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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김추자 재발견

누구일까요?:김추자의 <아침> 음반에 실린 사진이다. 작곡가 이봉조가 곡을 쓰고 프로듀싱한 음반. 정훈희가 칠레가요제에서 불러 유명한 곡 <무인도>의 오리지널이 들어 있다. 70년대 초반의 섹시 아이콘 김추자는 엄청나게 예쁘고 섹시했다. 이효리 저리 가라 아닌가. 나는 이 음반을 90년대 중반 청계7가 황학동에서 구했다. 캐나다까지 끌고오길 잘했다.


  올해 들어, 서울의 친인척 ∙ 친구 들이 토론토를 많이 찾아왔다. 한국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 어떻게 살아? 누구는?” 하고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나의 형은 말했다. “왜 너는 옛날 얘기만 하니? 

   

  문득, 내가 한국을 떠난 지 한참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뿐 아니다. 최근 토론토를 방문한 친척 및 후배와 ‘미국 쇠고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내가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국 상황에 대해 이제는 좁은 시각밖에 가지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좁은 창을 통해, 그것도 멀리서 한국을 들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이 탓일 수도 있겠는데, 한국에서 한때 진보를 자처했던 나의 사고방식이 대단히 보수화하고 있다는 것.
 

   ‘결과가 나쁘더라도 변화 자체는 좋은 게 아니냐’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 내가 한국의 변방 문화권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이민자의 처지에서는 바로 그 변방 문화에 충실하는 것이 올바른 이민 생활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변방 문화가 반드시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니지 싶기도 하다. 변방에서는, 비록 중심부의 관심을 끌 수는 없으되 중심부에서 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하는 문화 생활 혹은 활동은, 6년 전 한국에서는 바빠서, 아니면 다른 재미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아서 할 수 없었던 아주 작고 소박한 것들이다.
  

   한국에서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앤틱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나는, 그 분야를  LP로 집중한 적이 있었다. 한때 1만장 가까이 모았다. 내 방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출장길에 뉴욕에서 레드 재플린 음반이라도 구하면 환호성을 질렀다. 희귀본인 데다 원반이고, 가격 또한 10달러 아래이니 환호성이 왜 터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토론토라는 한국 문화의 변방에서는 환호성 지르며 모았던 것들보다 과거 황학동 고물시장에서 장당 몇 백원에 샀던 LP들을 훨씬 귀하게 듣게 된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던 데 반해, 변방에서는 자주 듣지만 환호성은 별로 지르지 않는다.

희숙 골든 앨범 : 1990년대 중반 청계7가 황학동 길거리에서 구한 음반이다. 임희숙의 명곡이 총집결되어 있다. 리메이크곡 <뜨거운 안녕>이 아주 '죽여준다.'

   

  그래도 가끔은 소리를 지를 때가 생겨난다. 전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을 때 터져 나오는 놀라움인데, 가수 임희숙의 노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들으면서 지른 소리가 그동안 질러온 소리 중에서 가장 컸을 것이다.
 

  저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대학시절이었을 것이다. 칸막이 너머 다른 서클실에서 들려오는 어느 여학생의 나즈막한 목소리. “아~, 저 하~늘의 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그때 나는 그 여학생의 ‘너’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구름이라도….

    탁자를 두드려가며 부르는, 이른바 운동권 가요가 대세였던 그 즈음, 나지막한 여학생의 그 목소리는 전혀 다른 세상의 생경하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이후 그 노래를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다가 황학동에서 구한 가수 임희숙의 음반에서 발견했다. 평소 ‘내공이 깊은 가수’라 여겼던 터라 반가움은 더 했다.
 

  이민 올 때 들고 온 중고 토렌스 턴테이블에 임희숙 음반을 올려 들으며 앨범 재킷을 얼핏 보았다. 순간, 몸에 전율이 일었다. 노래를 만든 이가 백창우라니??? 1980년대 중반 민중가요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절 경기도 성남에서 노래패 ‘노래마을’을 이끌며 노래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바로 그 백창우였다.
 

