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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이민자의 숙명 '변방의 설움'


  지난 3월 한국에 다녀온 이래 한국에 대해 입을 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터넷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눈으로 보는 뉴스와 몸으로 느끼는 뉴스는 그 질감이 틀립니다. 한국에 가기 전에는 약간 찜찜하기는 했지만 한국에 대해 안다고 여겼습니다. 다녀오고 난 뒤에는 쉽게 알 수 있는 것마저도 진짜 아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민온 지 8년이 되고 보니, 이제 문화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변방의 얼치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조금 전 친구 김훤주와 통화하던 중에 최근 그가 블로그에 쓴 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너무 그라지 마라"라고 했지만 아무리 손사래를 친다 해도 '검사 스폰서, 연아 스폰서, 차이점과 공통점'(http://2kim.idomin.com/)이 빼어난 글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기 있는 블로그라 해도 블로그에만 두어서는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직접들 읽어보면 더 잘 알겠지만, 요는 이렇습니다. 

  얼마전 MBC 'PD수첩'이 검찰을 작살내려고 작심을 하고 방송한 검사 스폰서와 김연아의 스폰서를 '스폰서'라는 같은 말을 통해 들여다 본 것입니다. 일반인의 눈에는 언감생심 그 더러운 커넥션과 김연아의 밝고 아름다기 그지 없는 스폰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경상도 말로 "말또" 안되는 일입니다.  동음이의어처럼 들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동음동의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니, 김연아에게 자금을 합법적으로 제공하는 대기업 스폰서가, 검사에게 돈과 향응을 음성적으로 제공한 지방기업 스폰서보다 훨씬 더 큰 댓가를 얻게 되어 있습니다.

  가령, 삼성의 경우를 들어봅니다. 한국형 대기업답게 지난 몇년에만 해도 수많은 스캔들을 생산해냈습니다. 김연아가 삼성의 스폰서를 받기 위해 출연하는 광고는, 삼성의 스캔들을 희석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요, 되지 않을까요?  과연 에어컨 판매 증대에만 기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자는 겁니다. 

김훤주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

 김훤주는 섬찟하게도, 그 누구도 생각 못한 스폰서의 본질을 포착해냅니다. 나는 놀라웠고, 대견스러웠고, 부러웠고, 질투심을 가졌습니다. 공기를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탁견입니다. 시인으로 말하자면, 세상의 이면을 투시한다는 의미의 투시자(시인 랭보가 말하는 Voyant) 정도가 되어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나는 기쁘고 슬펐습니다. 김훤주가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 기뻤고, 내가 이런 시각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처지가 슬펐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을 일입니다. 문화와 분위기의 온도를 느끼지 못하는, 그저 차갑고 평면적인 컴퓨터 화면으로만 한국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사는 캐나다는 자세히 볼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뉴스의 사실은 알아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면과 이면 들이 얽혀 제조해내는 복잡다난한 세상이야기, 몸의 모든 감각으로 읽어내는 투시자가 되기 전에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세상의 세상다운 모습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변방에 사는 설움이란 이런 것인 모양입니다. 외국에 사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 설움입니다.

  김훤주의 글,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