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인터넷을 하면서 매우 놀라운 경험을 했다. 지난 4월에 시작한 개인 블로그에 화제가 될 법한 글 한 편을 올렸더니, 하룻밤 사이에 무려 60만명이 내 블로그를 찾아왔다. 댓글도 500여 개 달렸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댓글로 치고 받는 광경은 낯설면서도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내가 사는 캐나다와 한국은 물론 프랑스 · 미국, 심지어 에콰도르에 사는 한국 사람도 접속해 들어왔다캐나다 토론토에서 올린 글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전세계 한국인 60만명에게 읽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과 맞닥뜨리다 보니, 한편으로는 흥분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났다. 글이 혹시 잘못되어 무슨 사고나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인터넷 네트워킹이 만들어내는 그 ‘거대한 새로움’을 어떻게 맞이하고 수용해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에 대한 고전적인 책임감 같은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전혀 뜻밖의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당혹스러운 적이 있을 것이다. 눈앞에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 같지 않은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인문사회학자와 자연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는 최신 주제일 터이다.

작가 신형섭씨는 인문 · 사회· 자연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이같은 새로운 주제를 예술로써 규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터넷 네트워킹이란무엇인가 ∆새로운 네트워킹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네트위킹은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나름대로 답하는 작업을 5년째 해오고 있다. 미로와 같은 인터넷 네트워킹 속에서 예술적 직관으로써 새로운 길 찾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9~611일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알판 갤러리에서 열린 신씨의 여섯 번째 개인전에는,  2005년부터 작가가 천착해온 작품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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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바닥과 벽에 설치된 두작품은, 얼핏 보기에 작은 나무, 곧 인공적으로 크기를 줄여 만든 분재 혹은 바다 속 산호를 떠올리게 했다. 연한 갈색 나무들은 뿌리로 연결되어 바닥에 펼쳐져 있다(<Rhizome>). 벽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을 동반한 검은색 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Rooted>). 벽의 나무 형상도 가는 줄기 다발로 서로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

진짜 나무들과는 달리, 형섭의 나무들은 숲을 이루지 않는다. 뿌리로 연결되어 길고 넓게 평면적으로 펼쳐질 뿐이다. 그 뿌리들은 똑같은 도형이 자동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듯 사방팔방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한편, 새로운 나무와 만나면언제든 적극적으로 접선한다.

작가는 생태 용어인 ‘리좀’(Rhizome · 근뿌리)이라는 개념으로 작품을 설명했다. 그가 만들어낸 나무, 곧 리좀과 그 뿌리 모양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개념의 인간 네트워킹을 형상화한다.

실제 나무의 뿌리는 수직 · 수평으로 뻗어나가지만 신형섭의 리좀은 수평으로만 펼쳐진다. 나무는 뿌리가 잘리면 바로 죽는 반면 신형섭의 리좀은 잘리면 잘리는 대로 다른 뿌리를 찾아 순식간에 접속, 재생한다비슷한 모양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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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School of VISUAL ARTS에서 공부한 신씨는 대학시절부터 작업해온 주제를 심화해 왔다고 했다.

대학시절 그의 관심사는 인공· 자연 · 예술이 서로 교섭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형상이었다. 그는 주변에 널려 있는 일상 물품에 인공적인 변형을 가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사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했다. 재료 속에 깃들어 있는 뜻밖의 자연물을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통해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199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작품 가운데 ‘모기’ 형상을 만든 것이 있다. 모기의 몸은 우산대로, 다리는 우산살을 구부려 만들었다. 부러져 버려진 우산이 작가의 손질이라는 인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기로 변형해 재탄생했다

버려진 우산에서 모기를 찾아내는 기발한 상상력. “오브제가 원래의 모양을 유지하는 동시에 화학적으로 변화하여 색다른 형상을만들어내는 것에 재미를 붙였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전혀 관련이 없는 오브제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꾸준히 변화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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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Fish>라는 작품이 있다. 야채를 삶는 구멍 뚫린 스테인레스 찜기가 해체되어 우산살과 더불어 거대한 고기로 탄생했다. 찜기는 고기의 몸통과 비늘이 되고, 우산살은 수염과 이빨이 된다. 찜기와 우산에서 물고기를 읽어낸 예술가의 상상력. 작가는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이 작업을, 마치피조물을 창조해내듯 느긋하게 즐기며 하는 듯했다. 재탄생의 과정을 즐기지 않으면 그 지난한 노동력을견딜 재간이 없어 보였다.

