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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캐나다 사람, 제주올레에 가다

  
  가보지도 않고 제주올레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썼던 터여서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 길과 풍광을 아무리 자랑하고 칭찬한다 한들 "가봤어요?"라는 질문 하나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주짜리 빠듯한 출장길에 시간을 조이고 조였더니, 제주에 갈 여유가 조금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1박2일인 데다, 약속한 원고 하나를 마감하지 못해 일감을 제주도까지 끌고 가야 했습니다. 오전 5시에 서울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에서, 비행기에서, 리무진에서 넷북을 정신없이 두드렸더니 원고지 25매 정도의 기사가 만들어졌습니다.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마무리해 송고한 다음, 늦은 점심을 먹고 그 유명하다는 제주올레길에 올랐습니다.

  제주올레의 이수진 비주얼커뮤티케이션실장은 가장 대중적이라는 7코스를 권했습니다. "우리의 Favorite은 아니지만 평탄하고 아름다운 길이어서 처음 걷기에는 좋을 거에요"라고 했습니다. '날, 뭘로 보는 겨? ㅠ.ㅠ c' 하면서 '에이, 졸립기도 하니, 걷다 말지, 뭐' 하는 생각으로 길에 들어섰습니다.



 길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이었습니다. 평일인데도 전국 각지에서 제주올레길을 찾아왔습니다.


  아, 올래길에서 만난, 사람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 나도 이렇게 잠을 즐겼습니다.  20여 분 달게 자고 있는데, 시끄러워서 더 잘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이 사진을 찍고 "홈리스네, 뭐네" 하면서 난리 브루스를 추는 바람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얘들아, 떠들지 좀 마라, 아저씨 잠 쫌 자자" 하면서 그 아이들과 몇 마디 나누던 중  "캐나다에서 왔다"고 했더니 "영어 한 번 해봐요" 합니다. 그래서 해주었습니다. "오케이."

  

  

  초입에서 잠이나 자다가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깬 김에 슬슬 좀 걸어볼까' 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의 뒷 모습에 이어, 바다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캐나다에 사는 동안 볼 수 없었던 제주의 푸른 바다였습니다. 해송 사이로 보이는 제주 바다의 푸른 물결은, 예쁜 처자를 볼 때보대 더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에서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제주올레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찍었습니다. 하여 나는 아름다운 것보다는, 그냥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을, 아주 게으르게 찍었습니다. 열심히 찍기는 싫었습니다. 게으르게 찍었으나 보이는 것이 많았습니다. 길옆에 있는 묘지와 거미줄, 억새풀, 산에서 해안으로 나오는 작은 샘, 계단식 논, 해안의 돌밭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덜 아름답겠으나 나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정겨웠습니다.


  바다로 가는 아름다운 계단이 있어 내려갔더니, 글쎄, 그 아래에 이런 쓰레기가 있었습니다. 술을 먹으면 곱게'처'먹고 갈 일이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쓰레기를 꼭 이곳에 이렇게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가 싶게 불쾌했습니다. 그 많은 공무원들은, 나랏돈 엄한 데 쓰느라 골몰하는 대신, 이런 곳에 와서 어깨띠 두르고 쓰레기를 줍는다면 '전시 행정' '실제 행정' 모두를 훌륭하게 할 수 있을텐데… 이걸 누가 치우라고… 쓰레기 봉지도 없는 내가 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한번 보고 나니, 다음부터는 계단 따라 내려가기가 싫어졌습니다.

  "쓰레기통 없는 게 자랑이냐?" 이 표지판을 보고 벌컥 화가 났습니다. 아름다운 길에서 쓰레기 보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인데, 이 표지판은 쓰레기보다 더 기분 나쁘게 했습니다.



  표지판과 더불어 풍경을 헤치는 흉물 중의 흉물은 바로 이 시멘트 의자였습니다. 과거 관광지에 가면 늘상 있던 나무 빛깔을 한 시멘트 벤치가 제주올레 길에서도 여럿 보였습니다. 제주올레의 개념과 풍경은 시대와 함께 가는데, 그것을 뒷받침해야 하는 행정력이라는 게 이 정도 수준입니다.  시멘트 벤치는, 무지하고 무식하고 무사안일하고, 나아가 참 고집스러워 보입니다.


  제주올레에 사유지를 내준 이들이 겪는 고통을 짐작케 하는 문구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몰지각한 이들이 더러 있었던 듯, 비명을 지르는 이런 사인을 여럿 보았습니다.  


  하하, 이런 게 있을 줄이야!! 

 걷기 힘들던 차에, 바닷가에서 민물을 만났습니다. 산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맑은 물이었습니다. 세수를 하고 조금 먹었습니다. 민물이지만 짰습니다. 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 담궜습니다. 뒤 따라 오는 이가 없다면 발가벗고 멱을 감고 싶을 정도로 맑고 따뜻한 물이었습니다. 신발이 허술한 탓에 발바닥에 불이 났습니다. 이 물 덕분에 금방 치유되었습니다. 발을 물에 담그고 지나가는 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도 재미났습니다. '딸딸이'를 신고 바닷가 바위길을 헤처가는 고교생의 멋진 모습도 보았습니다.

