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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따뜻한 날씨에 토론토 경기는 최악




  캐나다에 살러온 지 내일 모레면 어언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날씨와 관련하여 처음 겪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 이상한 일이 여럿 생겼습니다.

  지난 9월 이후의 일만 기억해보자면 여름이 유난히 길었습니다. 9월 하순에 영상 27도까지 기록했으니 한 여름이 9월말까지 갔습니다. 토론토의 위도가 만주 벌판과 비슷하여 9월말이면 코끝이 시리기 시작합니다. 올해에는 그냥 반팔 셔츠를 입고 다녔습니다.

  10월 중순경인 캐나다 추수감사절쯤이면 추위가 본격화하여 11월 들어서면 겨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가을이 참 길게 갑니다. 눈발은 딱 한번 날리기만 했을 뿐입니다. 눈없는 토론토의 11월은 73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11월말 캐나다 토론토의 주택가 우리 집 앞 모습입니다. 눈이 쌓이고 언덕이 생겨도 시원찮을 판인데 잔디가 이렇게 파릇파릇합니다.

  토론토의 혹독한 겨울을 겪으면서 과거 만주 벌판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새삼 생겨났었습니다. 옷과 신발도 변변치 않은 터에 이 뼛속을 애는 추위 속에서 어떻게 활동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올해는 참 이상합니다. 11월말까지 영하로 떨어진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11월 초반에는 낮 기온이 15도 가까이 육박하다가 11월말까지 10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11월29일인 오늘 조금 춥다는 게 겨우 영상 8도입니다. 캐나다에 와서 추위를 이렇게 기다려본 것은 처음입니다.

   계절이 계절답지가 않으니, 경기에 심각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데 날씨까지 더하여 경기 침체가 말도 못할 정도입니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경기가 돌아갑니다. 우리 가게의 경우, 10월 중순께부터 장갑 모자 귀마개 등 싸구려 월동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야 하는데, 올해에는 그냥 그대로 잠겨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들도 움직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옷에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합니다.

   대형 몰이나 백화점의 옷가게들에게도 푹한 날씨는 직격탄입니다. 장사가 안되면 방법이 없습니다. 11월 중순부터 '박싱데이 세일'을 시작했습니다. 'Boxing Day'는 12월26일인데, 캐나다에서는 휴일입니다. 정확한 지는 모르겠으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박스를 풀어 '공장도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날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요즘에는 박싱데이에 전자제품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격이 절반 이하거나 비싼 전자제품의 경우 수백달러는 싸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박싱데이 가격으로 내놓아도 물건이 팔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저렴한 가격으로 자극한들 날씨가 자극하는 본능적인 소비 욕구는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렇듯 스몰 비지니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계절 상품이 잠겨 있으니 그 파급 효과가 다른 쪽으로 이동해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돈이 돌지 않으니, 먹는 장사든 무엇이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 같으면 학교의 언덕에서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야 합니다. 눈 한 점을 구경할 수 없으니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가 주요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나쁜데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 형국입니다. 2006년 겨울에도 눈이 오기는 했으나 쌓이지 않는 바람에 이듬해 1월8일까지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그 해 겨울 또한 너무 따뜻하여 '그린 크리스마스'로 불렸습니다. 

  캐나다에 이민와서 추위를 기다려보기는 처음입니다. 더 걱정되는 것는 추위가 늦게 왔다가 지난 여름처럼 늦게 물러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봄은 봄다워야 하는데…. 월급쟁이를 하다가 장사를 하게 되니 날씨에도 이렇게 관심이 많아집니다. 버는 돈만 놓고 보자면, 월급쟁이 시절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날씨에 신경 안써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