작가가 2005년부터 매달려온 인터넷 네트위킹에 대한 관심 또한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재료가 달라지고 개념이 좀더 추상화했을 뿐, 신씨는 인간의 존재양식과 삶의 방식을 급속하게 재편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킹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네트워킹에 관해 인문사회과학자와 자연과학자들이 연구하여 내놓은 해석을 흥미롭게 보아왔다. 다른 분야 과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내 작업은 인터넷 네트워킹이라는 새로운 인간 관계망의 의미를 예술적 직관으로 읽어내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 현상을 읽어낼 뿐만 아니라, 작가는 작품을 통해 네트위킹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먼저, <Rhizome>를 보자. 재료는 마()끈이다. 굵은 실과 같은 마끈 수만 가닥이 모여 한 다발이 만들어진다. 그 다발이 모여 나무 형상을 이룬다. 나무 형상은 포털사이트라 해도 좋고,파워블로그 또는 허브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무 형상을 중심으로 마끈들이 사방으로 펼쳐지면서다른 나무와 만난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1 1의 관계가 다자 관계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하룻밤 사이에 70만명이 몰려온 블로그를 보라!). 그 관계의 망은 눈깜짝할 사이에 무한대로 펼쳐져 나간다. 하룻밤에 지구 전체를 덮어버리는 거대한 관계 망이다.

<Rooted>는 또 어떤가. 전선과 전화선을 꼬아 만든 나무 형상 8개가 놓여 있다. 그 허브들은 전선과 전화선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에너지를 전달하든 정보를 전달하든, 그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연결 방법이다.

작가는 사물을 인공적으로 비틀어 개념의 화학적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인간의 몸과 나무의 뿌리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람의 핏줄이나 나무 뿌리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피와 영양분을 보낸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전달효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네트위킹도 점점 인간과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작가가 보기에, 과학이 제 아무리 발달한다 한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연의 모습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달은 말하자면 자연을 모방하기와 다름없다. 점점 더 자연을 닮아갈 뿐만 아니라, 닮지 않으면 안된다. 현대 과학문명이 지향해야 하는 ‘미래’는 바로 자연 상태의 과거’라는역설을 일깨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이나 사람의 몸은, 설사 그 일부가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금방 복원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콩팥을 하나 떼어내도 사람은 살고, 자연 또한 놀라운 복원력을 과시한다.  다시 말해 쿠션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닮지 않는 과학은 그같은 상호 보완 작용이나 쿠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연을 닮지 않으면, 극단적으로는 비극이 빚어진다. “콜롬비아호의 참사는 작은 나사 하나가빠진 데서 비롯되었다. 과학과 기계 문명이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닮아야 그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작가는 말했다.

작가가 ‘뿌리’의 연결을 통해 일깨우는 개념은 바로 ‘자연과 인간의 얼굴을 닮은 첨단 문명’이다. 효율성 때문이든, 그 본성 때문이든 인터넷 네트워킹도 결국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닮을 수밖에 없고 또 닮아야 한다는 얘기다. 닮지 않으면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파국을 초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명에 대한 신씨의 해석과길 찾기는 그동안 여섯 차례에 걸친 개인전과 야외 프로젝트, 그리고 수십 회에 걸친 그룹전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번 전시에도 두 점의 설치(혹은 조각) 작품과 함께 여러 장의 평면 작업으로 그 개념이 좀더 구체화했다. <뉴욕타임스> 등 유력 매체의 리뷰는 사물을 변형시켜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자연과 새로운 문명 앞에서의 길 찾기에 후한점수를 주었다.

신형섭씨는 오는 81일 개막하는 제2회인천여성비엔날레 조율전 (Tuning)남성작가로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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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미술> 2009년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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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다공작소 2009.08.04 0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 이네요. 먹이 화선지에 번지면 손을 활짝 펴잖아요.
    뉴런의 집합 같기도 해요. 굉장히 오타쿠적 작품인 것 같아요.

  2. 무터킨더 2009.08.04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 네트워킹.
    훌륭한 예술의 소재이기도 하네요.
    무시무시한 파워를 자랑하는
    신커뮤니티의 거물입니다.

    • 성우제 2009.08.05 0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는 바로 그것을 포착해냈더군요.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적인 얼굴을 해야 한다는 것.
      참 재미나는 발견이더군요.
      에술은 이렇게, 예술가의 직관을 통해 한 발짝 앞서가는
      게 있습니다. 좋은 예술가들은 바로 그것을 읽어내는 거죠.
      미술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입니다.

  3. 보라매 2009.08.06 19: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학자들의 탐구의 화두는 자연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자연과 가까워진다' 라는 말이 공감이 가는 이유입니다.
    대단한 사색입니다. 미술에서 과학으로의 사색이라...

    가까이 우리가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친 인간적 환경을 만들어낸 맥이나 그것을 모방해 발전시킨 윈도우즈...
    거기 담겨져 있는 사상이 바로 운영의 '자연스러움'이니까요.
    가장 기계적인것을 가장 자연스럽게...
    성공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