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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한국에는 커피점이 왜 이리도 많을까?

 외국에 살다 한국에 가면 놀라운 일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1970년대 황금기 이후 변화와 성장을 멈춘 서구의 선진국과 비교하자면 한국은 외형적 변화만으로도 그 나라들을 훌쩍  넘어선 듯이 보입니다. 지하철과 공항, 철도와 같은 공공 편의시설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커피에 관심이 많은 내 눈에는 변화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커피점이 보입니다. 속된 말로 '무슨 놈'의 커피 전문점이 그렇게나 많은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한국의 커피점을 보면서, 세 가지 점에서 놀랍니다.



서울 강남의 어느 빌딩에 있는 커피점들. 빌딩 하나에 커피점 3개가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서울에 커피점이 얼마나 많은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딩 주인이 어떻게 같은 업종을 한꺼번에 들였는지 그것도 참 궁금합니다.


  첫째는 커피점 숫자입니다.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한번, 하면 한다'는 한국 특유의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자고 작정한 듯, 커피점이 많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요즘 커피점이 대세야." 급속하게 늘어난 커피점의 숫자로만 본다면, 한국인들은 커피를 정말 사랑합니다. 


 두번째는 커피 가격에서 놀랍니다. 커피값이 캐나다보다 2~3배는 비쌉니다. 웬만한 곳에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커피값이 비쌉니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 커피를 마시러 가는 장소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값이 비쌉니다. 그래도 장사가 된다는 게 신기하고, 그 비싼 임대료를 어떻게 물고 버티는지도 신기하고, 무엇보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점포수로 세를 과시하는 것 또한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다음은, 커피의 질입니다.  값이 비싸다고 하여, 요즘 새롭게 주목 받는 이른바 스페셜티 커피(질적인 면에서 상위 15% 안에 드는 고급)도 아닙니다. 평범한 커피를 평범하지 않은 가격에 팝니다.


 하나만 더 꼽습니다. 화려한 인테리어입니다. 물론 지저분한 곳보다는 깨끗한 곳이, 밋밋한 분위보다는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실내 장식이 좋습니다. 그런데, 인테리어에 들인 저 돈을 커피 팔아서 언제 회수할까 하는 것이 퍽 궁금합니다. 궁금하다기보다는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점이 왜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났을까를 생각하는 데 단초가 될 만한 것이 여러 개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커피 선진국들에 비해 커피를 아직 덜 마십니다. 1인당 1년 평균 소비량이 일본 사람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커피점은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는 듯 보입니다. 왜 그럴까?


  한국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기는 합니다. 커피의 쓴맛은 숭늉 맛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촌로들도 다방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은 스쿠터를 타고 모내기하는 논으로 커피 배달을 가기도 합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스쿠터 타고 배달 나가는 장면인데 물론 주로 간 곳은 여관이었겠으나, 커피 배달만을 위해 모내기하는 논으로 나간 적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면 이문구 소설의 장면과 오버랩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중현이 쓴 <커피 한잔>이라는 노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커피는 마시는 음료일 뿐 아니라 만남의 매개체였습니다. 데이트를 하자고 할 때, 요즘 말로 작업을 걸 때 하는 가장 흔한 초보적인 멘트가 "커피 한 잔 하실래요?"였습니다. 마땅히 갈 데도 없고, 초면에 술이나 밥을 먹자 하기도 좀 그런 상황에서, 다방에서 만나 이야기 좀 하자, 다시 말해 '당신한테 관심 있습니다'라는 마음을 커피로 표현했습니다. 커피는 이렇게 은연중에, 한국 사람들 삶속에 풍속의 하나로 녹아 들어 있습니다.


  그래도 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커피점이 왜 그렇게 많이 늘어났을까?


  제가 보기에, 커피의 폭발적 증가는 역시 한국의 사회 및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IMF 구제금융 시대 이후 한국에서는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이라는 용어가 일반화했습니다. 그렇게 직장에서 나온 이들은 어떻게든 밥벌이를 해야 합니다. 청년 실업 문제가 장난이 아니게 심각합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도 밥벌이를 해야 시집 장가라도 갈 수 있습니다.


  창업이 해결책입니다. 식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선뜻 다른 장사를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커피점은 아주 만만해 보입니다. 커피점 한다고 하면 나쁜 의미의 장사꾼 혹은 장사치 취급도 받지 않습니다. 커피점 사장! 이미지 우아합니다.


  이렇게 하여, 한국에서는 커피점이 대폭발합니다. 1990년대 말쯤부터 한국에서 커피를 가지고 이른바 교육을 하던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복이 터졌습니다. 터져도 제대로 터졌습니다. 2001년 처음 생겼던 대학 사회교육원의 커피강좌가 지금은 100개가 넘습니다. 수요는 이렇게 많아졌는데 가르칠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대박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커피점을 하면 돈을 과연 벌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니올씨다'입니다. 빛좋은 개살구, 참 많습니다. 커피 장사도 장사입니다. 우아하게 보인다면,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 백조처럼 보이지 않게 애써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아하게 보일수록 더 힘든 법입니다. 


  결국 내가 낸 책으로 이야기가 귀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