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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줄잇는다

  

    지금부터 10여년 전 한국에서는 이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 직후인 1990년대 말에 시작하여 2000년대 초중반까지 그 바람은 계속 되었다. 나 또한 그 바람에 실려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이곳에 와서, 월드컵의 열기와 더불어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보수 언론은 "나라 경영을 잘못하여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된다"며 이민 바람을 당시 정부를 비판하는 소재로 적절하게 써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나를 포함하여 한국이 아까워 할 만한 인재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그때 많은 이들이 이민 보따리를 쌌는데, 가장 선호되던 나라가 바로 캐나다였다. 캐나다 중에서도 최대 도시 토론토로 한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토론토 풍경. 숲과 맑은 공기가 좋다. 처음에는 놀라울 정도로 좋지만 점점 지나면 익숙해져서 좋은 줄도 모른다. 김상현 사진.

   2000년대 중반 들어 한국 이민자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가뭄에 콩나듯 하던 한국 이민자가 올해 들어서는 뚝 끊어졌다. 무슨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내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이야기다. 통계도 거의 비슷할 것이다.

  한국 이민자가 뚝 끊어진 반면 기존 한국 이민자 중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줄을 잇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으로의 역이민 바람이 분다'고 할 만하다. 내 주변에만 해도 올해 세 가정이 돌아갈 참이다. 
 
  역이민을 하는 이유는 가정마다 다르니, 수십 수백가지가 넘을 것이다. 내 눈에 잡힌 이유들을 살펴보면, 가장이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꼽힌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멀쩡한 직장에 십수년 다니다가, 이민을 와서 취직을 하려 하니 그게 뜻대로 안된다. 엔지니어나 IT 기술자들도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취직한 '행운의 세대'를 빼고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한다.

  이민자들의 전통적인 밥벌이였던 스몰 비지니스도, 이제는 대자본에 거의 완전히 넘어갔다. 죽으라 하고 일을 해도 대자본에 먹히기 일쑤이고, 자칫 잘못하면 자본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이 대목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할 일을 찾다가,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모가 귀국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한국은 이곳보다 일자리가 많고, 또한 과거의 기득권을 되살린다면 기회 또한 맨땅에 해딩하는 이곳보다야 많다. 과거 지방에서 서울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것과 똑같이 보면 된다.

  이민을 왔는데,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부모 한 쪽이 한국에 남았다가 한국에서 가족이 합치는 경우. 역시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 하는 것을 보고 귀국 보따리를 싼다. 

  이른바 기러기 생활을 오래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보았다. 역시 가족은 죽으나 사나 함께 살아야 가족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이 엄청 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 사는 이들이야 '죽겠다, 죽겠다' 하지만, 외국에 나와 살다보면 한국은 별로 죽을 일이 없는 참 잘 사는 나라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곳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일은 한국 이민자들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지 20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갖게 된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외국 한번 나가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또, 한국에서 이곳에 사올 물건은 엄청 많아도 이곳에서 한국에 보낼 선물을 고르자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한국에는 없는 게 없고, 또 물건 자체가 워낙 좋으니, 이곳에서 사서 보낼 만한 것이 거의 없다. 한국 물건, 특히 옷이나 신발 같은 것은 금방 눈에 띈다. 디자인과 품질이 고급스러우니까.

  캐나다가 한국에  자랑할 만한 것은 의료와 교육, 노년 혜택 정도인데, 한국에 가서 수술 받고 오는 이들도 많았다. '빨리 빨리' 수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야 이곳은 아직 입시지옥이 아니니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고, 노년층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최상급이라고 들었다. 아직 노년이 아니니, 그걸 느낄 시점은 아니다.

  한인 이민 사회가 너무 좁아서, 조금 넓은 곳에서 살고 싶은 욕구도 작용할 것이다.  한국에는 일상적인 영어 스트레스가 없고, 가족과 친구가 있다. 일단 돌아가면 금방 새로운 문제에 부닥치게 될 터이지만, 바다 건너 땅은 늘 좋아보인다. 한국에서 캐나다를 바라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민의 고전적인 정의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가서 사는 것'을 말한다. 최소한 한국은 이민의 고전적인 정의가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가끔 이민 오고 싶다는 사람들을 보는데 보는데, 많이 답답하다. 오라고도, 말라고도 할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