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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인터넷 미로에서 길찾기-뉴욕 작가 신형섭 최근 나는 인터넷을 하면서 매우 놀라운 경험을 했다. 지난 4월에 시작한 개인 블로그에 화제가 될 법한 글 한 편을 올렸더니, 하룻밤 사이에 무려 60만명이 내 블로그를 찾아왔다. 댓글도 500여 개 달렸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댓글로 치고 받는 광경은 낯설면서도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내가 사는 캐나다와 한국은 물론 프랑스 · 미국, 심지어 에콰도르에 사는 한국 사람도 접속해 들어왔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올린 글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전세계 한국인 60만명에게 읽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과 맞닥뜨리다 보니, 한편으로는 흥분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났다. 글이 혹시 잘못되어 무슨 사고나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인터넷 네트워킹이 만들어내는 그 ‘거.. 더보기
<무한도전> 가요제를 나름 심사해 보니… 지난 토요일 한국에서 방영되었다는 를 이곳에서는 일요일 오후에 보았다. 인기있는 '예능인'들이 나와 노래를 재미나게나 부르겠거니 했더니, 왠걸, 나는 가요제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무한도전'답게 그같은 통념을 가볍게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가요제전이라고는 하나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션과 엔터테이너 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아, 새로운 형식으로 꾸며놓았으니, 나같은 사람에게는 맛있는 종합선물세트로 보였다. 음악적 완성도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악의 최고를 맛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오프닝 무대에 섰다가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윤도현이 "나, 이런 건 줄 몰랐어"라고 푸념하는 것은 "가볍게 생각하고 왔더니, 장난이 아니네"라는 고백으로 들렸다. 그의 .. 더보기
마이클 잭슨을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오늘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알았습니다. 요즘은, 왜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들이 이렇게 줄줄이 사망하는지, 적잖게 서글퍼집니다. 최진실 때가 그랬고, 노무현 때 또 그랬고, 마이클 잭슨까지... 마이클 잭슨은 내 청춘의 불행한 아이콘이었습니다. 반정부 시위 분위기가 대학가의 대세를 장악하던 1980년대 초반, 마이클 잭슨은 나의 눈에 전두환과 더불어 등장했습니다. 전두환 씨에 대한 적개심을 구체적·본격적으로 품게 되던 대학 1학년 시절 마이클 잭슨은 퀸시 존스가 프로듀싱한 앨범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1982년 마이클 잭슨은 바로 이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좋아하면서도 내놓고 좋아할 수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여 마이클 잭슨은 내 청춘에서 아주 아리.. 더보기
뉴욕 화가 조숙진의 화실을 방문했습니다 뉴욕은 세계 미술의 메카라고 합니다. 미술로 말하자면 뉴욕은 세계의 수도인 셈이죠.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작가들은 뉴욕 시장을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미술뿐 대다수의 예술 장르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경쟁이 얼마나 피터지겠습니까? 그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 남아 세계 미술을 이끄는 한국 작가들이 적잖게 있습니다. 조숙진씨도 그 중의 한 명입니다. 뉴욕에서 유학한 뒤 소호의 유명 화랑 오케이해리스에 픽업되어 20년 동안 전속 작가로 활동중입니다. 전속 작가란 것은 영구직을 얻은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5월말, 에 기고하기 위해 막 떠오르는 젊은 작가를 인터뷰하러 뉴욕에 갔었습니다. 뉴욕에 들른 김에 조숙진 선생의 맨해튼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실로 10년만의 일입니다. 사람 좋은 조선생.. 더보기
백조는 목욕탕에서 왜 헤엄치는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받은 첫 느낌은 ‘예쁘다’였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 모니터들은 갖가지 예쁘고 재미나는 영상을 쏟아내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이 오선지 위에서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고무줄놀이를 하는가 하면, 파란색 실선들이 두 기둥을 감아 올리며 화면을 가득 채워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천장에서 프로젝트로 쏘아 만든 전시장 바닥의 화면을 보면 분홍색 꽃잎이 하늘에서 툭, 툭, 떨어진다. 제목이 인데 꽃잎 치고는 조금 작고 무거워 보인다. 전시장 왼쪽에 마련된 ‘비디오 상영관’에 들어가면 스크린 위에 좀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1980년대에 유행한 텔레비전 CM송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요건 몰랐지, 요건 몰랐지? 0표 짜장면 0표 짜장밥.” 사우나의 냉탕에서 한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 더보기
