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를 달라고 했더니 두꺼운 팸플릿 같은 것을 가져다준다. 24쪽짜리 차림표 표지에 ‘씨앗에서 컵까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가비양’에서 마실 수 있는 메뉴와 가격뿐 아니라 커피콩을 수확한 지역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적혀 있다. 세인트헬레나.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진 이 섬에서도 커피가 생산된다. 나폴레옹은 죽어가면서도 커피 한잔을 원했으며 “이곳에서 얻을 것이라고는 커피밖에 없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황제의 커피여서 그런지 가격은 커피의 최고봉 블루마운틴(1만5000원)보다 높은 1만8000원이 매겨져 있다.

콜롬비아 시에라네바다, 인도네시아 울트라 만델링, 에스프레소 컬렉션 같은 커피에서부터 녹차·샐러드·단팥죽·쿠키·케이크에 이르기까지 차림표에는 설명이 자잘하게 붙어 있다. 바로 내가 마시고 먹는 것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맛이 새롭다.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프를 손으로 내려왔는데 강한 가운데 단맛이 돈다. 양동기 가비양 대표는 “우리는 이렇게 스토리 마케팅을 많이 한다”라고 했다.

   
ⓒ시사IN 백승기
도심에서 가깝지만 시골티가 물씬 나는 가비양 풍경.

‘시각 마케팅’ 위해 카페 한가운데 ‘공장’까지 설치


가비양은 나무로 지은 2층짜리 건물 안에 있다. 경기도 분당의 서현역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지만, 그 주변은 시골티가 물씬 풍긴다. 무덤들이 있는 야산을 뒤에 두고, 왼쪽의 텃밭에서는 채소가 자란다. 샐러드에 쓰는 채소라고 했다. 입구에 들어서서 생콩을 담은 마대 자루, 커피 원산지의 풍경, 각종 커피 기구, 원두 판매대를 보며 지나야 앉을 자리가 나온다. 

120석 매장의 한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에는 뜻밖에도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유리를 통해 공장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커피 볶는 기계 3대가 연기를 뿜으며 연두색 생콩을 검은색 원두로 만들어낸다.

화장실에라도 가려고 하면,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주방과 쿠키를 굽는 오븐 앞을 지나, 커피교실을 하는 방을 두루 구경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커피를 이렇게 볶고, 내리고, 공부하며 커피를 만든다’는 것을 저절로 볼 수 있게 한 구조이다. 양 대표는 이를 두고 ‘스토리 마케팅에 이은 시각 마케팅’이라 했다. 일반인들이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커피 볶는 풍경 등을 공개하는 효과는 여러 가지이다. 공장에서 바로 나온 커피이니 ‘신선하다’ ‘값이 싸다’ ‘맛이 좋다’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월요일 오후 다소 한가할 시간인데도 가비양의 자리는 3분의 2쯤 차 있다. 스페셜티 커피라고는 하지만 한 잔에 5000원 이상씩 하는 커피를 마시러 도심도 아닌 이곳까지 자동차를 몰고 일부러 찾는다는 것은 조금 의아해보일 법도 하다. 더구나 라이브 카페가 망해서 나간 외진 이 자리에, 가비양이 들어선 지 2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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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있는 커피 볶는 기계들(위) 덕에 고객들은 가비양의 커피가 더 신선하고, 값싸고, 맛이 좋다고 여긴다.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비양이 커피의 깊고 풍부한 맛과 분위기로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까닭은 양동기 대표의 젊은 시절 커피 관련 ‘스펙’이 이곳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처음 본 2000년께, 양 대표는 일본 커피 기구를 수입하던 30대 초반 젊은이였다. 어깨에 가방을 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전국의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들은 대부분 양 대표의 고객이었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하다가 커피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일본의 커피 ‘선진 문물’을 누구보다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고노나 칼리타 같은 유명한 커피 기구 회사와도 어렵지 않게 거래할 수 있었다.

커피 싸움, 재료가 승부 판가름

당시 그가 고노의 사장 고노 도시요를 만나러 가면서 설립한 회사 이름은 ‘가비양’이었다. 양 대표에 따르면, 가비는 예전에 커피를 일컫는 순우리말이었다. 거기에다가 자기 성을 붙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발음하기 쉽게 하겠다는 젊은 시절의 다부진 꿈이 담긴 이름이다. 

그는 지금 젊은 시절의 꿈을 하나씩 실현 중이다. 한국에서 커피 볶는 문화가 본격화한 1990년대 말에만 해도 한국은 주로 일본을 거쳐 생콩을 들여왔다. 일본 회사가 나눠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만큼 선택의 폭이 좁았다. 양 대표는 그 장벽을 넘은 커피 신세대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2006년부터 콜롬비아·코스타리카 등 남미의 커피 농장에서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가며 좋은 원료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 규모는 한 해에 20t 정도까지 늘었다. 콜롬비아의 산악지대 시에라네바다에서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아르아코족의 나부시마케 커피는 가비양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커피도 먹는 것이니 결국 재료 싸움에서 판가름이 난다. 원산지·종류·종자·기후·고도·품종·사람 등 관련된 모든 환경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각각의 커피가 지닌 최고의 개성을 끄집어내는 것을 늘 기본으로 한다.” 양 대표처럼 한국 커피계의 신세대들은 다름 아닌 바로 그 기본을 다지고 넓혀가는 데 큰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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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기 ‘가비양’ 대표(위)는 일본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하다가 커피를 만났다. 그는 늘 커피가 지닌 최고의 개성을 끄집어내려고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