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이야기

캐나다 신문이 쓴 김연아-오서의 결별 이야기



  어제 날짜 캐나다 최대 신문 <토론토스타>의 스포츠면 머리 상단에 김연아가 올라와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다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의 대표 자격으로... 해당 지면을 열었더니, 역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빙판 위로 복귀한다는 내용입니다. 김연아를 1면에 작게나마 내준 만큼 속지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사진을 더 크게 실었고, 김연아는 최근 연습 광경이 조금 작게 나왔습니다. 올림픽 챔피언을 세계선수권자보다 높게 평가하면서 김연아를 좀더 대접해주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모스크바 발로 쓴 이 기사에는 다른 내용은 거의 없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에 관한 이야기뿐입니다.

  이 가운데서 궁금했던 점은 캐나다 언론이 김연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김연아 기사를 쓰니, 브라이언 오서와의 관계와 결별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과거 <토론토스타>는 김연아를 소개하면서 '(오서라는) 거장의 기계'라고까지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오서에 대한 캐나다의 사랑은 지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브라이언 오서를 캐나다의 아이콘이라고 소개합니다. 물론 김연아는 한국의 아이콘이라고... 

  기사는 항상 민족주의를 앞세워 살벌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잠깐 설명한 뒤, 양국의 대표가 다시 붙는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오서의 결별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동안 오서와 김연아가 왜 결별했는가에 대한 캐나다 신문의 분석을 본 적이 없어서, 캐나다에 사는 한국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흥미로웠습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일생일대의 라이벌인 모양입니다. 라이벌의 스승을 탐내는 모습도 그렇고, 거기에 흔들린 스승에게 서운해 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습니다.



 아사다 마오가 오서에게 접근한 것은 김연아가 은퇴 여부를 두고 약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일 때입니다.  아사다는 오서에게 "지금 생각이 많은 김연아가 은퇴 한다면, 나를 지켜봐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오서는 김연아 측에게 이같은 제안을 받았다고 알렸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서가 아마도 김연아측으로부터 더 좋은 조건을 따내기 위해, 아사다의 제안을 슬쩍 흘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김연아 측은 오서가 다른 선수도 아닌 아사다 마오를 입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배신으로 여겼다는 얘기입니다. 

  세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역학 관계가 재미 있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가 은퇴하면 나를 봐달라고 했고(이것은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오서는 이 제안을 나에 대한 대접을 달리 해달라는 카드로 활용했고(김연아가 은퇴한다면 아사다에게 갈 수도 있고), 김연아는 아직 결정난 것도 없는데 오서가 어떻게 아사다 마오의 코치를 맡는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며 배신감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사제였는데... 다름아닌 라이벌이 끼여들어 깨져버렸습니다. 이런 사이를 깨는 걸 보면 라이벌은 참 무서운 존재입니다. 
 

  <토론토스타>의 분석을 보면, 세 사람 모두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모두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오서로서는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한 카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카드라는 게 다른 선수가 아닌 아사다 마오였고, 김연아가 거기에 발끈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

  결국 본의 아니게 김연아의 최대 라이벌 아사다 마오가 끼여 들어 오서-김연아의 사제 관계를 끊어놓은 셈입니다. 오서의 실책이라면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 관계가 얼마나 살벌한 것인지를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하긴 한-일 관계는 라이벌 국가가 없는 캐나다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토론토스타>는 이번 대회에서 일본 선수들이 갖는 비장함에 대해 설명했고, 김연아에 대해서는 자기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위해 스케이팅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연아의 안무가인 캐나다 사람 데이비드 윌슨의 입을 빌어서 말합니다. 김연아는 올림픽 챔피언이 된 직후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원치 않았으나, 조국 팬들의 성원 때문에 거의 떠밀려 나가다시피 하여 아사다 마오에게 밀렸다는 것입니다. 윌슨은 김연아에게 이번 대회가 조국에 바치는 메달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공연하는 첫 무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합니다.  

  자국의 영웅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지도 않고, 스승의 은혜를 저버렸다고 비난하지도 않고, 라이벌의 사제관계에 끼여들어 깽판을 놨다고 욕하지도 않고, 사실을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분석한 품격 높은 스포츠 기사입니다. 누가 봐도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참 인간적인 기사입니다.  사상 최대의 격전이었던 올림픽 직후, 두 선수와 코치 사이에 얽힌 관계를 이야기하고, 그  흥미로운 관계를 통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의 관전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얼마전 브라이언 오서가 미국 선수에게 '잘렸다' '팽당했다'고 표현한 한국의 기사와 비교하니, 격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