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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MBC 욕심이 '선덕여왕' 망쳤다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계속 쓰는 것이 좀 거시기하기는 합니다. 곁에서는 "한국 드라마 이야기 좀 그만 쓰라"고 합니다. 그래도 해온 이야기이고 또한 올해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졌던 작품이니 나도 '쫑'을 내기는 내야겠습니다. 

  한국 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오늘 '선덕여왕' 마지막회를 보았습니다. 미실이 죽고나서부터 이걸 더 왜 하나 싶었으나 압도적인 파워가 사라진 자리에서 고만고만한 힘들이 치고 받는 재미도 쏠쏠하기는 했습니다. 도톨이들의 싸움 또한 때로 관전하는 재미가 작지 않았습니다.

  오늘 마지막회를 보니, 그 관전의 재미는 순전히 연기자들의 열연에서 나왔습니다. 이야기는 지리멸렬하고 말도 안되는 쪽으로 흘러가는데도 계속 보게 하는 힘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현정의 열연을 칭찬했지만 이요원의 연기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빼어났습니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부실하면 배우들의 열연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연극은 배우 놀음이고 영화는 전적으로 감독의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절대적인 사람은 바로 시나리오 작가라고 봅니다. 시나리오가 그저 그러면 아무리 명감독이라 한들 찻잔 속의 태풍밖에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선덕여왕'은 미실이라는 카리스마를 등장시켜 여인천하를 여는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단번에 태풍을 만들어냈습니다. 고현정의 탁월한 연기는 태풍의 핵으로서 그것을 수개월 동안 유지시켰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미실의 자살과 선덕여왕의 등극으로 막을 내렸더라면 김수현의 몇 작품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만한 드라마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진이 너무 흉칙하여 삭제했습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장면이라고 한국 기자들은 용비어천가를 부릅니다. 비담이 짝사랑을 했을는지는 몰라도 선덕여왕이 언제부터 그렇게 정을 줬는지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연장 방영을 위해 무리수를 두니, 배우들의 좋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작품으로서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작품으로서의 선덕여왕이 안쓰러워 보입니다. 배우들도 안쓰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기가 높다보니 방송사에서 욕심을 부렸습니다. '연장 방영'. 작품을 죽이는 쥐약이 되었습니다. 시청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한다 한들, 미실을 중심으로 짜여 있던 완결된 구조가 허물어지고 질질 끌리다 보니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여왕과 비담의 러브스토리를 넣고 결국 난으로 마무리를 한 것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여왕의 러브스토리는 유신과 관계를 끊을 즈음에 훨씬 더 빛났습니다. 대업을 이루기 위해 첫사랑과 헤어진 덕만이 여왕이 되어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끼워맞추기를 하다보니 이렇게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선덕여왕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단연 미실이고 인기의 견인차 또한 미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MBC의 욕심이 드라마를 망친 셈입니다. MBC는 왜 이런 욕심을 유독 많이 부릴까, 잘 모르겠습니다. 에덴의 동쪽도 욕심 부리다 망가졌는데...

   드라마가 끝났으니 DVD 작품집으로 묶여 해외에 판매될 터인데, 미실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면 훨씬 더 빛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