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예술 문학

내 평생의 족쇄 영어, 그리고 영어 배우기에 대한 단상

(김상현-에드먼튼) 빨간來福(티스토리)이라는 분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영어 배우기에 대한 일련의 글을 읽게 됐습니다. 공감되는 대목이 참 많았습니다. 영어가 우리 한국인에게는 영원히 끝마칠 수 없는 숙제로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도 만났습니다. '영어' 하면 그와 연관지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들이 '공부' '연습' '배우기' '연수' '못하면 사회에서 성공 못한다' 같은 것들입니다. 한국 신문들에서 새 내각명단을 발표할 때 몇몇 장관에게 칭찬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라고 토를 달아놓은 것도 생각납니다. 한국만의 슬픈 현실일까요? 

영어, 영어, 영어,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그 언어를 익히는 데 한 재산 쏟아붓고 한 탓인지, 한국의 정치, 사회 계에서 그 전문 분야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영어를 잘한다는 한 가지 때문에 요직을 꿰차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고, 바로 그 때문에 해외 - 특히 미국 - 에 나가 한국의 국익에 기여하는 쪽으로 협상하기보다는 도리어 미국의 이익에 영합한 협상에 사인하고 돌아오는 해괴한 짓거리도 목도하게 됩니다. 실로 비극이지요. 

영어에 대한 잡설을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고, 누구나 최소한 10년 이상은 영어 공부책을 끌어안고 살아서 '영어' 하면 다 몇마디 논평쯤은 내놓을 만한 곳이 또 한국이고 한국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냥 수박 겉핧기로,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몇가지 영어 공부법에 대한 제 주관적 의견을 풀어놓겠습니다. 

영어 학원 다니기: 한국 사람이 강사인 데는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게 토플이나 토익 준비가 아닌, '영어 말하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강사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프로필을 꼼꼼히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수준입니다. 영어 발음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Garbage in, garbage out입니다. 자격증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전반에 대해 관심과 지식이 제법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하는 영어의 수준이 단순한 음식 주문이나 날씨 이야기, 취미 이야기, 주말에 뭘 할거냐는 이야기 정도에서 그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 강사가 많이 배우고 읽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학원에 얼마나 다녀야 하느냐는 것인데, 한국의 학원들에서 정한 말하기 수준에서 Advanced 정도까지 나갔다면 학원과는 이별하시는 게 좋습니다. 돈도 절약되고요. :) 그 다음부터는 본인이 찾아서 독학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영어 독학의 몇 가지 방법 
(1)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영어와 관련된 말과 글은 다 살펴보려고 애쓰십시오. 한국을 예로 든다면 영어로 된 간판, 영어로 된 광고 전단,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써놓은 유명 관광지(고궁 같은 데)의 안내문 등을 꼼꼼히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것들이 제대로 된 문장인지, 좀 이상한 데는 없는지 따져보십시오. 잘 모르겠으면 사진을 찍거나 메모해가서, 살펴보세요. 그게 영어 공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스스로도 놀라시게 될 겁니다. 요는 늘 '영어'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친구랑 이야기하시다가도 흥미로운 한국말이 나오면, 이건 영어로 어떻게 쓸까? 슬쩍 고민해 보십시오. 


(2) 외국인 친구를 사귀세요. 요즘 스카이프로 영어 공부를 해주는 게 유행이라던데, 그런 방법도 좋습니다. 자, 문제는 그 친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입니다. 바로 그 대목에 영어 말하기의 수준이 얼마나 발전하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이게 가장 어렵기도 합니다. 우리가 친구들끼리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를 떠올려본다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도무지 깊이 있는 얘기는 하지 않잖아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친구를 사귀었다면 그(녀)에게 정식으로, 정색을 하고, 만날 때마다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심도있게 대화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하세요 (만약 실제로 만나는 상대라면 그에 따른 사례도 해주겠노라고 확실하게 알리고 승락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주제는 본인이 정해도 좋고, 저쪽에 부탁해도 좋습니다. 다만 한국 특유의 문화나 행사, 스포츠는 피하십시오(물론 북미쪽 스포츠는 괜찮습니다). 

만나면 오직 그 주제만을 가지고 다양하게 변주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미리 그쪽 관련 기사나 뉴스나 미국의 대담 프로 (유튜브에 차고 넘쳤죠)를 보고 복습을 해둬야겠죠. 앞에 '사례' 말씀을 드렸는데, 잘 아시다시피 북미쪽 사람들은 일정 노동에 대한 대가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게 얼마가 됐든, 혹은 식사를 대접하거나 다른 무엇이 됐든 영어를 배우는 데 따른 대가를 꼭 지불하십시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3) 인터넷을 활용하십시오: 하! 세살바기도 아는 얘기를! 맞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매일, 혹은 일주일에 적어도 닷새는 (주말에는 쉬어야죠?), 꼭 영어 기사 한 꼭지, 영어로 된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 '미드' 열풍이라니까 어렵지 않겠죠? - 하나는 보시고 지나가십시오 (아, 미드나 영화를 주말에 보셔야겠군요. 자막은 빼고!). 

