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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글을 쓴다는 행위, 그리고 이문구


이문구(1942~2003) 선생 : 이민 온 다음 해에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그의 진면목을 이제야 알게 되어 선생께나 나 스스로에게 면목이 없다. 이문구가 한국 문단의 산맥임을 나는 1970년에 출간된 단편집 단 한 권을 통해 알았다.





  이문구 선생의 글을 최근에 처음으로 읽었다. 명색이 문학가 지망생이었고,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창작은 아니지만 밥벌이를 위해서나마 글줄을 써온 터였다.

   그런데 이문구를 '처음'읽다니... 그런데 그게 사실이다. 나는 이문구의 소설, 그 중에서도 문투 자체를 불편해 했다.
 
    나남출판사에서 <관촌수필>을 새로 펴낼 때 이선생을 만나 인터뷰했으나 그때도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문체가 불편했고 사투리는 더 불편했다.  '사람들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읽길래 좋다고 하나' 생각했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 좋은 줄 알았고 그래서 이선생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내가 그 이선생의 글을 어떻게 썼는지 찾아보고 싶다. 찾아서 아래에 붙여 놓았다.

   비행기를 탈 때보다 독서하는 데 좋은 환경은 없지 싶다. 시간과 여건이 너무 좋으면 독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독서보다 더 재미나는 일이 많으니, 그것을 먼저 하고 싶다. 나는 독서를 취미로 하지 않는다. 하여 인터넷도 불가능하고, 근사한 사람과 대화 나누기도 어려운 환경이고, 또한 잠마저 오지 않는다면 독서하기에 괜찮은 조건이다.

  지난번 LA에 갈 적에, 비행기 취소, 이튿날 새벽 비행기 타기, 다음날 곧장 비행기 타기 등을 하면서 나는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한 번에 통독했다. 문장을 뜯어가며 읽었고, 문체를 음미하여 읽었다. 연작으로 이어지면서도 내용이 달랐고, 내용이 다르면서도 내용이 같았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은 없었고, 저마다 다르면서도 함께 호흡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 대목이 있었다. 그 지점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을 읽으면서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이었다. 2009년 초봄, 캐나다 토론토에서 자정이 지나도록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다가 술을 먹고 눈물을 뿌린 것도 아니고, 건조하고 메마른 상태에서, 그것도 비행기를 타면서 아주 피곤한 상태에서 그같은 감정이 끓어올랐다는 것은 이문구의 소설이 나에게 그만큼 힘있게 다가왔다는 얘기이다.

  <시사저널>에서 기사를 찾아왔다. 당시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책을 읽지 않는 흔적이 역력하다. 독자는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겠으나 내가 나를 속이지는 못한다.

  이문구는 내가 만난 대한민국 최고의 소설이다. 장편에 경도되어 있는 내가 요즘 단편에 푹 빠져 있는데, 단편의 힘을 처음으로 느꼈다. 단편 하나가 장편보다 더 힘이 세다면?

  나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겠다.

해학과 골계의 미학 속에 살아 숨쉬는 토속어

소설가 이문구 문학전집 <관촌수필> 출간

526 1999년 11월25일(목)               

 

  소설가 이문구(58)하면 그의 독자 열중 아홉은 <관촌수필>을 떠올린다연작 소설 <관촌수필> 72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이후 소설집으로 묶이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작가의 또 다른 이름으로 독자에게 아로새겨져 있다충남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 마을이라는 그의 고향이 ‘수필’이란 이름과 함께하면서수많은 발표작 가운데섣 작가를 상징하는 대명사 대접을 받는 셈이다.

 

  이문구씨가 얼마 전 펴낸 문학선집 제목도 <관촌수필>(나남출판)이다그는 35년에 이른 작가 이력을 그동안 써 온 소설로 정리했는데여기에는 초기 작품 <장난감 풍선>(1970)에서부터 최근작 <장천리(長川里소태나무>(1998)에 이르기까지 중 · 단편 열두 편이 실려 있다.

 

  수백 편에 이르는 작품 가운데 작가 스스로 선정한 대표작을 일별하면선집 어디를 둘러보아도 농촌 풍경이다“작품을 고르면서 농촌 소설을 참 많이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그는 작가로서 30년이 넘도록 농촌에서 눈을 뗀 적이 거의 없으며, 60년대 이후 농촌 현실을 소금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의 작품들은 한국 농촌의 근대사와 다름없다그의 문학선은 소설로 보는 30년 농촌 역사이자 작가 이문구의 이력서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관촌수필>은 크게 네 덩어리로 나뉘어 있다먼저, <관촌수필연작 중에서 뽑은 <공산토월> <녹수청산> <일락산> 50~60년대 농촌 풍경이다작가에 따르면그때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그 뒤를 잇는 <우리 동네...> 연작은 산업화가 진행되는 70~80년대 모습이다새마을운동을 앞세워 전개되는산업화 물결에 휩쓸리면서 급속하게 무너져 가는 농촌 공동체의 현실을 그린 작품들이다.

