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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합천 영상테마파크와 플로리다, 그리고 남명의 뇌룡정


  갱상도문화학교 해딴에의 합천 팸투어의 첫째날 밤, 지금은 산촌생태마을로 사용되는 문닫은 초등학교에서 잠을 잤습니다. 말 그대로 산촌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팬션이었습니다. 내가 외국 가서 산 지난 10년간,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싶은데 정작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나의 이같은 말이나 평가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팬션 하나만 놓고 봐도, 적당한 돈을 주고 이런 깊숙한 산촌에서 이런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선진국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경험입니다.


  선진국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은 팬션만이 아닙니다. 팬션에서 숙식을 마치고 나와 처음 간 곳이 합천영상테마파크입니다. 테마파크로 선진국을 느낀다니, 의아해 할 법도 합니다. 외국에 살다보면, 내가 살던 곳과 지금 사는 곳을 비교하는 눈이 생깁니다. 두 곳 모두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통한 경험으로 비교하는 것이니, 그것은 좀더 정확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비록 내가 사는 곳은 아니지만 내 삶의 터전과 같은 지역, 곧 북아메리카에 있는 대표적인 영상테마파크로 꼽을 수 있는 곳은 플로리다 올랜도의 할리우드스튜디오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각종 캐릭터를 모아놓고 영화를 재현하거나 다른 방식의 쇼를 만들어 파는 곳입니다. 영화 <인디애나존스> <해리포터> 등이 테마파크 방식으로 다시 재현되고, 슈렉이 등장해 애니메이션과 실사와, 실제를 오갑니다.




  영화 <인디애나존스>는 이렇게 실연됩니다. 뮤지컬도 아닌 것이, 영화도 아닌 것이,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장르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모읍니다.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전세계와 미국 각처에서 그 비싼 가격을 치러가며 올랜도 디즈니랜드로 몰려옵니다. 줄을 서느라 바쁠 지경이었으나 일생에 단 한번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견딥니다.


  자, 다시 합천에 갑니다.





  보시다시피, 플로리다에서처럼 '공연'을 하는 곳은 아닙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찍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일반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플로리다의 공연과 다를 바 없으나, 영화나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공연과는 다른 감동을 갖습니다. 공연을 통해 모든 것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에 나왔던 실제의 모습을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로 만들어진 드라마 세트장을 보기는,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과거, 드라마 <국희>를 찍으면서 MBC가 의정부에 세웠던 세트를 보았고 <태조 왕건> 때 KBS가 건설했던 문경 세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10년 만에 합천에서 보면서, 이제는 세트장 이름이 영상테마파크장으로 변한 만큼 그 내용 또한 튼실해졌음을 알게 됩니다. 전차는 움직이고, 집은 조금만 더 손질하면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보입니다. 성석제의 최근 소설 <위풍당당>이 떠오릅니다. 




  위의 간판 하나에서 보듯이 합천영상테마파크는 디테일에 충실합니다. 드라마와 영화의 유명한 세트장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구경을 가는 '파크'가 되었을까를 알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플로리다의 할리우드스튜디오가 나름의 규모와 맛과 멋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나라의 영상테마파크도 나름의 색채와 멋이 있습니다. 제대로 만든 구경거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영상테마파크를 나와 버스에 오릅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이 남명 조 식 선생이 머물렀던 뇌룡정입니다.




 설명에 나와 있듯이 남명 선생이 48세 되던 해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던 공부방입니다. 새로 지은 건물은 비까번쩍했으나, 내 눈에는 그 옆에서 쓰러져가는 실제의 옛 건물이었습니다.



커피믹스 사진


  새로 지은 큰 집 곁에 쇠락한 옛집이 보입니다. 집은 작고, 대문은 더 작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지만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던 듯합니다. 1970년대 전기가 처음 들어올 당시의 전선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마저도 이제는 옛것이 되었습니다.


  '고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품격, 아름다움, 이쯤의 뜻이 될 것입니다. 바로 고졸함이 우리 전통의 멋 가운데 하나라면 남명 선생의 공부방이 고졸함을 가장 적절하게 드러내는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명 선생의 공부방 대청마루에서 뒤안을 향한 문을 엽니다. 그곳에는 위와 같은 놀라운 정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 풍경화입니다. 문틀은 프레임입니다. 프레임은 인간이 만들었고 그 안의 그림은 신이 그렸습니다. Painted by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