한겨레에서 겨우 보게 된 사진입니다. 시국선언을 하고 나오는 성대 교수들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서는 대학사회 지식인들의 시국선언 .. 더보기
고대 교수들, 몇배는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고대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채택했다는 뉴스가 지금 막 올라온 것을 보았습니다. 교수 131명이 선언문에 서명을 했군요. '고대 교수들, 고민 참 많겠다'는 글을 써 올렸더니, 어느 재학생이 '재단과 학교당국이 MB 편이니 재임용 탈락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기우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대학 교수들에 비해 부담을 2~3배 더 가졌을 것입니다. 큰 부담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대학에 비해 많은 교수가 서명을 했군요.  부담만큼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하여 선언의 효과나 상징성은 어느 때보다 클 것입니다. 대학은, 좌파가 되었건 우파가 되었건 권력과 늘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대학이 권력과 붙으면 야합이 됩니다. 고대.. 더보기
고대 교수들, 고민 참 많겠다  절친이자 후배인 K가 "제발 한국 정치 이야기 좀 그만 쓰라"고 충고를 해왔다. 한국 정치에 대해, 속된 말로 쥐뿔도 알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이민을 오던 해에 이곳의 일부 한인들이 정치를 비롯한 한국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코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관한 정보를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아무리 상세하게 전해 듣는다 한들, 몸을 한국에 담그지 않은 이상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느낄 수가 없는데, 알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면 그 규모를 한눈에 볼 수 있겠다"고 썼더니, 어떤 분이 "전체는 볼 수 있으나 그 뜨거움은 느낄 수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정확한 지적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외국에 살면서 한국의 상황에 대해.. 더보기
맨해튼 '한국 명물' AM Records, 역사 속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 32가 코리안타운에 있던 AM Records가 지난 5월31일 문을 닫았습니다. 임차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5년 가까이 맨해튼 K타운을 지키던 전설의 레코드 가게가 역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레코드 가게가 '웬 전설?'이냐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AM Records는 전설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전설. 뉴욕의 한 복판에서 한국 음반과 영화 DVD를 판매했다는 사실. 주 고객이 누구냐 하면,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DVD가 아니더라도 영화나 드라마를 '무료로' 구해볼 통로를 여럿 알고 있습니다. 굳이 돈 주고 사지 않습니다.또한 음악의 경우도 직접 다운 받거나 무료로 다운 받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