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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청각장애 아들이 준 '자작곡' 생일 선물

4월20일은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외국에 산다고 하여 가족의 생일이 한국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습니다.

   미역국 먹고,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케익에 꽂힌 촛불을 훅 불어끄고, 박수치고 하는 평범한 세레머니가 이어지지요.

  올해 저의 생일은, 하필이면 어른도 아이들도 가장 분주한 월요일이었습니다. 명색이 가장이자 아빠의 생일인데 오후가 되어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아이들은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예년에 축하를 받아도 심드렁했던 터여서 '뭐, 대순가?' 하고 대범하게 넘어가기로 했으나 저녁이 되니 조금씩 서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올해에는 카드 한 장도 못 받는 거야, 뭐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죠.

  가게에서 아내와 교대를 하면서 불만을 약간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올해는 이벤트가 아무 것도 없는 겨? 아이들 보니 서프라이즈 같은 것도 없는 거 같두만..."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그래?" 하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가게 문을 닫을 즈음 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따 전화해, 데리러 갈테니까."

  아내가 몰고 온 차에 올랐습니다. 갑자기 뒷 자리에서 "써프라이즈!" 하는 소리가 벼락치듯 들렸습니다. "오마나!" 하며 돌아보았더니 아이 둘과 조카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흠, 써프라이즈로 그냥 떼우려 하는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다"고 건조하게 말하며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는 생일 축하카드와 과일 케익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쑥 큰 아이가 선물이라고 CD를 한 장 내놓았습니다. 



  생일 카드에도, CD에도 무척 성의없게 글씨를 썼지만 이 CD 한 장은 너무나 반가운,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습니다. 10학년인 큰 아이가 음악을 하겠다고 기타를 배우더니, 뜻밖에도 '아빠를 위해 곡을 썼다'고 했습니다.

  멀쩡한 아이가 곡을 써서, 아빠 생일에 헌정했다 해도 심상치 않은 일인데, 제게는 반가움을 넘어 감격적인 선물이었습니다.

  제목에 썼듯이 큰 아이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지니고 있다가, 4학년 때 캐나다 토론토에 이주하여 7학년 때 와우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았다고는 하나, 일반인에 비하자면 아직도 많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소리를 더 잘 듣고, 말을 더 유창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대단한 선물일 터인데, CD를 만들어주다니... 게다가 자작곡으로 CD를 '제작'했다니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야, 어째, 서태지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절대 아니에요"라며 손사레를 칩니다. 

  아이가 자꾸 음악을 하겠다고 하여, 우리 부부는 좀 걱정을 했습니다. 청각 핸디캡을 지닌 아이가 '소리'와 관련한 일을 하겠다니 걱정인 것이지요. 

지난번 학교에 가서 담임인 Mrs.Chu를 만났더니 우리에게 당부를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음악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입니다. 말씀 좀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냥 하라고 하세요. 하다가 잘 하면 그 길로 가는 거고, 한계를 느끼면 취미로 하는 거니까요. 저도 음악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교사 하고 있잖아요."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 후에는 "엄마 아빠는 네가 음악 하는 거 별로다"라는 내색을 일체 하지 않았는데, 아빠의 생일을 맞아 이렇게 창작곡을 떡 하니 내밀었습니다.

  음악은 1분에서 3분짜리 3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피아노, 신서사이저, 기타와 드럼 소리도 들립니다. 다소 난해하면서도 단순합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 박수를 치며 아주 아주 어눌한 목소리로 "해피 버스 데이 투 아빠"를 처음 부를 때만큼이나 감동적입니다.



참고사항 

1. 아이의 이름을 이제 쓰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장애인 복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국의 매체에 여러 차례 기고하면서 아이 이름을 자주 썼더니, 아이가 정식으로 항의를 해왔습니다. "아무리 아빠지만 왜 허락도 받지 않고 내 이름을 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교 1년생인 아들이 아버지와 사이가 그다지 좋을 리가 없습니다. 저는 "네 이름 좀 써도 될까?"라고 말하기가 '치사스러워'  안쓰고 그냥 갑니다.

2. 아이가 받고 있는 캐나다에서의 청각장애 교육과 수술 및 재활에 관한 내용은 2년 전 한국에서 펴낸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책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제목은 블로그의 제목과 똑같습니다. 출판사는 '강'입니다. 아직 서점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