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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캐나다 '촌놈'의 한국 방문기


  지난 일주일 동안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먼저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한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전합니다.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다음 방문 때는 가장 먼저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하신 분들이 계실 줄로 압니다. 왠 촌놈? 

  상대적인 의미입니다. 캐나다가 촌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이 워낙 발전하여 캐나다에 사는 한국 사람이 보기에 캐나다가 한국에 비해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2년 6개월 만에 들어가는 한국이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은 빠르게 그리고 견고하게 변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빨리 변해 가는가를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으나 직접 경험하고나니 그 변화는 말 그대로 눈부셨습니다.

  한국에 사는 이들은 자기들이 사는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당신들은 당신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른다"는 말을 가끔씩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가지고 지지고 볶으며 사는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어느 곳에서든 지지고 볶는 일은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그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물가가 얼마나 싼지...한국에 가면 주로 돈을 쓰는 것이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비용입니다. 가끔씩 옷과 신발 같은 것도 삽니다. 한국산이 세계 최고의 품질과 가격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비용이 얼마나 싼지 절감했습니다. 광화문에서, 남대문시장에서 그 '환상적인' 밥상이 5~7천원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5~7달러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밥상입니다. 택시 기본 요금 2천4백원. 토론토 지하철 1회 비용 3달러(약 3천1백원)보다 쌌습니다. 밤늦게 광화문에서 방배동까지 택시를 탔는데 만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토론토에서라면 6만원 이상 나오는 거리입니다. 세 사람이 횟집에서 배가 부르도록 먹고 마시고, 회를 남겼습니다. 소주는 몇 병을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9만원이 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단 한 가지, 커피는 토론토에 비해 2~3배나 비쌌습니다. 그것도 형편없이 질 떨어지는 '썩은 커피'가 그랬습니다. 모든 것이 앞서 가는데 커피는 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물가 이야기를 더 해야겠습니다. 최고급 담배가 2천5백원(토론토에서는 9천원), 책값은 거개가 1만~1만5천원 수준, CD 한 장에 1만4~5천원. 여기에 세금이 붙지 않으니, 토론토에 비하자면 30~40% 정도는 저렴. 한 가지 비싼 것이 자동차 휘발유인데 리터당 1천6백원대. 토론토는 1천1백원대. 그러나 이동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고, 대중교통이 비교할 수 없이 발달했음을 감안하면 비싼 것이 아닙니다. 캐나다가 한국에 비해 싼 것은, 이제 고기값과 사교육비 외에는 없습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거리가 엄청나게 깨끗하게 변했습니다. 서울 지하철에 설치된 자동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지하철에 뛰어내려 자살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고,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앞으로 밀려 떨어질 염려는 없게 되었습니다. 마산에서 대전으로 오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차가 참 좋으네요"라는 말에 기사는 "폐차 직전의 후진 차인데?" 했습니다. 그 후진 버스가 그토록 편할 수 없었습니다. 요금은 또 얼마나 싼지... KTX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 속도와 쾌적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거리뿐 아니라 건물의 안과 밖이 이제는 선진국 소리를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생활 수준이 캐나다보다 높은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버스 터미널의 화장실이 쾌적할 정도니까...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선전한 한국 선수들에게 G세대의 힘 어쩌고 하는 분석 기사들이 많았는데, 그건 그 세대의 힘이라기보다는 한국이 그만큼 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거쳐간 길을 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흉물 만들기는 여전했습니다. 광화문 앞 광장이 그랬습니다. 광화문 대로에 수십년을 매연 속에서 버티며 자란 그 많던 은행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참 궁금했습니다. 금빛 세종대왕상은, 그분께는 죄송한 말씀이나,  마치 신흥종교에서 숭배되는 거대한 우상 같았습니다. 도로로 둘러쌓인 그 광장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고 그 좋던 은행나무들을 다 뽑아내고 돌을 깔아버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드넓은 여의도 광장을 나무가 있는 공원으로 만든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왜 광장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청앞에도 큰 광장이 있던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친구들은 나이도 지위도 높아졌습니다. 우리 술자리에 누가 왔길래 소개를 하면서 나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가 내로라하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지위와 여유를 동시에 주었습니다. 그저 뿌리내리고 생존하기에도 벅찬 이민자의 처지에서 보니, 지난 8년 동안 친구들은 눈부시게 변화 발전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내가 만났던 친한 친구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이번에 받은 문화 충격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외국에 나와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보는 눈이 그만큼 객관화했고, 한편으로는 한국의 삶 속에서 부글거리는 일상의 고통을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상의 고통과 아픔이야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든 다 있는 법이니, 외양이든 내용이든 말 그대로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러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해됩니다. 여기서도 먹고 살기 힘들고, 한국서도 먹고 살기 어렵다면, 당연히 한국에서 먹고 살기 힘든 편이 낫습니다. 말이 통하고, 정서가 통하고, 주눅 들지 않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