제목만 보고 휙 지나가시면 안됩니다. 대략 700~1500자쯤 되는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으셔야 합니다. 그러니 기사를 고르실 때는 본인이 관심 있어 하는 쪽이어야겠죠? 정치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는데 미국 상하원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붙들고 있어봤자 머리에서 김만 납니다. 

영국 프로축구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그러면 영국쪽 뉴스 사이트에 그 이야기가 널렸습니다. 다만 어제 어떤 경기가 벌어졌는데 누가 이겼다더라, 라는 기사 말고, 논평이나 분석기사를 읽으십시오. 그리고 (스포츠를 예로 든다면) 흔히 쓰는 우리말 표현 이겼다, 박살냈다, 경기가 느슨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둔했다, 아주 흥미진진했다, 박빙이었다, 라는 등등이, 영어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 '신경 곤두세우고' 살펴보십시오. win, loose, slow, interesting, close 같은 단어만 나오지 않을 거라는 데 제 아이폰 걸겠습니다. :) 

(4) 소리내어 읽으십시오: 책의 한 대목이든 기사 한꼭지든 상관 없습니다.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는 습관을 붙이십시오. 매일 30분 정도는 그렇게 소리내어 읽으세요. 발음이 정확한지 알아야 하니까 녹음기로 녹음해서 가끔 확인하시고요. 또박또박, 단어 하나 하나를 제 음가대로 읽되, 연철에 유의하시고, 무엇보다 인토네이션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한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거기에 맞게 억양과 톤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십시오. 본인을 아나운서나, 오디오북의 내레이터라고 상상하셔도 좋습니다. 

현지인들처럼 능란하게 혀를 굴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우리말과 영어가 요구하는 구강 구조가 달라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발음이 중요하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L과 R, B와 V, F와 P, 그리고 두 가지로 다르게 나는 TH 발음은 연습, 또 연습해서 마스터해두셔야 합니다. 영어인데 한국어로 옮기면 엉터리가 되는 외국어들에도 주의하십시오. 예를 들자면 '백업'(backup, 실제 발음은 '배컵'에 가깝죠), '께임'(game, 절대 경음이 아닙니다. '게임'입니다), 판타지(fantasy, 휀-), 비아그라(Viagra, 바이아그라), 로펌(Law firm, 무슨 물을 푸는 '펌'이 아니라 '훰'에 가깝죠) 등등 한이 없습니다. 

액센트에도 주의하셔야 합니다. 한국은 단어 하나 하나에 다 제 음가가 나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인터넷'이라고 발음하면 안되죠. 이너넷에 더 가깝습니다. t앞에 자음이 놓이면 이 t의 음가가 엄청 디스카운트 된다는 거 배우셨죠? :) 사실 t는 맨 앞에 놓이는 경우를 빼면 대개는 제 음가를 못내는 불쌍한 자음입니다. 

오늘 네이버 영화 사이트에 보니까 무슨 '프레지던트' 하는 영화가 있던데 이를 영어식으로 발음할 때 한글 그대로 읽으면 틀리죠 - '레'에 강세가 가고, '트'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이라는 영화에 대해 외국인과 대화한다고 가정합시다. 그 영화를 소개할 때 '닥터 파르나서스'라고 할 수는 없겠죠. '파아나서스'쯤으로 발음해야겠죠. 요는 한국어로 적힌 외국어 가운데 실제 발음과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의해두십시오. 

(5) 영어 책을 읽으십시오: 영어 교재 말고요. 저는 그것이 말하기든, 읽기든, 또는 쓰기든, 영어 공부에서 가장 필수적인 성공 요소는 이 '독서'에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사실은 한국어도 마찬가지지요). 소설도 좋고, 칼럼집이나 논픽션도 좋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어떤 영어 책이든 사서 '다', '끝까지', 읽으십시오. 앞 몇 페이지 읽다 말면 백약이 무효입니다. 그러니 본인이 재미있어 할 법한 책을 골라야겠지요. 요즘 인기를 끄는 트와일라잇 4부작, 할리퀸 로맨스, 해리 포터 시리즈 등도 다 좋습니다. 영어로 읽으세요.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정 안되면 절반까지라도 읽으십시오. 사실 절반쯤에 이르러서 아, 다 못 끝내겠다라고 여겨진다면 그 책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재미없거나... 

