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이야기

황매산의 억새라!

 얼떨결에 따라나선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의 팸투어에서 값진 경험을 많이 합니다. 그곳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억새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름만 알았을 뿐, 어떤 모양인지, 억새군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내는지, 지식은 물론 감도 없었습니다.


  황매산 모산재에서 내려와 영암사지 터를 거쳐,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이 바로 황매산 억새밭이었습니다. 


  버스는 산 중턱을 지났습니다. 시차 때문에 비몽사몽 하는 사이에 버스가 우리를 떨군 곳은 황매산의 억새밭이었습니다. 버스가 굽이굽이 올라갔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내리자마자 역시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모국 나들이에서 연달아 큰 선물을 받는 기분입니다.




  황매산에 와서, 매산재에서의 풍경에 이어 다시 한번 놀랍니다. 산 정상 가까이에 놀라운 정경이 펼쳐집니다. 바로 억새밭입니다.




  억새라고 했을 때, 그 이름은 선입견 섞인 어감 때문에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억세다', 혹은 억척스럽다'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억새를 보면서 '억척스럽다'는 단어조차도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억새밭 사이에 이렇게 길이 나 있습니다. 안내를 맡은 합천군 관계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연인들의 명소로 이름이 금방 높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풍경을 보는 것도, 풍경 사이를 걷는 것도 좋은데 억새밭에 들어가 앉으면 외부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천혜의 요새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내 비록 늙었으나 청춘의 그 설렘이 무엇인지는 알겠습니다. 그 설렘 속에서 할 말은 또 얼마나 많이 만들어질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름답다는 것은 바로 이같은 광경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신의 뽀샵'을 운운한 적이 있거니와, 위의 풍경은 뽀샵을 넘어 대한민국에 대한 신의 축복을 느끼게 합니다. 거대하지도 않으면서 거대해 보이고, 황량한 느낌을 살짝 풍기면서도 살풍경의 느낌은 주지 않습니다. 처연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가을의 초입에 단풍과는 다른 느낌으로 억새 풍경은 마음 속으로 단박에 다가옵니다.


  말을 들으니, 이곳은 봄의 철쭉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넓은 산이 철쭉으로 뒤덮인다면 그 또한 장관이겠습니다. 봄 철쭉, 가을 억새…. 대단한 조화이자 조합입니다. 봄의 풍경 또한 얼마나 근사할지, 눈을 감아도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조물주가 한반도에 내린 이 대단한 작품을 감상하는 와중에, 방해를 받는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산악자전거(MTB)를 타는 족속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 산에서, 걷는 사람들 사이로 산악자전거를 보란 듯이 달리는 것은 폭력입니다. 풍경을 깨고, 고요함을 깨고, 걷는 사람들의 안전과 고요한 마음을 깨는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본인이야 즐기기 위해 그러하겠지만, 그 즐김이 다른 이들의 고요한 즐김에 어떤 방해가 될 것인지 한번만이라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산악자전거를 탄 사람은 우리 앞을 휙 하고 지나갔습니다. 참 촌스런 녀석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이른바 '오토 캠핑장'의 모습입니다. 억새밭을 내려오는 중에 캠핑장을 발견합니다.  자동차를 몰고 온다는 뜻으로 '오토'라는 말이 붙었을 터인데, 야외에서 값비싼 텐트를 치고 기어이 자고야 말겠다는 '눈물 겨운 의지'가 곳곳에서 보입니다. 전기의 코드가 부족하여 화장실에서 경쟁적으로 뽑아가는 모습이 '안달' '북새통'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안쓰러움이 느껴집니다.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사용료가 거의 무료에 가깝다 합니다. 받을 돈은 제대로 받아가면서, 숲도 조성하고, 전기 코드도 많이 마련하고, 튼튼하고 깨끗한 화장실과 샤워실 등의 인프라를 마련한 다음 캠핑장을 운영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캐나다의 주립 공원에서 배워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