  


  길을 걷다가 현지에 사시는 두 분을 만났습니다. 위의 분은 귤과 물을 팔고 있었습니다. 올레길이 나기 전에 이곳에서  해물전 김치전을 붙여 팔았다고 했습니다. 철거하라고 해서 그걸 치우고 대신 물과 귤을 내놓았습니다. 햇 밀감 한 봉다리에 3천원, 얼리지 않은 물을 샀더니 천원에서 200원을 기어코 내주었습니다. 
  "사람들 많이 오니 좋지요?"라는 물음에 "죽었던 민박이 살아났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라면서  "서명숙 이사장님한테 우리가 미안한 게 많다"고 했습니다. 서 이사장 4남매가 올레길을 낸다며 애쓰고 다닐 때 도와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하트를 보면 좋은 일 생긴다며, 지나가던 나를 불러세운 서귀포 남자(모자 쓴 아저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다의 저 하트는 하루에 두 번 생긴다고 했습니다. "서 이사장 덕분에 좋은 일 많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서귀포 남자는 집 잃은 개를 거두워 키우고 있습니다. 이름이 '올레'라고 합니다.


  어느 마을에 들어섰더니, 벽 한 가득 낙서였습니다. 정겨워 보입니다. 어느 마을은 해군 기지 문제로, 말 그대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저 아름다운 제주 바다에, 왜 느닷없이 군사 기지를 세우겠다는 것인지,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듣지 않고도 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또 공무원들을 욕할 일이 생깁니다. 입이 아파 구체적으로 말도 하기 싫습니다. 대신 7코스에서 만난 풍림리조트는 저렇게 깨끗한 화장실을 개방했습니다. 나오면서 사람을 찾아 고맙다고 일부러 인사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걷다 보니 해가 지고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노을이 질 무렵, 제주 바다는 환상이었습니다. 내 생애 저런 풍경을 언제 보았냐 싶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걷는 데 힘든 줄 몰랐습니다.

  해가 지자 길이 사라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보이는 것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고, 뒤에서 두 사람이 바짝 따라붙었습니다. 길을 잘못 잡으면 망신이겠다 싶었는데, 다행히도 끝까지잘 왔습니다. 여자 분도 잘 따라왔습니다. "걸음이 빠르시군요"라며 목소리 깔고 '점잖게' 말을 걸었더니 "무서워서요"라고 했습니다. 

  7코스를 완주하려고 들어갔던 게 아닌데, 잠자다가, 풍경에 반하고, 쓰레기 욕하고, 어라 어라 하다보니 16km 정도를 다 걸었습니다. 마지막쯤에 붙은 사인에는 '코스를 연장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는데, 연장을?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습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선배님 우찌된 일입니꺼?' 하고 셀폰에 문자도 떴습니다. 나도 우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걷다 보니 한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자축할 겸 7코스의 끝 가게에서 맥주를 사서 마셨습니다. 1천6백원. 싸고 달았습니다.

   말없이 내처 동행했던 젊은 친구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전주에서 혼자 휴가 받아 왔고, 내일은 8코스를 걸을 예정이며, 제주에 머무는 동안 계속 걷겠다고 했습니다. 어찌 하다 보니 걷게 된 나와는 매우 다른 표정입니다. 무작정 걸으려고 오는 이들은 저런 표정을 가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예전, 대학시절, 한 겨울에 문경새재를 걸어서 넘던 생각이 났습니다.


  다음날 5코스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포구의 풍경 자체가 이발소 그림과 같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이발소 그림으로 착각할 지경이었습니다.


  노랗게 익어가는 밀감과 길게 펼쳐진 마을길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서 지나가던 할머니는 "서울서 왔수꽈?" 하고 물으셨습니다. "아뇨, 캐나다요" 했더니 "어디?"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미국이요" 했더니, "하이고" 하며 더 반가워 했습니다.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 사람들은 많이 불편할텐데도 할머니처럼 많이 반가워 했습니다. 올레길에서 만나는 어느 풍경보다 감동적인 것이 바로 이처럼 반가워 하는 마음, 곧 넉넉한 인심이었습니다.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마을회관이, 스피커가 기능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문구조차도 정겨워 보였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 때에 지은 건물인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기계적으로 외운 문구지만, 이번에는 길을 걸어며 그 뜻을 처음으로 새겨보았습니다. 그 뜻은 참 훌륭합니다.


  가는 길에 아스팔트를 까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마을 길을 보수하는 모양입니다. 올레길의 멀쩡한 흙길을 시멘트로 포장하는 일부 무원들의 생각없는 생색내기에 골머리 앓는 모습을 봤던 터여서, 위의 길 포장도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기왕의 포장도로를 보수하는 공사였습니다.
 


  1시간30분쯤 걸었더니, 제주 바닷가에 살고 있는 후배의 집이 나왔습니다. 자기네가 만든 커피 볶음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점심으로 국수를 내주었습니다. 국물을 퍼먹다가 퍼뜩 생각이 나서 찍었습니다. 이 국수를 먹고, 후배가 볶아 내려주는 맛나는 커피는 먹고 제주올레 걷기를 마감했습니다.

  제주올레. 맛을 조금 보고 나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자주올레는 자연 재발견입니다. 있던 자연, 안보이던 자연을 새삼 발견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가 병 걸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