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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합천에는 황매산도 있더라

  지난 9월에 한국에 갔습니다. 가자마자 가장 먼저 들른 곳이 합천입니다. 


  합천은 고향도 아니고, 또한 이번 방문의 주요 목적지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친구 김훤주가 나를 오라고 했고 나는 거기에 응했습니다. 그는 요즘 경남도민일보의 한 켠에서 문화 활동 부문을 담당하여, 경남 문화 바로 알리기, 버스 타고 경남지역 100배 즐기기 따위의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가 대표로 속한 단체 이름은 '갱상도 문화학교 해딴에'라고 합니다. 합천 팸투어는 바로 해딴에의 사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일단 팸투어라는 말 자체가 퍽 생소했습니다. 네이버를 검색하니 이렇게 나옵니다.


                     Familiarization Tour


  그러니까, 관광지나 명소를 홍보하기 위해 홍보를 해줄 만한 사람들을 초청하여 미리 보여주고 평을 받기 위해 마련한 여행입니다. 나는 블로거로서 거기에 초대되었습니다. 최근 구글로부터 광고비로 100달러를 또 받은 바 있으니(두번째입니다), 파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돈 받는 블로거' 정도는 되니, 팸투어에 자격 미달은 아닌 셈입니다.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된 것 자체가 행운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합천이라는 도시를 방문할 수 있겠습니까.


  9월15일 토요일입니다. 10시30분 창원의 경남도민일보 앞에서 블로거들을 만나, 관광버스를 타고 합천으로 향했습니다. 시차 때문에 다소 어지러웠으나,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마시게 되는 달콤한 공기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서울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이동한 탓에 피곤했던 몸도, 맑은 공기와 풍경 앞에서 금방 회복됩니다.


  무엇보다 점심 식사가 좋았습니다. 최근 식성이 변한(바꾼) 탓에, 푸성귀 위주로 된 식단을 앞에 두고 그저 황홀했습니다. 그것들을 모아, 된장에 쓱쓱 비볐습니다. 


  


   

 산에 오른다고 했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합천에 지리산 설악산 같은 높은 산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없고 높다 한들 대수겠느냐 싶었습니다. 산행 치고는 복장이 아주 불량합니다. 청바지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었으니 말입니다. 황매산에 오릅니다.





  황매산 모산재가 산행의 목적지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산입니다. 오르면서 감탄합니다. 산은 산이 아니라 큰 바위입니다.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오르는 느낌입니다. 





  보시다시피 등산이라기보다는 등암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깨끗한 바위산입니다. 등산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올라도 무방할 정도로,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닙니다. 그러나 등은 벌써 땀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오르는 중간 중간에 돌탑들이 보입니다. 신앙이 있건 없건, 그 신앙이 무엇이건 간에 산에 오르며 이런 돌탑을 보았을 때 돌을 올리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아놓은 기원의 탑에, 나도 돌 하나를 올리며 기원 하나를 더 얹습니다. 





  친구 김훤주와 사진을 찍습니다. 그를 만난 지 올해로 꼭 30년입니다. 이렇게 함께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이 매만져 부드럽고 단단해진 바위처럼,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우정'도 그렇게 단단해졌음을 새삼 느낍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저 느낄 수 있습니다. 친구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모산재에 가기 전 700미터쯤 되는 지점에서 쉽니다. 바위 자체도 아름답거니와 바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그림 같습니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와~~~"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요즘의 유행어를 적용해보면, 이 풍경들은 신이 '뽀샵'을 해놓은 것처럼 부드럽고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산 없는 캐나다 동부에 살면서, 산에 대한 그리움과 허기를 단번에 해소합니다.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오라고 했느냐"고 입으로는 툴툴 대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풍경이 다 있구나' 하고 감탄합니다. 1천5백미터 이상의 고지를 오른 것도 아니고 겨우 7백 고지를 올랐을 뿐인데 이같은 풍경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바람이 시원하고, 더불어 눈이 시원해집니다.






 사실 합천에 대한 기억은 해인사밖에 없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팔만대장경, 고2 때의 수학여행, 그리고 성철 종정이 열반했을 즈음의 고생스런 취재가 해인사와 관련한 기억의 전부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처음 알고 경험한 황매산 모산재 등등은 해인사에 대한 인상을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사진으로나마 황매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를 잘 확인했으리라 믿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영암사라는 절의 터를 봅니다. 남아 있는 터와 탑으로 고찰의 흔적을 봅니다. 이 절이 얼마나 고매한 도량이었는가 하는 것은 그 배경으로 보이는 황매산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고고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