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보면, 한국이 어떨 때는 참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떨 때는 이해가 안될 정도로 '후지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사회나 모든 부문이 고르게 발전하기란 불가능하겠으나 한국은 부문 간의 편차 혹은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남의 나라가 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수십년만에 이루었으니, 이제는 정보화시대를 리드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부문간에 벌어지는 그 격차를 돌아볼 틈도 없을 것이다. 돌아볼 틈은 고사하고 과거에는 체면과 염치 때문에라도 반드시 지켰던 기본 상식과 도덕이 무너지는 '골때리는' 사태가 자꾸 빚어진다.
캐나다에는 아직도 편지 문화가 살아 있어서 우편배달부는 여전히 좋은 직업으로 대우 받는다. 우체통도 건재하고 51센트짜리 우표도 살아 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조차도 이제는 펜으로 직접 쓰는 편지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남은 것은 축하나 감사 카드를 보내는 정도일 것이다.
개인끼리의 내밀한 사생활 편지는 한국이나 캐나다나 공히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는 시대인데, (이)메일과 연관된 개인의 사생활 존중에 대해서는 한국과 그 외의 나라들은 하늘과 땅 차이의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한국은 돌연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아무리 국가기관이라고 하지만 개인의 편지를 훔쳐볼 권한은, 법 이전에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것이 전쟁중의 첩보전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재판정에서 법적 공방을 벌여야 하는 사안을 두고, 국가기관이 남의 편지를 허락없이 뜯어본다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요 명예훼손이다.
법을 수호한다는 국가기관이 남의 편지나 훔쳐보면서 증거랍시고 세상에 내놓고, 그것이 여론재판에 버젓이 이용되는 사회라면 야만의 사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남의 메일 훔쳐보았다고 이명박 정부의 검찰을 비난하는 이들도 욕할 자격이 없다. 아니, 이제 와서 욕하는 그들이 더 나쁘다. 그들 또한 야만의 시대를 만드는 데 큰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기관이 남의 편지를 훔쳐보는 일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양 방조하고, 오히려 즐기며 부추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집단 관음증에 도취되어 은근 슬쩍 검찰의 훔쳐보기에 동참하고 함께 즐김으로써 편지 훔쳐보기를 용인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결과적으로 격려해 주었다. 나아가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에게는 이메일 훔쳐보기 권한을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것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제 와서 내가 맞고 보니 무지하게 아픈 줄 알게 된 것이다.
신정아사건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던 나는, 그 사건에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이 응축되어 있다고 본다. 한 개인이 학력을 위조해 고위직에까지 오른, 사문서 위조로 구속조차 되지 않을 사건(변양균씨는 무죄 판결이 났으니 논외의 일이다)에 몇개월 동안이나 나라 전체가 흔들린 것을 보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어 보인다.
언론들이 사냥개가 되어 수개월 동안이나 뒤를 쫓고 파헤친 사건에서, 신정아와 변양균 씨를 결정적으로 옭아맨 것은 두 사람의 "뜨거운 관계"(당시에는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이다. 그 관계에 대한 증거물로 제시된 것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이메일이고, 그 이메일 공개로 변씨는 결정타를 맞았다.
그 이메일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에 문제가 된 <PD수첩> 작가가 앙앙불락하며 불만을 터뜨리듯, 검찰이 자기네에게 유리한 대목만 취사선택하여 슬금슬금 흘린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PD수첩> 작가는 검찰이 공식적으로 발표라도 했으니, 신/변 양씨보다는 훨씬 덜 억울해할 일이다.
당시, 검찰이 이메일 내용을 흘리며 두 사람이 '뜨거운 관계'라는 말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가짜 이메일 내용이 인터넷에 돌아도,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 하나도 이메일 훔쳐보기, 사생활 침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이가 없다.
두 사람이 뜨거운 관계든, 차가운 관계든 그들이 검찰에 의해 기소되는 것에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당사자(변양균씨의 부인)가 고소하지 않았는데, 왜 검찰을 비롯해 그 관계에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들이 나서서 뜨겁고 어쩌고를 떠들어댔는가. 왜 검찰은 그것을 흘려 사람들로 하여금 떠들어대게 했는가. 왜 지식인이라는 자들은, 지금에 와서는 이메일 훔쳐보기를 시끄럽게 비난하면서, 똑같은 사안을 두고 당시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가? 집단 관음증에 이어 집단 망각증에라도 걸렸나?
이메일을 공개함으로써 자행된 인격 살인 행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메일을 도둑질 당한 해당 작가와 그들을 지지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메일 망명을 하네 어쩌네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며 시끄럽다.
멀리서 내가 보기에 자업자득이다. '이메일 도적질'은 이미 3년 전에 당신들이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단 관음증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동조하고 즐김으로써 검찰에게 쥐어준 '전가의 보도'이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그 칼에 직접 맞아보니 이제서야 아픈가.
훔쳐보는 검찰이나, 지금에서야 앙앙불락하는 사람들이나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것은 똑같다.
2007년 9월초에 작성된 다음의 기사를 보라. 당시 검찰이 개인의 이메일에 대하여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노골적' '입에 담기 어려운 내용' 어쩌고 하는 검찰이 흘리는 말에 대해서는 왜 한 마디도 않다가, 지금 와서는 이메일 망명을 한다고들 난리인가. 어쩌면 검찰이 오히려 더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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