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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커피 광의 커피 장인 탐방기 '커피머니 메이커'(김상현 서평)

책을 고맙게 받은 지 넉 달이 넘어서야 되잖은 독후감을 쓴다.  책의 발신지는 토론토다. 지은이 성우제 씨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지금 나오는 짝퉁 말고 진짜 시사저널. 그 시사저널은 지금 '시사IN'이 되었다)의 선배이자, 토론토에서 가장 가깝게 지낸 이웃이고 친구이고 선배였다. 지금도 토론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성선배와 그 가족이다 (성우제 선배의 블로그는 여기). 


성선배는 커피 광이고 전문가다. 거의 매주 주말이면 당신 댁이나 우리 집에서 만나 한주일의 회포를 풀곤 했는데, 커피는 그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이자 소통의 매개체였다. 당신 댁에서 만날 때와 우리 집에서 만날 때, 커피의 맛은 하늘과 땅이었다. 당신께서 손수 드립으로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제조해주신 커피와, 브라운 커피 메이커로 적당히 내린 커피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책 머리말에도 나오지만 캐나다로 이민 오실 당시 성선배의 꿈은 맛난 커피 전문점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한국에서 커피 수업을 쌓았고, 내로라 하는 커피 명인들을 만나 그들의 비결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연 속에 당신의 커피 전문점 꿈은 그저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팀 호튼스, 스타벅스, 티모시, 세컨드컵,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 컨추리스타일 등 온갖 커피 체인들이 피터지는 경쟁을 벌이는 형국에서, 자본과 마케팅, 기술력에서 절대적 열세일 수밖에 없는 개인이, 더욱이 이렇다 할 '장사 경험'도 없는 개인이 그저 꿈만으로 모험수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사업의 꿈은 꿈으로 끝났지만 커피에 대한 당신의 관심과 애정은 끝나지 않았다. 이 책 <커피머니 메이커>(시사IN 북)는 커피에 대한 당신의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의 증거이자, 한국의 커피 장인들에 대한 헌사라고 할 만하다. 그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유별난가는 이 책에 소개된 커피 장인들의 거주지와, 이들을 소개한 지은이의 거주지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따져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한국의 내로라 하는 커피 장인들의 거주지는 당연히 한국이다. 하지만 그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이야기를 들은 지은이의 거주지는 캐나다 하고도 토론토이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아득하고 아득한 거리, 직항 비행기로만 13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하는 거리다. 


시사저널을 사직하고 캐나다로 이민오실 때, 성선배는 이런 선물을 동료들로부터 받았다. 그의 남다른 커피 이력을 잘 보여주는 기념품이다.

지은이는 인터뷰 할 14명의 커피 명인, 장인, 전문가, 사업가를 미리 선정하고 약속 날짜를 잡은 뒤 보름을 계획하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오가는 시간을 따지면 하루에 한 명씩 만나는 강행군이었다. 


<커피머니 메이커>는 커피 전문가의 남다른 생각과 시선을 엿보게 해준다. 그만큼 여러 커피 명인과 전문가들의, 그들만의 사업 노하우와 커피 철학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명인, 명장, 장인 같은 단어를 서슴없이 쓸 수 있는 한 이유는 이 책에 선정된 14명의 기준, 즉 적어도 10년 이상 커피 전문점이나 사업체를 운영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어떤 분야든 10년 이상 버텨야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테고, 어떤 분야에서든 10년 동안 열심히 파고들면 그 분야의 박사가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라는 지은이의 설명은 그 자의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커피머니 메이커>는 그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그저 커피에 대한 낭만적 명상이나 신파조의 커피 예찬론이 아니다. 이들 14명이 어떤 방향이나 계획, 믿음으로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어떤 운영 철학을 가졌는지, 이들만이 가진 독특한 비즈니스 방식은 무엇인지, 지극히 구체적으로 접근한 실용서이다. 매 장마다 취재한 사업체의 연락처와 특징을 요약해 소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딱딱하고 밋밋한 '실용서'로만 짐작한다면 큰 오산이다. 각자 그 나름의 입지와 명성을 구축하기까지 어떤 고난과 역경을 거쳤는지를 생생하고 실감나게 묘사한 14편의 '인간극장'의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과 사업성을 내세우는 비즈니스 실용서의 차가움 대신, 커피 하나에 인생을 건 커피 광들의 남다른 열정과 애정을 담은 '사람 이야기'의 따뜻함을 <커피머니 메이커>는 꼼꼼하고 맛깔스럽게 전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문화부 기자로 일하며 갈고 닦은 남다른 취재력과 관찰력, 그리고 그것을 잘 정돈되고 정갈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글발' 때문에 가능했을 터이다. 


토론토 시절, 나는 성선배의 커피를 얻어마시며 늘 감탄만 했다. 와 정말 맛나네요! 에드먼튼으로 훌쩍 날아온 이후,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릴 때마다 그 특별한 커피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리워한다. <커피머니 메이커>를 읽으면서, 선배가 내려주던 커피가 더욱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