   나는 그를 노래운동 취재차 1991년에 딱 한번 만났었다. 사람이 좋았다. 이름만 들으면 강성인데 만나고 보니 부드럽고 서정적이었다. 그 후, 삽살개인지 멍멍개인지 하는 어린이용 음반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고, 시인 정호승안도현과 함께 노래와 시를 버무린 공연을 한다는 것을 보도자료를 통해 알았다. 단신으로 소개만 하고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다. 백창우가 시를 썼는지 안 썼는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바로 그 백창우가 곡을 쓰고 가사를 썼다고 음반 재킷에 적혀 있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는 가사가 그냥 쉽게 나온 게 아니었구나, 백창우가 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 입에서 ‘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음반의 대부분을 매제에게 넘겨주고 이민 봇짐에는 우리 대중가요 음반만 수 백장 집어넣었다. 그것을 한 장, 한 장 끄집어 내어 먼지를 털었다. 김추자 ∙ 정훈희를 다시 들었고, 이장희김세환에 이어 나훈아 ∙ 현철도 나왔다. 히식스와 윤항기, 최 헌, 최병걸도 나왔다. 오정선을 아는가? 같은 이름의 통기타 가수 이정선을 들으면서 지금 들어도 노래가 대단히 현대적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여 진의 경우, 몇 년 전에 만나 인터뷰를 한 까닭에 나에게는 선도가 조금 떨어지기는 했어도 20대 중반의 힘차고 시원스런 목소리가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방미가 부르는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는 절절했다. 80년대 중반 방미의 목소리 뒤에 숨어 콧노래로만 팬들과 만날 수 있었던 심수봉을 발견한 것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찾아낸 것도 소리를 지를 만한 대목이었다. , 대학가요제. 로커스트와 휘버스를 30년 만에 만났더니 이산가족과 재회한 기분이었다.   



명기 : 한국에서 캐나다로 끌고온 턴테이블과 앰프. 마니아들에게는 별 것도 아니겠으나 나에게는 최선을 다해 구입한 명기들이다. 토렌스 턴테이블은 서울음반 다니던 김철진에게, 마란쯔 앰프는 연세 문학회 출신의 김성윤에게 중고로 샀다. 김성윤 JBL 스피커도 함께 넘긴 뒤 자기는 앰프로 쿼드를 샀다.

 

  우리 대중음악을 서양 고전음악 듣듯 이렇게 정성 들여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재미나는 것도 별로 없고, 문화 활동에 바쁠 일이 없는 변방에서나 있을 수 있는 대단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과거를 불러내어 재미를 보는 것은 비단 음악에서뿐만이 아니다. 나는 요즘 815일부터 23일 동안 열리는 우리 대학 교우회의 캠핑 준비 때문에 좀 바쁜 편이다. 교우회 회장단의 말석에 앉아, 대학시절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서 여러 차례 캠핑 경험을 했던 관계로 시키지 않은 일에도 열을 내고 있다.

   스무 몇 해 전에 나는 우리 성당 중고등학생 여름 캠핑을 준비하면서 방학을 성당에서 꼬박 보내곤 했다. 일은 해도 해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즐거웠다.

   지금이 꼭 그 기분이다. 캠프파이어는 어떻게 진행할까?, 어떤 배경 음악을 쓸까?, 어떻게 흥을 돋구어 춤을 추게 하지?, 곡은 어떤 걸로?, 노래는 어떻게 부르게 하나?, 따위를 생각하느라 머리는 복잡하지만 즐겁다. 주일학교 교사처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니 피곤하지 않다. 행사를 생각하는 것이 즐겁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더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과거, 그 빛나던 일을 ‘오늘에 되살려’ 하고 있으니 퇴행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변방이라는 지리적 여건은 인정할 수 있겠는데 퇴행적이라는 데는 나 스스로 동의할 수가 없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 나오는,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결국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는 유명한 주장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과거를 추억하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는 곁으로 밀어두었던 일에서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작은 것에서 재미를 느낄 줄도 알게 되었다. 수다의 재미도 알게 되었다. 아저씨들의 수다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은, 이민을 와보면 안다.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어떻고? 인터넷으로 보는 바람에, 좋아하는 드라마라면 단 한 편도 빼먹지 않고 볼 수 있다. 박완서 전집에서 단편 하나씩 곶감 빼먹듯 하는 재미는 또 얼마나 쏠쏠한가.

   작은 것에서 새로운 의미와 재미 찾기. 내가 향유하는 변방 문화 생활의 단면이다.

 

*2008 9월 서울의 한 잡지사에서 청탁해와 쓴 글이다. 아직 책도 받지 못했다. 몇 차례 독촉했으나 묵묵부답. 고료는 들어왔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