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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고려대 교우회의 싸움이 반가운 이유




    한국 뉴스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내용을 봅니다. 구속된 천신일씨가 내놓은 고려대 교우회 회장 선출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려대 출신인 나로서는, 모교 동창회와 관련해 오랜만에 듣는 괜찮은 뉴스입니다. 동창회 내부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오는데 왜 그게 좋은 뉴스냐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들이 고대 마피아라는 소리를 할 때마다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절대 깨지지 않을 불멸의 3대 조직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 거의 수치심을 느낍니다. 마치 앞뒤 가리지 않은 채 그저 조직에만 충성하는 깡패 패거리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을 동기 친구로 두고 있는 회장이, 사상 처음으로 연임했고, 또 사상 처음으로 구속되었다는 것은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신 학교를 사랑하고 긍지를 갖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교 사랑이 지나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과시이자 집착이 됩니다. 고대 교우회 또한 사람이 모인 집단인데 그 안에서 인간사의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이것 저것 꼴보기 싫어서 그 안에 일부러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상당수에 이릅니다. 느낌으로는 절반은 되는 것 같습니다.  '고대 출신들은 결속을 잘 한다'는 한국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평가는, 그 문화가 싫어서 일부러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마저도 도매금으로 넘겨버립니다. 

2009년 고대 교내에서 벌이는 재학생들의 시위 장면입니다. 설명을 달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동문 혹은 동창, 고대식 표현으로 하자면 교우가 대통령 같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영광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동문과 나라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바로 그 순간부터감시자와 비판자로 돌아서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냉정해야 합니다. 고향에서 환영해주면 절대 안됩니다. 그것이 진짜로 동창과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떡고물이나 바라고 밀어준 촌스럽고 덜 떨어진 집단밖에 되지 않습니다. 천신일씨가 구속된 것을 보면 2년 전 학생들의 주장이 옳았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

  동창회는 말 그대로 친목 단체일 때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그것이 집단화하여 정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특정인이 그 조직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도려내야 할 사회악입니다.  이를테면 어느 일반 조직에서 대학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사 특혜 같은 것을 주었다면 그것은 사회악을 넘어 범죄에 가깝습니다. 

  고대 출신들은 잘 뭉친다 했을 때, 그것은 두 가지 이유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학교 분위기가 그렇다는 좋은 의미일테고, 두번째는 2등 컴플렉스에서 연유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뭉쳐야 산다는...

  그런데 뭉쳐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자기네끼리 뭉치면 사회적으로 오히려 외면을 받을 수도 있고, 뭉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괜한 피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능력이 되어 어느 자리에 올랐는데도 '특정 대학 출신이어서 특혜를 입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잘 뭉친다는 이미지 때문에 역차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왜 싸우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여하튼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고대 교우회 내부에서 싸움이 난다는 것은 고대와 고대 교우회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는 출신 대학, 곧 고대 동창회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것은 오만이자 '오바'였습니다. 가뜩이나 동문회에서 대통령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소리를 듣는 마당에, 남들이 마피아라고 손가락질하는 바로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습니다. 남들이 뭐라 떠들든 나는 간다는 오만. 김연아 스카웃 하나를 가지고 고대가 낳았네 어쨌네 운운하는 것도 그 오만과 오바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고 봅니다(학교에 오지도 않는 아이를 휴학생이 아니라 왜 재학생으로 두는지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고대 교우회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다면, 이왕 하는 김에 아주 박터지게 싸우기 바랍니다. 이전투구를 하면 좋고 그것이 장기화해도 좋겠습니다. 싸워도 아주 더럽게 싸워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지경까지 나아가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대통령의 동기 동창이 그 연으로 이득을 취하고 구속되는 꼴보다는, 회장 자리 놓고 더럽게 싸우는 꼴이 훨씬 나아 보입니다. 그 싸움이 더러울수록 좋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른 대학 동창회보다 결속력이 나을 게 없다는 점을 이번 기회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서, 고대 교우회, 나아가 고대 출신들에게 씌워진 마피아 이미지를 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회장 자리를 둘러싸고 신문에까지 보도되는 갈등 양상은 의미가 있고 기대 또한 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대통령 한 명 배출했다고 희희낙락하는 꼴도 보이지 않고, 정치꾼들이 몰려들어 선을 대려는 꼴도 보이지 않고, 그저 소박하게 친목을 도모하고  모교 발전에 기여하는 동창회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노력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부디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더 가열차게, 대차게,  더럽게 싸우기를 빕니다. 기자들은, 특히 고대 출신 기자들은 그 싸움의 양상을 아주 낱낱이 공개하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게 하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요즘 세상에 결속력 좋아서 얻을 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졸업생들이 각개전투를 벌여서 세우는 공이 출신 학교를 빛내는 데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