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코스를 걷던 여성이 살해되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듣습니다. 혼자 걷다가 어느 몹쓸 놈을 만나는 바람에 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마음의 평화와 평온을 찾고자 걸으러 간 제주올레길에서 참변을 당했다니, 더 안타깝습니다.
이 사건을 전하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외국에 사는 나까지도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 있으니 바로 언론의 보도 행태입니다. 인터넷에 뉴스가 범람하면서, 좋은 기사, 좋은 기자의 자리를 자극적인 기사, 자극적인 기자가 대체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기자라는 직함을 가진 놈(者)들은 제주올레의 치안에 문제가 있다고 보도합니다. 제주올레를 걷다가 발생한 사건이 맞기는 맞습니다. 그런데 기사들은 마치 제주올레 자체에 무슨 큰 결함이라도 있다는 듯, 논조를 펴갑니다.
심지어 일부 제주 주민의 입을 빌어 가로등이니 CCTV니를 설치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놓습니다. 그것을 왜 제주올레를 향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공공 치안에 관한 문제는 제주올레가 아니라 제주도와 제주도 경찰에 요청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 기자들은 제주올레를 마치 삼성이 운영하며 돈벌이하는 에버랜드쯤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일부 기자들이 널뛰며 쓴 기사들 때문에 제주올레 자체가 그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받겠다 싶습니다. 심지어 제주올레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풍문도 들려오는 걸 보면,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제주올레는 어려운 국면을 맞은 것 같습니다.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씨가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도 이와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사진으로 서명숙씨의 얼굴을 보니 말이 아닙니다.
제주올레 7구간에서 만난 멋진 풍경입니다.
사람이 사는 어느 곳에서나 사건 사고가 나게 마련입니다. 캐나다 동부의 브루스트레일이나 여러 캠핑장에서 사고는 예기치 않게 찾아옵니다. 캐나다 서부의 록키산맥 쪽에서는 곰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이런 사건, 사고들의 책임을 과연 트레일 운영자측에 전가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책임을 그렇게 묻는 식이라면, 지리산 설악산 등에서 발행하는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제주올레는 한국에서 걷기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자연 속에 있던 것을 '발견'하여 틀을 만들어준 것일 뿐, 사람들을 오지로 내몬 것이 아닙니다. 제주올레를 걸어보면 알겠지만,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라도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 많지는 않습니다. 캐나다 브루스 트레일의 숲과 비교하자면, 마을과 숲을 지나는 제주올레는 사람들과 퍽 가까이에 있는 편입니다.
기자들은,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제주올레를 부각하며 기사를 썼을지 모르지만, 이런 투의 기사 때문에 비협조적인 관 및 지역 언론과 줄기차게 싸우며, 힘겹게 만들어온 새로운 차원의 문화가 훼손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한국에 생겨난 그 많은 길들,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걸으며 갖게 되는 마음의 평안 등등은 모두 제주올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문화의 원천이, 일부 몰지각하고 정신머리 없는 기자와 매체 들 때문에 훼손된다면, 이것은 모두의 큰 손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주올레의 안전성 운운을 하려거든, 기자들은 제주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을 두들겨 패야 합니다. 제주올레를 걷기 위해 뭍에서, 해외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 사람들 덕분에 제주도의 경제가 다시 일어났다면 제주도의 경찰은 안전 관리 대책을 진작에 수립했어야 마땅합니다. 그것은 민간단체인 제주올레가 할 일이 아니라, 경찰이 해야 할 의무입니다. 국민들은 그런 일 하라고 세금 내고, 경찰에게 월급을 줍니다.
제주올레가 무슨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인해 누구에게 대단한 권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제주올레는 그저 한국의 살아 있는 문화일 뿐입니다. 한국 사람, 나아가 세계의 사람들에게 속하는 새롭고 신선한 문화일 뿐입니다. 그걸, 적극 보호하자고 나서기는커녕 이런 식으로 깨자고 기사를 쓰는 자들, 그걸 기사라고 자기 매체에 내보내는 데스크들, 반성하기 바랍니다.
명품을 만들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깨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고려청자가 깨지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사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상민 교수는 왜 박근혜씨에게 "쇼"라고 하지 않는가 (50) | 2012.08.29 |
---|---|
나이 50, 4개월 만에 12kg 감량기 (3) | 2012.08.25 |
또 노정현씨 아파트가 '허드슨 강변의 고급'이라고? (3) | 2012.02.27 |
문재인과 김경문의 공통점, 이명박과의 차이점 (2) | 2012.01.10 |
고대 의대 관련 글을 내리며... (13) | 2011.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