 

  농촌의 90년대가 그 뒤를 잇는다. <장천리 소태나무> <장동리 싸리나무>들이 그것인데인간의 얼굴을 잃어 버린 농촌(나이 쉰이 넘은 총각도 있다). 진작에 은퇴했어야 할 이들이 지키고 있는 농촌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마지막 덩어리는 <암소> <장난감 풍선>. 작가 스스로 공을 많이 들였을 뿐만 아니라발표했을 때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도시에서는 얘깃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58
년 상경해 줄곧 도시에 살아 왔으면서도 도시가 아닌 농촌의 현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우리의 본디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농촌이다두레는 없어졌어도 상부상조하는 옛날 모습은 남아 있다그 점이 재미났고, 또 정이 갔다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숲을 이룬 빌딩과 아파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시에서는 내 얘깃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는 농촌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거의 생득적이라는 얘기이다.

   이번에 출간된 <관촌수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작가에게 비친 농촌이란 일반 도시인이 생각하는 농촌과 거리가 멀다도시에 사는 사람이 농촌에 갖는 인상은 작가의 소설 앞에서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도시 사람은 일반적으로 농촌을 순박하고 훈훈한 인심이 살아 있는 마음의 고향쯤으로 여긴다그러나 그것은 도시인의 대단한 착각이다. <관촌수필말미에 해설을 쓴 평론가 김인환 교수(고려대 · 국문학)에 따르면‘농촌을 한국 사회의 외딴 섬으로 묘사하는 작가들과 반대로 이문구는 농촌을 우리 시대의 전체성에 용해시킨다농촌도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 양식 안에 있으며 자기 보존을 위한 상품 사회의 투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 이문구의 현실 인식이다.

   문학선집의 맨 앞에 놓은 작품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논길 밭길 여기저기에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일(섹스)을 벌여 ‘사건반장’을 선출한다든가새참을 이고 가는 촌부의 모습 대신 스무 가지 식단을 갖춘 새참 자동차가 등장한다든가,핸드폰으로 다방 커피를 시켜 먹는 모습 등 90년대 농촌 현실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과 별반 다를 것 없다농촌에서 순박하고 후덕한 인심 또는 전통적인 모습을 찾으려 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사실을 비극적으로 그려 보인 것이다.

   산업화 물결에 휘말려 농촌 공동체가 급속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이 절망적이고 비극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작가가 그리는 농촌에는 언제나 유머가 살아 있다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장년에 이르른 <장천리 소태나무>의 주인공 부부는 이 같은 대화를 나눈다“자긔두 알어그럼 우덜 두 한번 해 볼 텨?”하고 옆구리를 툭 치는 거였다. ... “우리가 차가 워디 있어서경운기에서?”그 말에 그녀는 얼핏 풀이 죽나 싶더니 어느새 씨의 정강이께를 냅다 걷어차면서 목청을 돋우는 거였다“저만치에서 자그렇잖어두 후덥지근 헌디 옆댕이에 붙어서 열받치는 소리만 허구 자빠졌어.”‘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이 같은 골계와 해학의 미학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널리 알려져 있듯이작가 특유의 유장한 문체와 앞뒤 문맥을 통해 뜻을 헤아려야 하는 독특한 토속어 때문이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그를 가르친 작가 김동리 씨가 <현대문학>에 그를 추천하면서 ‘이 작가가 등장함으로써 우리 문단은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 한 사람을 얻게 되었다’라고 썼듯이,이문구씨의 문체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따라가지 않으면 문맥을 놓쳐버릴 만큼 밀도가 높고 촘촘하다.

   "고전 소설이나 전통 가락은 읽고 듣는 것만으로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거기에 호흡을 맞추면 내용은 저절로 알게 된다”라고 작가는 말했다번역체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현대 소설이 씹는 맛을 주지 못하는 데 반해이씨의 문체는 출렁출렁 노래하듯 읽어 가야 읽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작가는 그같은 문제를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석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비속어 사전>이문구 문장 가장 많이 등장
    <
비속어 사전>을 펼치면 이문구 문장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도시에서야 비속어 또는 방언이라고 분류하지만작가는 그것을 ‘현장어’라 이름 붙였다‘선생쳇것이라구 가무숙숙헌 상판이 코쭝배기에 제비똥 떨어진 늠마냥 잔뜩 으등그러지구 지르숙은 게팔모루 봐두 오종종헌 줄품이던디.’ 농촌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이 같은 용어들이 소설 속에 풍성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고향 떠난 지30년이 넘은 작가에게 그의 고향 사람들이 충남 보령의 시지(市誌)에 그 지역 방언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리만큼그는 누구보다 토속어를 많이 활용하고 또 개발해 왔다그가 보급해 이제는 전국화한 대표적인 것이 충남 · 전북의 해안가에서 쓰이던 ‘싸가지’라는 말이다.

   70~80년대 ‘행동하는 문인’으로서 민주화 투쟁의 맨 앞에 섰으면서도그의 작품을 참여 문학이라고 쉽게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농촌 풍경을 전형적 · 사실적으로 그렸으나그의 작품은 언제나 문학으로서의 예술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역 작가 가운데 가장 토속적인 내용을 가장 토속적인 방법으로 들려주는 이 이야기꾼은 20세기를 ‘문학의 세기’였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그러나 ‘전자 문학’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가 난무하는 이즈음 그는 21세기의 문학을 이렇게 전망한다“나도 하루하루 초조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