읽으실 때 또 한 가지 지켜야 할 규칙(까지는 아니지만)은, 사전은 가능하면 열어보지 마시라는 점입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냥 죽 읽어가셔야 합니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10개, 혹은 20개쯤 나온다면 책을 잘못 고르신 겁니다 하하. 이렇게 죽 읽어가시면 두 가지 도움을 얻으실 수 있는데, 하나는 그렇게 읽어가는 가운데 문맥속에서 몰랐던 단어의 뜻을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의 흐름이 끊기지를 않으니까 독서의 재미를 더 만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한 권이라도 그렇게 딱, 끝내고 나시면 이제 절반은 된 겁니다 (시작이 반!). 그 다음부터는 영어 책에 자신이 생기거든요. 또 한 가지 중요한 명심 사항은 줄거리를 좇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단어와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고 성립되는지를 '신경써서' 읽으셔야 합니다. 

영어 연수에 대한 단상: 개인적으로는 십중팔구 돈 낭비라고 봅니다. 차라리 특정한 분야를 정하고 칼리지로 단기 유학을 오는 편이 영어 말하기를 늘리는 데 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어 연수라는 것들의 깊이와 다양성에 한계가 많거든요. 앞에 소개한 빨간來福님의 말씀처럼 연수를 오실 요량이라면 차라리 어디 시골로 가셔서, 영어밖에 쓸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몰아넣으시는 게 좋을텐데, 생각해 보면 참 슬픈 일 아닙니까? 도대체 영어가 뭐길래? 전 김치 없으면 못 살거든요 ㅠ.ㅠ 

이상 잡설이었습니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 영어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라고 휩쓸리는 사회가 슬픕니다. 물론 저도 그 희생양이었습니다. 무작정 영어를 (잘) 해야 한다, 라고 믿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도 꼭 영어를 배워야 하나? 라고 자문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령 내 일이 중국과의 무역이어서 중국어는 필수지만 영어는 사실상 쓸모가 없는 경우라면, 한 재산 처박으며 영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지요. 이미 한 10년, 제도 교육과 사교육을 통해 영어를 필수로 배웠으니까 기초적인 영어 판독은 가능할테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지요. 

사족. 그리고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다른 장관이 영어를 잘한다며 자랑하고, 하여 미국이나 영국에 가서 그곳 각료와 통역 없이 중요한 논의나 협상을 벌인다면 그게 더 무섭고 위험한 일이며,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한 나라의 국익 (혹은 기업인 경우 그 기업의 이익)이 걸린 논의나 협상이라면, 반드시 확실한 통역자를 붙여야 합니다. 그냥 일반적인 대화, 사적인 농담 정도만 직접 영어로 하시고, 국가(또는 기업)의 중대사는 전문가의 도움(또는 적어도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싫어하시는 일본의 천재 야구선수 '입치료' 아시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선수를 아주 좋아합니다. '존경한다'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프로선수인지는, 직접 경기를 보시면 알 수 있답니다. 이 친구, 경기 시작 때부터 끝날 때까지 쉬지를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대기 타석에 서 있을 때도 스트레칭, 수비할 때도 스트레칭입니다. 계속, 거의 강박적이라 여겨질 만큼 쉬지 않고 몸을 풉니다. 수비에 들어가 있을 때 그 주변의 다른 외야수를 보면 다 그냥 서 있습니다.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갈 때부터나 수비 자세를 취하지요. 이치로는 다릅니다. 계속 몸을 풀고 있습니다. 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왜 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그토록 돋보일 수 있는지 수긍이 갑니다. 일본의 이른바 '사무라이 문화'를 가장 완벽하게 체현한 경우중 하나가 이치로라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왜 이치로를 들먹였느냐 하면, 이 친구의 영어 실력이 아주 좋습니다. 올스타전에서 다른 선수랑 농담 하는 장면도 나오고, 그의 영어 구사 능력이 출중하다는 앵커와 해설가의 칭찬도 나옵니다. 그런 이치로가, 야구 경기 끝나고 하는 기자들과의 공식 인터뷰에서는 꼭 통역을 씁니다. 그 결과는? 기사를 읽어보면 압니다. Well, I was lucky 또는 I did my best, you know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말의 내용과 깊이, 맛이 현지인들의 수준에 맞게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결론 아닌 결론: 영어를 잘 하려면 독해야 한다, 라고들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잠깐만, 독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에 있던가요? 저는 여기에 '즐겨야 한다'라는 말을 더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에도 책을 고르든, TV 드라마를 고르든,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하라고 말씀드린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꾸준하셔야 합니다. One step at a time, one page at a time, one drama at a time...천릿길도 한 걸음부터...그야말로 고리타분한 Cliche. 그래도 그게 맞는 말입니다. 

다시 하나 더 -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한국 사람들은 '완벽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을 유전인자로 가진 것 같습니다. 이 말 하다 망신 당하면 어쩌지? 이 말이 틀린 영어면 어쩌지?라는 식의 고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중국인들은 그런게 없더군요. 그야말로 상 엉터리 영어인데도 그냥 내뱉습니다. 놀라운 건 그래도 현지인들이 알아먹으며, 그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그 중국인의 영어 실력이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늘더라는 점입니다. 입장을 한 번쯤 바꿔놓고 생각해 보시죠.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미국인은 한국말을 얼마나 할 줄 알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