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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부활절 뉴욕 여행(1)

  캐나다의 부활절 휴일은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부활절 금요일'이라 하여 우리 말로 성금요일이 휴일이고, 연이는 토요일과 부활절인 일요일은 원래가 휴일이다. 

  특이한 점은 월요일이 '부활절 월요일'이라 하여 휴일이라는 사실. 다 쉬는 건 아니고 초중고교와 관공서, 은행 정도가 문을 닫는다. 아이들이 나흘간 학교를 가지 않으니 이 기간에는 프로그램을 잘 짜서 멀리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작년, 재작년에는 미국 제이피크와 레이크플래시드로 각각 스키여행으 다녀왔는데, 늘 김상현씨네와 함께였다. 상현씨가 수소문해서 숙소 등속을 모두 예약했었다. 작년에는 워싱턴의 이흥환 선배네를 불러올리고, 토론토를 방문한 나의 형까지 합세하여 올림픽이 열린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재미나게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상현씨가 에드먼튼으로 옮겨갔으니 부활절 휴가를 함께 보내기는 당분간 무망.

 

  금요일 8시께 토론토에서 출발했다. 나이아가라를 거쳐 미국 국경을 넘게 되는데, 국경까지 가는 길은 별로 붐비지 않아 산뜻하게 월경할 줄 알았다. 그런데 왠걸. 막상 세관 근처에 도착하니 차량의 줄이 만만치 않게 길었다. 연휴 마지막날 귀경 차량을 생각하면 딱이다. 
  
  차량이 많아서인지, 내가 캐나다 여권을 지니고 있어서 그랬는지, 미국 관리는 별것 묻지 않았다. 미국 국경을 통과할 때 대답은 단답형으로 하는 게 최선. 멍청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어가며 괜히 설명을 붙이려 했다가는 "내려"라는 명령을 받아 시간을 까먹기 일쑤다. 이를테면, "어디 가냐?"고 물으면 "뉴욕", "왜?" 하면 "누나 만나러"라고 짧고 간단 명확하게 답하는 게 좋다. 거기다 대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뉴욕에 누나가 사는데, 언제 이민을 갔고, 어디에 살고, 뭘해먹고 살고..." 이런 것을 주절주절 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심사관은 명확하게 듣기 위해 내리라고 한다.



    국경을 넘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급한 김에 아무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버렸더니 팀호튼스가 눈에 띄었다. 팀호튼스는 캐나다 동부의 대표 커피 브랜드. 앞으로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커피를 사고, 아이들은 간식거리를 샀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뉴욕에는 자주 드나들었다. 문화예술 담당 기자에게는, 세계의 첨단 예술 동향을 파악하는 데 뉴욕만큼 좋은  곳은 세상 천지에 없다. 내 경험상 그렇다는 얘기다. 뉴욕은 모든 장르의 최고가 모여 있는 최신 종합 선물세트이다. 

   세계 미술의 첨단이 펄펄 살아 뛰는 첼시 거리, 근대 미술의 최고봉을 집대성한 MoMA(Museum of Morden Art), 이집트 미술에서부터 한국 미술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문화 민족들의 시각 예술을 망라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현대적 경향을 한눈에 두루 보여주는 휘트니 미술관, MoMA보다는 규모가 작으나 근대 미술의 정수만은 모아놓은 구겐하임 미술관(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달팽이 모양의 건축물만으로도 구경거리이다). 

  미술만 소개해도 이토록 많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말할 것도 없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공연하는 링컨센터를 가면, 속된 말로 입이 벌어진다.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재수가 좋으면  그곳의 스타 홍혜경 공연을 볼 수 있다. 

  밤문화도 일품. '여성 도우미' 혹은 '접대부'가 함께 하는 한국형 밤문화가 아니라, 블루노트 같은 바에서 세계 최고의 재즈를 수시로 들을 수 있다는 얘기. 

  이 모두가 지난 10여년 동안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라, 요즘에는 별로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대학생인 사촌에게 딸려보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을 구경시켜주라 하고 나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32가 코리언타운, 일면 K타운에 친구에게로 갔다. 경기가 좋지 않아 K타운은 거의 쑥대밭이었다.


 
  위의 사진은 뉴욕 거리에서 찍은 나무. 아마도 매화가 아닐까 싶은데, 뉴욕에도 봄이 와 있었다. 



   K타운도 부침이 무척 심하다. 뉴욕을 드나들기 시작한 1996년부터 지금까지 식당으로 살아남은 곳은 서너곳에 불과하다. 설렁탕으로 유명한 감미옥, 강서면옥, 그리고 위 사진에 나온 원조 정도이다.
  
  토요일 늦은 저녁, 원조에는 보시다시피 한국 손님이 별로 없다. 대부분이 외국 사람이다. 저들은 갈비를 굽고, 삼겹살을 구웠다. 맥주를 한 병 시켜 고기와 함께 먹었다. "외국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하고 물으니 "한류 때문"이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지배인한테서... 드라마 한류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어떤 작용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소개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친구와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생삼겹이었는데, 값이 갈비보다 훨씬 비쌌다. 한국에서는 오해마시라! 광우병 걱정 때문에 갈비를 안먹은 게 아니라 가격이 비싸도 맛이 좋기 때문에 삼겹살을 먹었다. 이곳에서는 광우병 걱정 때문에 갈비를 안먹는 사람은 없다.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을 먹으러 나오다. 친구가 즐겨가는 아침 식당인데, 아침 메뉴가 다양했다. 친구는 팬케익과 계란 후라이, 나는 오물랫과 감자를 먹었다. 커피는 떨어지기가 무섭게 채워주었다.

  이 식당에서 서빙하는 이들은 할머니들이었다. 뚱뚱한 할머니는 무릎이 아픈지 조금 절뚝이면서도 번개처럼 음식을 날랐다. 한치의 오차도, 실수도 없었다. "부족한 거 없니?"라고 물어보는 말투가 얼마나 푸근한지 모른다. 할머니들은 세계 어디서든 푸근한 모양이다. 




  가족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다. 미술관에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좋아서가 아니라 싫다고... "지루하다"가 가장 즉각적이고 정직한 대답이다. "지루해도 봐라.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을 언제 보겠냐"고 달랬다. 미술관에 대해 할말이 많이 남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