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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미수다 베라 사건을 보면서 전여옥을 떠올리다


  

   한국 문화에 대한 비판을 책에 담았다 하여 한국 인터넷의 도마에 오른 <미수다>의 베라 '사건'을 지켜보면서 전여옥 의원(이하 직함 생략)이 쓴 책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15년 전, KBS 도쿄 특파원을 지낸 전여옥은 도쿄에서의 취재 활동과 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을 분석한 책 <일본은 없다>를 펴냈다. 그 책은 한국 서점가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30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지금도 한국 야구가 일본을 이기면 '일본은 없다'는 기사 제목을 붙일 정도이니 그 반향이 얼마나 컸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그 책이 초베스트셀러가 된 까닭은 '일본 때리기'에 올인하면서 한국 독자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없다>는 전여옥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며, 그녀의 오늘이 있게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나중에 남의 아이디어를 일부 가져다 썼다는 것이 재판에서 인정되어 체면을 왕창 구기기는 했지만….



  과거 이 책을 보면서, 나는 '후련하다'기보다는 참 답답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일상 생활문화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독설을 퍼부어대는 것으로 일관한 내용은 읽기에 몹시 불편했다.  한 나라의 생활 문화를, 그 문화가 만들어진 오랜 배경은 따져보지 않은 채, 이방인, 특히 일본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처지에서 바라보면서 비틀고, 꼬고, 씹고, 할퀴고 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나 또한 계속 욕을 해댄 기억이 남는다. 일본을 욕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꼴도 보기 싫은 나라라고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를 이렇게 사정없이 짓뭉개는 것이 몹시 거슬렸던 것이다.

   전여옥의 주장은, 일본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보는 눈에 또다른 색안경을 끼게 했다. 일본에 대한 감정 때문에 한국만큼 일본을 잘 모르는 나라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책은 일본을 더 모르게 만들었다. 

  한 가지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일본인들은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갈 적에 나갈 때 신기 편하도록 신발을 꼭 돌려놓는다는 것. 이것은 그들의 생활 문화이자 습관이므로 비판적으로 볼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서도 전여옥은 아주 '이상한 해석'을 내놓으면서 비판을 해댔다.

  인터넷 기사나 블로그에 오르는 한국 문화에 대한 '베라의 비판'은, 전여옥의 일본 때리기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전 글에도 썼듯이, 자기 개성을 찾기보다는 '유행'에 대단히 민감한 문화에 대해서는 이방인의 비판적 분석에 귀를 기울일 대목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두 필자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분석 대상으로 삼은 나라에서 1~2년 정도밖에 체류하지 않았다는 것, 자기 나라로 돌아가 본인이 겪고 느낀 그 나라의 생활 문화를 분석하는 책을 펴냈다는 것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두 필자의 다른 점은, 자기 나라에서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이다.  베라가 한국에 여행을 온 평범한 젊은이라면, 전여옥은 한국 최대의 공영방송사 KBS 도쿄 특파원이었다.  두 사람이 한국과 독일 사회에서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은 한 마디로 '게임'이 되지 않는다. 책을 펴낼 당시 사회적 지위와 그 지위가 담보하는 공신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일본은 없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반일감정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KBS 도쿄 특파원'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공신력 또한 독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유력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1년 남짓 체류한 젊은이가, 반한감정은커녕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별 관심도 없을 독일에서 <서울에서의 잠못 이루는 밤>을 펴냈다고 하여 <일본은 없다>와 같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예상하건대, 독일 출판계에서 기껏해야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정도만 알아주어도 출판으로는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겠다.

   두 필자 혹은 두 책이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비판의 대상이 된 양국 사람들의 반응이다. 

  전여옥의 책에 대해 일본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그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으나 일본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전여옥의 책을 <슬픈 일본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발간했다는 것으로 그 사람들의 반응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모질게 왜곡하고 비난, 비판했는데도 그 책이 번역, 출간되어 일본 서점의 서가에 버젓이 꽂힌다는 점이, 한국과 비교하면, 놀랍다. 이 한 가지만 보아도 일본은 없는 게 아니라 '일본은 있다.'

  반면, 베라의 책은 그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보았으나 어느 누구 한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고 그 내용을 요약으로나마 꼼꼼하고 정확하게 올려준 이가 없다. 그 책을 훑어본 몇몇 이들이 '한국에 알려진 사실과 다르다'고 써도, 필자가 '(애초에 알린 이가) 번역을 잘못했다'고 해도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바로 이 점이 두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1999년 어느 일본인이 한국에서 책을 출판하면서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베라의 책 또한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맞아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는번역 출판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마녀를 원한다. 우파든 좌파든, 보수든 진보든 마녀를 만들지 않고는 심심해서 살지 못하는 나라가 되어버린 듯하다.

  마녀가 되어 사냥을 당하는 바람에, 황우석이 가진 것을 다 잃었고, 황우석과 관련하여 <PD수첩>이 한때나마 광고를 다 잃었다. 신정아가 당했고, 노무현이 사냥 몰이를 당하다 목숨을 끊었다. 학교에서의 왕따와 같은 마녀를 만들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 살 수 없는 곳. 인터넷으로 여론 몰이를 하여, 그 사람의 진의와 관계없이 자기 감정에 취해 익명의 돌팔매질로 일단 죽여놓은 뒤 뒤도 돌아보지 않는 곳. 한국은 그런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쓰레기 같은 기사를 쓰면서 언론이라고 자처하는 일부 인터넷 매체와 기자와 기사들. 기자로서 전혀 훈련되지 않은 그들이 마녀의 화형식에 불을 지피는 원흉이다. 이번에는 베라가 마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