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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호밀밭의 파수꾼'과 'The Catcher in the Rye' 사이의 아득한 거리 - J.D. 샐린저를 추모하며

알라딘에서 가져온 문예출판사의 번역본 표지 이미지. 1998년 번역본인데 그 뒤에 개정했는지 궁금하다. 개정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인트 앨버트 = 김상현)캐나다로 이민 올 때 싸들고 온 책중 하나가 J.D. 샐린저(J.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이덕형 교수의 번역으로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너도나도 좋은 책이라 합창하고, 북미지역 중학생들의 필독서라 하기에 읽어봤다. 하지만 왜 그렇게 좋은 책이라고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럼에도 싸들고 온 이유는, 다시 한 번, 너도 나도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기에...

그러다 원본을 사서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른바 '걸작'으로 분류되는 영문학 소설을 하나둘 읽어보자는 거창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영어로 읽고 감동의 쓰나미에 휩쓸린 여세를 몰아 서점에서 뽑아든 게 이 책 'The Catcher in the Rye'였다. 

원문으로 읽고 나서야, 왜 이 책을 걸작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주인공의 소외감, 어른 세대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괴로움, 그런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반항이, 싱싱한 생선처럼 펄떡이는 문체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과 그 세대가 구사하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표현, 거침없는 욕설로 드러나는 그 세대의 불만과 반항과 고뇌였다. 그러한 노골적이고 저속한 표현이 1950년대에 얼마나 큰 충격과 스캔들로 받아들였을지 어렴풋이나마 상상이 되었다. 

The Catcher in the Rye 초판 표지. 출처: Britannica.

그러면 왜 한국 번역서로는 그런 감동과 충격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사회문화적 차이 때문일 것이다. 세대차, 세대간 갈등이 어느 나라에나 공통된 현상이라고 해도 그것이 한 사회에서 표현되는 양태는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갈등의 색깔과 강도, 습도 또한 크게 다를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번역서의 표현이 너무 점잖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서에 표현된 주인공의 불만과 방황, 심적 혼란, 갈등이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령 fuck을 '제기랄' 식으로 순화해 버리면 그 단어가 가진 밀도는 속절없이 느슨해지고 만다.

세 번째 이유는 '말투'가 소설속 인물들의 관계와 사회적 상황에 맞게 적절히 조절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말투로 번역해야 더 어울릴 상황에서 존댓말이 쓰이고, 혹은 그 반대로 번역된 상황. 

원서와 번역본을 대조해 읽으면서 느낀 불만과 아쉬움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미 7, 8년은 지난 과거의 기억이라 구체적으로 짚기가 어렵다. J.D. 샐린저가 9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흐릿해진 기억의 갈피를 헤집어 정리하려니 쉽지 않다. 이사하는 과정에서 번역본을 버려버린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한 가지 기억이 더 있다. 원서의 짤막한 맨 마지막 장이, 문예출판사의 번역본에서는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잘못 봤나 싶어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확인한 일이라 그것은 분명하다. 도대체 왜? 

내용이 긴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심산으로 마지막 장을 번역본에서 제외해 버리는 '범죄'를 저질렀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 뒤에 나온 개정 번역본 - 개정 번역했다면 -에는 멋대로 빼버린 그 마지막 장이 들어가 있기를 바란다. 

남의 일에 너무 호기심이 많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문득문득 궁금했다. J.D. 샐린저는 왜 그렇게 극단적인 은둔의 길을 택했을까?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으며 온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작가가, 1, 2년도 아니고 50년을 철저한 은둔으로 일관했다. 그의 죽음 뒤에 남은 원고 안에 그 이유가 들어 있을까? 

J.D. 샐린저의 명복을 빈다. 

: 여러 언론에 실린 J.D. 샐린저 사망 기사 (출처: Arts & Letters Da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