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피 이야기

경주의 커피 유물 '슈만과클라라'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경주의 커피점 슈만과클라라 대표 최경남은 내 친구다. 2000년 봄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친구하자며 말을 깠다.’ 서울에서 기자로 일하던 나를, 경주에서 커피점을 막 시작한 최경남과 친구의 연을 맺게 해준 것은 커피이다. 커피 마니아 행세를 하던 나는 열심히 한다고 소문난 슈만과클라라에 들른 적이 있다. 경주 출장길이었다. 나는 아마추어였고 그는 프로의 세계에 막 진입한 터였다. 낮에 한번 보았는데, 자정이 넘어 그가 내 숙소에 다시 나타났다. 가게 문을 닫고 오는 길이었다. 선술집에서 동이 틀 때까지 커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경남에게는 독특하고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또 다른 동갑내기 안명규(커피명가 대표)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는 안명규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남들이 기자이라 부르던 나는 쉽게 대할 수 있어도, 커피계의 대선배에게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에 나와 사는 내가 10년 만에 다시 경주를 찾았을 때 한번 꽂히면 끝을 보려 하는그의 집요함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대 네거리라 불리는 곳의 지하에 세 들어 있던 슈만과클라라는 걸어서 5분 거리의 4층 건물로 이사했다. 물론 자기 건물이다. 건물 앞으로는 형산강이 흐른다.


  건물 앞에 서자마자 의문이 생겼다. 슈만과클라라 매장은 2층에 있다. 가장 비싸고 좋은 자리인 1층은 공장과 생콩 보관 창고로 사용 중이다. 그곳에서 최경남은 커피를 볶고 시음하고, 빵을 굽는다. “지하에서 해도 될 일을 왜 여기서 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손님도 행복하게 커피를 마신다. 그러니 당연히, 작업실이 가장 좋은 자리에 있어야지.”

  최경남은 작업실에서 행복한지는 모르겠으나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커피콩을 볶으며 스스로를 10년째 들볶고 있다. 커피의 볶는 정도는 보통 8~10단계쯤으로 나뉜다. 최경남은 그 10단계를 100으로 쪼개어 1000단위로 만들어 놓았다. 그 미세함을 보기 위해 커피 볶는 기계에 큰 돋보기까지 설치해 놓았다.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10년 정도는 기본을 쌓는 기간이다. 커피는 자연에서 얻은 열매인데 자연의 이치를 알아가면서 볶아야 제 맛이 나온다. 생콩이 지닌 성질에 따라 볶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

  커피를 볶는 데 뭐 그리 거창하게 자연의 이치까지 말할까? 그러나 설명을 들으니 그럴 법도 했다. 커피는 산지에서 볶는 방식을 따르면 가장 좋은 맛이 나온다. 이를테면, 태국에서는 커피를 10~11월에 수확한다. 한국에 들여오는 1~2월은 한 겨울이다. 38도 여름 기온에 있던 커피가, 영하 기온에서 제 맛을 내기는 어렵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콩인 생두는 환경에 민감한 만큼 기온의 변화까지 고려해 볶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두의 성질에 따라 정교하고 정밀하게 열을 조정해가며 볶아야 진짜 맛이 나온다. 맛은 경험에서 오는 것인 만큼 콩의 성질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볶는 것이 로스터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슈만과클라라는 1990년대말까지 경주 성건동 동대 네거리에 있는 유명한 음반 가게였다. 당시 최경남은 음반 가게 주인이었다. 경주에서 고전음악 동호회를 이끌던 그에게 어느 애호가가 감상실과 연주회장으로 쓰라며 건물의 지하실을 내주었다. 1999년 전기 · 수도 요금을 해결하려고 팔기 시작한 커피가 본업이 되어 버렸다. 완벽한 주객전도였다. 지금도 슈만과클라라에는 그 상호와 더불어 과거 고전음악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벽 한 쪽을 가득 메운 LPCD, 그리고 아직 100년은 되지 않았다는 조지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범상치 않은 소리가 과거 고전음악 감상실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슈만과클라라의 고전적 분위기는 고도(古都)와 잘 어울린다. 커피든 분위기든 고전적인 개념이 주류를 이룬다. 커피와 빵, 케이크는 신선함이 생명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을 따른다. 거의 매일 볶고 굽는 커피와 빵이 1층 공장에서 2층으로 바로 올라온다. 고도답게 슈만과클라라의 손님 중 60%가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관광지라고 바가지 씌우는 것 아니냐고 슬쩍 농을 걸 만큼 커피 가격은 비싼 편이다. 주전자로 내려주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프 · 수마트라 만델링 등이 7~8천원 선이고, 카페 아메리카노가 6천원이다. 커피 여러 종을 섞어 풍부한 맛을 내는 블랜딩 커피는 아예 없다. “섞을 줄 몰라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고집이 묻어나온다. 주변 커피점에서 얼마를 받는지 관심도 없고 공부에만 매달렸다는 그를, 10년 넘게 성원하면서 지하에서 4층 건물로 나오게 해준 이들은, 비싼 가격과 먼 곳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팬들이다. 최경남을 만나러 간 일요일 오후 30개 테이블은 가득 차 있었다.

 

  “고전음악 감상실이 일반 다방처럼 되는 게 싫어서 하기 시작한 공부이다. 처음에는 1년만 배우면 행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다 보니 택도 없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 알게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커피를 잘 한다, 못한다, 누구에게 배운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최경남은 1년에 네 번씩 10년째 일본에 드나들며 커피 볶는 공부를 계속한다고 했다.

 

슈만과클라라

 

경북 경주시 성건동 690-14

054-749-9449

www.snccoffee.com

경주고속터미널에서 1.6km.

특징 : 고전음악실 분위기에서 장인 기질의 업주가 직접 볶고 내리는 각종 스페셜티 커피와 매일 굽는 신선한 빵·케이크 등을 맛볼 수 있다. 리필은 되지 않으나 다른 종류의 커피를 맛보여준다. 원두 판매. 오전 11시에 문 열고 오후 11시에 닫는다. 실내 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