한국 외교관은 '문화 탈레반'이었다 ROM(Royal Ontario Museum)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렇듯 캐나다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캐나다의 자랑거리이다. 또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미국 뉴욕의 매트로폴리탄미술관이 그렇듯, 캐나다 토론토의 ROM에는 미술 애호가와 관광객들로 언제나 들끓는다. 토론토 시민뿐 아니라 세계 각국 사람들이 토론토에 들르면 가장 즐겨 찾는 곳인 만큼, 문화 예술로 국가를 홍보하기에는 미술관만큼 효과적인 곳도 드물다. ROM에는 1999년 한국관이 들어섰다. 한국의 코리아파운데이션에서 기부한 70만달러를 받아 한국관을 설립하고, ROM이 소장한 한국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했었다. 한국 도자기 수집가인 어느 캐나다 사람의 후손이, 수집품을 모두 기증하여 ROM 한국관은 한.. 더보기
'천황발언' 신해철, 롹 정신 '지대로' 구현하다 롹커 신해철이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에게 "천황 밑에나 가지"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인터넷 뉴스를 통해 읽고 한참 웃었다. 이민살이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만드는, 오랜만에 웃어보는 속 시원한 웃음이었다. 신해철은 2009년 대한민국의 '유일한' 롹커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오직 신해철 한 사람만이 속이 탁 터지는 웃음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을 내걸고 저렇게 무자비하게 내지르는 예인은 한국에 없다. 롹이라고 하지만 껍데기만 롹일 뿐 롹커 행세 하는 대다수의 가수들은 인기 몰이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저 쇠고기 수입에 성난 대중의 뒤에 숨거나 따라다니며 기껏해야 그 대중을 선동, 위무, 찬양하는 노래나 부르는 정도이다. 나는 한국에서 롹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보기
캐나다에서 열린 격조 높은 국악의 향연  홍보 기간 2주일. 체감온도 -25도. 연말(12월21일). 게다가 많은 이들이 교회 출석 때문에 다른 활동을 꺼리는 크리스마스 직전의 일요일. 이 정도 조건이면 공연을 둘러싼 최악의 상황이다. 는 이같은 악조건 속에서 열렸다. 그러나 토론토의 한국 음악 애호가들은 눈보라를 동반한 칼바람을 무릅쓰고 토론토 노스욕 중앙도서관 콘서트홀로 찾아왔다. 이곳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국악 공연인 데다,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국악과 양악의 격조 높은 협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외국 땅에서 우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인 일이지만, 이날 동서양 정상급 연주자들이 해금과 어쿠스틱 기타, 해금과 피아노의 협연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선율은 60여 청중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뜻깊은 송년 선물이.. 더보기
글을 쓴다는 행위, 그리고 이문구 이문구(1942~2003) 선생 : 이민 온 다음 해에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그의 진면목을 이제야 알게 되어 선생께나 나 스스로에게 면목이 없다. 이문구가 한국 문단의 산맥임을 나는 1970년에 출간된 단편집 단 한 권을 통해 알았다. 이문구 선생의 글을 최근에 처음으로 읽었다. 명색이 문학가 지망생이었고,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창작은 아니지만 밥벌이를 위해서나마 글줄을 써온 터였다. 그런데 이문구를 '처음'읽다니... 그런데 그게 사실이다. 나는 이문구의 소설, 그 중에서도 문투 자체를 불편해 했다. 나남출판사에서 을 새로 펴낼 때 이선생을 만나 인터뷰했으나 그때도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문체가 불편했고 사투리는 더 불편했다. '사람들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읽길래 좋다고 하나' 생각했었.. 더보기
김추자 재발견 누구일까요?:김추자의 음반에 실린 사진이다. 작곡가 이봉조가 곡을 쓰고 프로듀싱한 음반. 정훈희가 칠레가요제에서 불러 유명한 곡 의 오리지널이 들어 있다. 70년대 초반의 섹시 아이콘 김추자는 엄청나게 예쁘고 섹시했다. 이효리 저리 가라 아닌가. 나는 이 음반을 90년대 중반 청계7가 황학동에서 구했다. 캐나다까지 끌고오길 잘했다. 올해 들어, 서울의 친인척 ∙ 친구 들이 토론토를 많이 찾아왔다. 한국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 어떻게 살아? 누구는?” 하고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나의 형은 말했다. “왜 너는 옛날 얘기만 하니?” 문득, 내가 한국을 떠난 지 한참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 아니다. 최근 토론토를 방문한 친척 및 후배와 ‘미국 쇠고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내가 참 많이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