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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캐나다에서 보니 싸이가 불쌍하다

 한국에서 가수 싸이가 새 노래를 발표하여 연일 뉴스가 쏟아져나오는 것과 비슷하게,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외국 가수 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이 소개되었다. "더 재미있다" "전작에 비해 재미가 떨어진다"  "이젠 약발 떨어진 거 아니냐" 같은 갖가지 반응을 이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만나는 외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국과 비슷비슷한 반응이다.




  어제 뉴스를 보니, 싸이의 신곡 <젠틀맨>에 대해 KBS가 뮤직비디오 방영 불가 판정을 내리고, 프레시안에는 '포르노 한류 자랑스럽습니까?'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대중음악을, 대중음악으로 보지 않고 한 사회의 도덕을 가르치는 근엄한 예술 장르로 보는 그 요상한 시각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다. 예전에 <천국의 신화>를 그렸다고, 이현세 만화라고는 한 편도 접한 적 없는 젊은 여검사가 이현세를 잡아넣은 것을 본 이래, 대중문화 판에서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를 본다. 


  KBS의 경우, 싸이가 주차금지 사인을 발로 걷어차는 모습이 결정적 이유라 알려져 있다. 나는 설마 싶었다. 주차금지 사인을 발로 걷어차면 안 된다는 윤리나 법 있나? 그게 어때서? 그 사인을 놓은 사람이 누군데? 그 사인을 고약하게 잘못 놓았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를테면, 함께 쓰는 공용 주차장에 누가 독점하겠다고 사인 갖다 놓으면 KBS는 차고 싶은 생각 안 드나? 


  KBS는 금지를 만드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본 듯하고,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금지를 만드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길래, KBS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국위선양을 단군 이래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싸이의 뮤직비디오 방영을 또 금지시킬 수 있을까?  지금 대통령이 대통령인 만큼 나는 유신시대의 냄새를 느낀다. 아마 다른 대통령이었다면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그런 냄새까지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억울해 할 일은 아니다. 아버지와 딸은 분명하니까.


 그리고 또 '포르노 한류'는 뭔가? 그 글을 쓴 사람은 '포르노'를 보지 않았거나 모르는 사람이다. 포르노는 싸이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런 게 아니다.  '선정적' '야한' 정도의 표현까지는 이해하겠으나 포르노라는 용어는 그렇게 쉽게 갖다 붙일 가벼운 용어는 아니다. 포르노라는 용어는 참 무겁고 파괴적이다. 그 쉬운 장르 구분도 섬세하게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니, 포르노니 어쩌니 하면서 심야 시간대에나 틀 만한 뮤직비디오라고 하는데... 그 분별없음이 우선 놀랍다.


  미국보다 더 보수적인 캐나다의 채널 29는 뮤직 채널이다. 하루종일 뮤직 비디오 쏟아낸다. 싸이의 뮤직비디오가 포르노 수준이면, 채널 29는 포르노 채널에 가깝다. 심야 프로? 별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주말에는 심야에 진짜 포르노가 나온다. <젠틀맨>에 포르노 운운하는 사람은 심야 시간의 진짜 포르노를 이야기하나? 그럼 그것도 틀렸다.


  싸이에 대한 캐나다의 반응에 대해서는 이곳에 아직 쓸 단계가 아니다. 다른 매체에 썼으니, 여기에 쓰면 반칙이라서. 


  매체에 쓰지 않은 두 가지만 이야기하면, 나는 토론토 사람 수십명에게 싸이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야하다, 선정적이다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더 재미있다" "재미가 좀 덜하다"고 말할 뿐이다. 캐나다에서 내가 접촉한 사람들은 포르노를 가장 민감하게 경계할 법한 30~50대 여성이 많았는데, 누구도 그런 얘기 하지 않는다. 대중음악은 그저 대중음악으로 볼 뿐이다. 또한 싸이가 까발려놓은 젠틀맨의 이중적인 속마음을 보고 그저 재미있게 웃을 뿐이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픽션이고, 실제로는 그런 악동짓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안다. 그러니 그저 웃을 뿐이다. 아니면 무시하거나.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다.


  북미 지역에서 싸이의 유명세는 김연아와 견주어 보면 잘 알 수 있다. 김연아는 피겨계의 지존이지만 동계 종목이 인기가 높은 캐나다에서조차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싸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싸이를 물으면 예외 없이 웃는다. 재미있다고...  김연아와 싸이의 유명도 차이는 실력 때문이 아니라, 장르의 다름에서 연유한다. 대중음악의 파괴력이 피겨스케이트보다 100배 이상이 크다면, 싸이의 인지도가 김연아보다 그만큼 높다.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싸이가 어느 나라 가수인지는 다 안다. 싸이가 나올 때마다 "코리언 랩퍼"라고 소개되니까. 


  싸이가 주차금지 판 걷어찬다고, 조금 야한 뮤직비디오 만들었다고 국익을 해치고,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렸나? 노홍철의 댄스를 한국에서는 '저질'이라고 한다는데, 이곳에서는 누구도 저질이라 보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다고 한다. 한국과 북미에는 이런 시각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드라마, 음악, 스포츠 톱스타들이 한국을 세계에 알린 것을 모두 합쳐도 싸이 한 명을 당하지 못한다. 싸이 이후에는 '월드스타' '세계적인'이라는 말을 국민가수 남용하듯 함부로 쓰면 안 된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싸이를 못 잡아 먹어서 그렇게 안달인가? 그러니 싸이가 불쌍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