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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타블로 사건으로 본 한국 기자들의 비겁함

  


  타블로 사건이 이제 바닥을 친 듯 보입니다. 경찰이 나서서 사실 확인을 해주었으니, 이것도 못 믿는 사람은 누구 주장대로 FBI에 수사를 요청하거나, 만의 하나 FBI에서 사실 확인을 해주었는데도 못 믿는다면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겠습니다.

  <MBC스페셜>이 나서서 사건의 종지부를 찍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듯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의욕과 성의와 성실하고 진지한 취재 보도에는 큰 박수를 보내지만, 나로서는 불만이 없지 않습니다. 가장 큰 불만은 "왜 진작에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변방 중의 변방인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내가 봐도 명백한 왕따 사건인 타블로 건을 두고, 사건이 꽤 커졌는데도 한국 언론은 어디에서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나서기는커녕 타블로 학력에 대한 이른바 네티즌들의 의견이 올라오기만 하면, 그 비틀린 의견을 중계하기에 바빴습니다. 옐로우들의 그 중계가 타블로 사건을 확대 재생산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타블로의 저 얼굴은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의 것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에 저런 모습으로 나오는 것은 연예인으로서 죽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기자들은 저 얼굴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기어코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직무유기입니다.

  
  타블로 사건은 그냥 하늘에서 툭 떨어지듯 생겨난 게 아닙니다. 뿌리가, 깊고 거대한 뿌리가 있는 사건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진실은 왜 죽었으며 재범군은 왜 미국으로 쫓겨났을까? 바로 인터넷 상에서 형성되는 잘못된 여론 때문입니다. 이른바 악플러들이 뾰족한 의견을 내세우면 신봉자들이 우루루 몰려듭니다.

  이 '우루루'를 사실 확인 없이 확대 재생산한 곳이 바로 신문입니다. 옐로우들입니다. 옐로우야 원래 그렇게 해야 팔린다 치고. 한 유명인이 사이버 공간에서 억울하게 죽도록 얻어터지고 있는데, 그 가족의 이름까지 공개되어 수만명이 보는 자리에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데 이른바 정론지에 종사한다는 기자들은 누구 하나 그들의 인권이나 명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인권 문제'를 전방위에 배치하는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기자들조차 연예인의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기껏 쓴 기사가 어중간한 중간 자세를 취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일부 용감한 블로거들보다 못했습니다.

  사실을 다루는 기자들이, 사실 확인만 하면 금방 드러날 일을 두고 왜 이렇게들 방치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기자들에게 너무나 '섹시'하고 흥미진진한 아이템인데,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네티즌의 권력'을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안기부보다 더 무서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타블로 사건은 사회 문화적 시각으로 보아도, 한국 사회의 성향을 잘게 분석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제공합니다. 내가 타블로에게 관심을 가졌던 까닭은, 재외동포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공부한 한국인 1.5세가 한국에 들어가 일을 할 때 어떤 대접을 받을까 하는 데 관심이 컸습니다. 타블로 사건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두고 두고 풀어야 할 문제의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저런 점에서 볼 때, <MBC스페셜>의 성기연 PD는 큰 일을 해냈습니다. 익명의, 얼굴없는(실제로 타진요 회원들은 이름과 얼굴을 지우고 나왔습니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그들은 당당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벌떼 공격을 감수하면서, 비겁한 기자들이 '무서워서' 나서지 못했던 일을 제대로 해냈습니다.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탠포드 관계자가 "지금까지 10번 이상을 확인해줬다. 도대체 몇번을 더 확인해줘야 믿겠느냐"는 짜증섞인 발언을 하는 장면을 잡아낸 것이었습니다. 한국 인터넷 문화의 부끄러운 얼굴을 저 장면보다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번 방송에서 한 가지 크게 아쉬웠던 점은, 인터넷의 닉네임 문화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언급이 없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왓비라는 이가, 자기 이름과 얼굴을 내걸고는 저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이름 까고 민증 까고 이야기 하라고 하면 타진요 회원 중의 10%도 지금과 같은 주장을 펼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른바 타진요의 대표 선수라며 방송 인터뷰에 임하면서도 얼굴 가리고 음성까지 변조하는 비겁함을 보이는 그들입니다. 이름을 까라고 하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한 개인을 죽도록 두들겨 패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내 친구는 이름을 밝히는 것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데 제약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의견도 의견 나름입니다. 그 친구도 강의 평가를 하는 익명의 사이트에 올라온 악플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교수님, 공부 더 하셔야 되겠는데요" 하는...

   과거, 안기부와도 맞짱 뜨던 기자들의 기개는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른바 네티즌이라는 그룹의 권력이 안기부보다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네티즌의 의견'은, 내가 보기에, 의견이 될 수 없습니다. 의견이란 나를 드러내면서, 내가 한 발언에 책임을 져야 성립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