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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불법 DVD로 <해운대>를 보았습니다



  캐나다에 벌써 영화 <해운대>의 불법 DVD가 나돈다는 내용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주변 한국 사람들을 돌아보니, 역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많은 이들이 보았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떠서 돌아다닌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상영중인 영화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불법 DVD로 보지 않는 것이 정석이겠으나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플레이어에 넣고 보니 해적판은 역시 티를 확 풍겼습니다. 화면이 선명치가 않습니다. 선명치가 않을 뿐더러 스케일이 큰 장면의 그 스케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었다고 하나,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 장관이겠다 싶은 장면이 여럿이었습니다. 

  

나름의 감상평은….

  야구가 투수 노름이듯이 영화는 역시 시나리오 노름입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있다고 하나 감독이 얼마나 쫀쫀하게 그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기느냐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소설은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영화의 기본 또한 소설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운대>는 일단 시나리오의 스토리텔링으로 성공했다고 봅니다. 큰 세상 같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좁습니다. 이곳에서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Oh, Small World!"입니다. 알고 보면 세상은 정말 좁습니다. 몇 다리만 건너면 전세계 사람들을 다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묘하게도 인연이 얽히고 설킵니다. <해운대>는 그것을 잘 포착해 냅니다.

  아시다시피, 김밥 할머니가 박중훈 엄정화의 딸을 안아 목숨을 구한다든가, 호텔 변기를 뚫어준 뒤 가욋돈을 요구했다가 엄정화에게 퇴짜를 맞은 직원이 엄정화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그 딸이, 설경구 아들을 나중에 알아본다든가 하는 것에서도 인연 짜기에 골몰한 감독의 의도가 보입니다.

  유머와 비극, 곧 웃음와 눈물이 공존하게 하는 것도 이 영화의 큰 미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리 위에서 대형 철판이 떨어지는 와중에 저는 크게 웃었습니다. 마지막쯤에서 설경구와 하지원이 어머니를 찾이 결혼을 말씀드릴 때, 그 어머니가 설경구를 밀어내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슬픔의 대표적인 장면은 이민기가 스스로 목숨줄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꼭 그래야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구조원의 비장함을 보여주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박중훈과 엄정화가 딸을 보내고 난 후 죽기 전에 극적인 화해를 하고 포옹하는 장면도 눈물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약간의 신파, 곧 '뽕끼'를 넣은 대목은 마음에 들기도 하고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송재호가 자기를 원수처럼 여기는 조카 설경구를 구할 때, 박중훈과 엄정화가 극적으로 화해를 할 때, 이민기가 스스로 목숨을 버릴 때…. 뻔한 장면이지만 아프고 슬펐습니다.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보지 못했으니, 컴퓨터 그래픽이 만들어내는 스케일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뭣합니다. 그러나 작은 화면으로 보아도 돋보이는 광경이 여럿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는 줄 압니다. 제 눈에는 설경구의 '오버'가 눈에 좀 거슬렸습니다. 그의 연기가 일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인데, <공공의 적> 이래 그 일품의 코드가 비슷하여 조금 지겨웠습니다. 하지원은 이번에 새롭게 보았습니다.

  불법 DVD로 보게 되어 영화 제작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입니다. 토론토에서도 개봉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극장 가서 한번 더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