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연시에 대한 '술사준 여신'의 일기 글 공개 이틀 전 블로그에 올린 글 '나는 기형도 형의 안양 친구들이 참 좋다'에서 1982년 안양 수리문학회 시절 기형도 시인이 술값을 내준 여성에게 써주었다는 연시를 처음 공개했었다. 그 후 수리문학회 시절을 기형도 시인과 함께 보낸 문우 박인옥 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장이 귀한 자료를 추가로 공개. 선술집에서 술값을 내주고 연시를 받은 여성이, 그 소감을 자기 일기장에 적은 1982년 글이다. 이 여성은, 기형도 시인이 선술집에서 적어준 총 3편의 연시(연서)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번 공개한 것은 그 중의 한 편이다. 1982년 방위병 신분이었던 기형도 시인은, 근무지인 안양에서 수리문학회 문우들과 어울렸다. 가난한 문청들은 커피도 시키지 않고 다방에 죽때렸고, 선술집에서는 외상 긋기는 다반사. 그래도 남자들에.. 더보기 나홀로잡지 '창간 이유서'와 한의사 김제곤 그냥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계기는 '등하교 차 태워주기'에서 내가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사실. 둘째 아이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해 12학년까지, 무려 14년이다. 등하교 시킬 때는 몰랐는데, 막상 그 의무 혹은 과제에서 벗어나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첫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좀 길다.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임). 생각해 보시라. 비가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그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사람을 묶는 사슬이다. 그 사슬에서 십수년 만에 풀려난 느낌이 어떻겠는가. 해방감에 들떠서, 그럼, 이제 얽매이는 하나에서는 확실하게 놓여났으니, 이참에 어디 하고 싶은 일 하나 찾아볼까? 하는 마음을 가졌더랬다. 물론 생업은 따로 있으나, 하나에서 벗어난 김에, 다른 하나에 나를 구속시키.. 더보기 나는 기형도 형의 안양 친구들이 참 좋다 3년 전 가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 기형도 시인과 생전에 교류한 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중앙고 절친들, 연세문학회 선후배들, 중앙일보 동료 기자 들을 두루 만나다가 안양 수리문학회에 이르렀다. 1982년을 전후해 형도 형(나는 고교시절 형을 처음 만난 이후 늘 이렇게 불렀다. 이렇게 부르는 게 편하니 양해 바란다. 형도 형은 내 형 성석제와 대학 친구이다)은, 자취를 감췄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랬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다가 발길을 딱 끊은 건데, 모르긴 해도 안양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서울(대학)과 잠정적으로 절연한 듯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놀러오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나로서는 많이 궁금했다. 형도 형네는 독산동 우리 집에서 388번 버스를 타고 기아대교 종점까지 가서 15분 정도.. 더보기 좋은 커피, 물처럼 마시는 나만의 방법 캐나다에 이민을 오자마자 마음에 꼭 드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커피였다. 2002년만 해도 한국에서 좋은 커피를 마시려면 발품을 팔아야 했다. 좋은 커피는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언제부터인가는 생콩을 구입해 집에서 볶아 마시기도 했다. 캐나다에 살러오니 길거리 어느 커피점에 들어가도 싸고 좋았다. 낯선 땅에서 한동안 긴장되고 피곤한 나날이 지속 되는 와중에, 캐나다의 좋은 커피는 작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나는 보통사람 기준으로, 하루에 커피를 10잔 이상 마신다. 물보다 더 많이 마신다. 좋은 커피를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지만, 이렇게 많이 마셔대면 캐나다에서도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캐나다에 처음 발견한 '공정거래'(Fair Trade) 커피는, 물처럼 마시기에는 비쌌다. 공정거래 커피가.. 더보기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8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