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골계의 미학 속에 살아 숨쉬는 토속어
소설가 이문구 문학전집
<관촌수필> 출간
제 526호 1999년 11월25일(목)
소설가 이문구(58)하면
그의 독자 열중 아홉은 <관촌수필>을
떠올린다. 연작 소설 <관촌수필>은 72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후 소설집으로 묶이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작가의 또 다른 이름으로 독자에게 아로새겨져 있다. 충남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 마을이라는 그의 고향이 ‘수필’이란 이름과 함께하면서, 수많은 발표작 가운데섣 작가를 상징하는 대명사 대접을 받는 셈이다.
이문구씨가 얼마 전
펴낸 문학선집 제목도 <관촌수필>(나남출판)이다. 그는 35년에
이른 작가 이력을 그동안 써 온 소설로 정리했는데, 여기에는 초기 작품 <장난감 풍선>(1970년)에서부터 최근작 <장천리(長川里) 소태나무>(1998)에
이르기까지 중 · 단편 열두 편이 실려 있다.
수백 편에 이르는 작품 가운데 작가 스스로 선정한 대표작을 일별하면, 선집 어디를
둘러보아도 농촌 풍경이다. “작품을 고르면서 농촌 소설을 참 많이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는 작가로서 30년이
넘도록 농촌에서 눈을 뗀 적이 거의 없으며, 60년대 이후 농촌 현실을 소금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의 작품들은 한국 농촌의 근대사와 다름없다. 그의 문학선은 소설로 보는 30년 농촌 역사이자
작가 이문구의 이력서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관촌수필>은 크게
네 덩어리로 나뉘어 있다. 먼저, <관촌수필> 연작 중에서 뽑은 <공산토월> <녹수청산> <일락산>은 50~60년대 농촌 풍경이다. 작가에 따르면, 그때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 뒤를 잇는 <우리
동네...> 연작은 산업화가 진행되는 70~80년대
모습이다. 새마을운동을 앞세워 전개되는, 산업화
물결에 휩쓸리면서 급속하게 무너져 가는 농촌 공동체의 현실을 그린 작품들이다.
농촌의 90년대가 그 뒤를 잇는다. <장천리
소태나무> <장동리 싸리나무>들이 그것인데, 인간의 얼굴을 잃어 버린 농촌(나이 쉰이 넘은 총각도 있다). 진작에 은퇴했어야 할 이들이 지키고 있는 농촌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마지막
덩어리는 <암소> <장난감 풍선>. 작가 스스로 공을 많이 들였을 뿐만 아니라, 발표했을
때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도시에서는 얘깃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58년 상경해 줄곧 도시에 살아 왔으면서도 도시가 아닌 농촌의 현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본디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농촌이다. 두레는
없어졌어도 상부상조하는 옛날 모습은 남아 있다. 그 점이 재미났고, 또 정이 갔다.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숲을 이룬 빌딩과
아파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시에서는 내 얘깃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는 농촌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거의 생득적이라는 얘기이다.
이번에 출간된 <관촌수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작가에게 비친 농촌이란 일반 도시인이 생각하는 농촌과 거리가 멀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농촌에 갖는 인상은 작가의 소설 앞에서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도시 사람은 일반적으로 농촌을 순박하고 훈훈한 인심이 살아 있는 마음의 고향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도시인의 대단한 착각이다. <관촌수필> 말미에
해설을 쓴 평론가 김인환 교수(고려대
· 국문학)에 따르면, ‘농촌을 한국 사회의 외딴
섬으로 묘사하는 작가들과 반대로 이문구는 농촌을 우리 시대의 전체성에
용해시킨다. 농촌도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 양식 안에 있으며 자기 보존을 위한 상품 사회의
투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 이문구의 현실 인식이다.’
문학선집의 맨 앞에 놓은 작품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논길 밭길 여기저기에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일(섹스)을 벌여 ‘사건반장’을 선출한다든가, 새참을 이고 가는 촌부의
모습 대신 스무 가지 식단을 갖춘 새참 자동차가 등장한다든가,핸드폰으로 다방 커피를 시켜 먹는 모습
등 90년대 농촌 현실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과 별반 다를 것 없다. 농촌에서 순박하고 후덕한 인심 또는 전통적인 모습을 찾으려 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사실을 비극적으로
그려 보인 것이다.
산업화 물결에 휘말려 농촌 공동체가 급속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이 절망적이고 비극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농촌에는 언제나 유머가 살아 있다. 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장년에 이르른 <장천리 소태나무>의 주인공 부부는 이 같은 대화를
나눈다. “자긔두 알어? 그럼 우덜 두
한번 해 볼 텨?”하고 옆구리를 툭 치는 거였다. ... “우리가
차가 워디 있어서? 경운기에서?”그 말에 그녀는
얼핏 풀이 죽나 싶더니 어느새 씨의 정강이께를 냅다 걷어차면서 목청을 돋우는 거였다. “저만치에서
자! 그렇잖어두 후덥지근 헌디 옆댕이에 붙어서 열받치는 소리만 허구 자빠졌어.”‘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이 같은 골계와 해학의 미학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작가 특유의 유장한 문체와 앞뒤 문맥을 통해 뜻을 헤아려야 하는 독특한 토속어
때문이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그를 가르친 작가 김동리 씨가 <현대문학>에 그를 추천하면서 ‘이 작가가 등장함으로써 우리 문단은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 한 사람을 얻게 되었다’라고
썼듯이,이문구씨의 문체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따라가지 않으면 문맥을 놓쳐버릴 만큼 밀도가 높고 촘촘하다.
"고전 소설이나 전통 가락은 읽고 듣는 것만으로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거기에 호흡을
맞추면 내용은 저절로 알게 된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번역체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현대
소설이 씹는 맛을 주지 못하는 데 반해, 이씨의 문체는 출렁출렁 노래하듯 읽어 가야 읽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작가는 그같은 문제를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석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비속어 사전>에 이문구 문장 가장 많이
등장
<비속어 사전>을 펼치면 이문구
문장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도시에서야 비속어 또는 방언이라고 분류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현장어’라 이름 붙였다. ‘선생쳇것이라구
가무숙숙헌 상판이 코쭝배기에 제비똥 떨어진 늠마냥 잔뜩 으등그러지구 지르숙은 게, 팔모루 봐두
오종종헌 줄품이던디.’ 농촌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이 같은 용어들이 소설 속에 풍성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고향 떠난 지30년이 넘은 작가에게 그의 고향 사람들이
충남 보령의 시지(市誌)에 그 지역 방언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리만큼, 그는 누구보다 토속어를 많이 활용하고 또 개발해 왔다. 그가 보급해 이제는 전국화한 대표적인 것이 충남 · 전북의 해안가에서 쓰이던 ‘싸가지’라는 말이다.
70~80년대 ‘행동하는 문인’으로서 민주화
투쟁의 맨 앞에 섰으면서도, 그의 작품을 참여 문학이라고 쉽게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농촌 풍경을 전형적 · 사실적으로 그렸으나, 그의 작품은 언제나 문학으로서의 예술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역 작가 가운데 가장 토속적인 내용을 가장 토속적인 방법으로 들려주는 이 이야기꾼은 20세기를 ‘문학의 세기’였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나
‘전자 문학’ ‘문화 산업’이라는 용어가 난무하는 이즈음 그는 21세기의 문학을 이렇게 전망한다. “나도 하루하루 초조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