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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아이패드를 계기로 본 '웹 2.0' 시대의 책 읽기

(세인트 앨버트 = 김상현신문과 방송, 무엇보다 웹에서 큰 호기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애플의 아이패드(iPad)가 지난 1월2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모세에, 아이패드를 십계명에 견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표지.

애플은 거의 언제나 언론과 일반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데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 왔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반의 높은 관심이 언론의 집중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애플의 종교적 추종자들이 워낙 많아 언론이 애플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비슷하다). 아이패드가 어떤 모양일 것인가로부터 어떤 기능들을 갖출지, 사양은 어떤지, 심지어 그 전략은 무엇일지 등 온갖 추측과 억측과 기대와 풍문이 난무했다 (미국의 권위지 '애틀랜틱 먼슬리'의 웹사이트중 하나인 애틀랜틱 와이어는 그러한 동향을 비교적 차분하게 좇아온 경우이다. 거기에 실린 기사만 훑어도 아이패드를 둘러싼 열기와 관심의 흐름을 짚을 수 있다).

상상보다 그 실체가 더 나은 경우는 많지 않다. 아이패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소개하며 쏟아낸 온갖 현란한 형용사들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잔뜩 맞은 아이팟이나 아이폰 같았다. 

잡스가 얼마나 지나치게 과장된 형용사들을 쓰는지만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 amazing, unbelievable, awesome, great, really great, incredible, truly innovative, fantastic, etc., etc. (이 블로그의 맨 아래에 올려놓은 유튜브 비디오는 잡스의 그러한 버릇(병통?)을 풍자적으로 모아놓은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아이패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한쪽은 '기대했던 대로'라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언제 나오느냐고 조바심을 치는가 하면, 다른 쪽은 '실망'이라며 그렇게 진단한 근거를 조목조목 짚는다. 내장 카메라가 없고, 어도비 플래시를 쓸 수 없으며, USB 포트와 메모리 리더기가 빠졌고, 저장 용량이 최대 64GB밖에 안된다,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등이다.

킨들이나 소니 리더를 서점이나 도서관에 견준다면, 아이패드는 작은 서점 코너가 딸린 거대한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더 가깝다


엇갈리는 또다른 대목은 아이패드가 시장에 미칠 전망이다. 잡스의 기대섞인 주장대로 시장의 지형에 일대 변혁을 몰고 오는 '획기적 제품'으로 자리잡을 것인가, 아니면 다만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고 말 것인가. 한쪽은 우리의 컴퓨터 생활과 독서 풍토에 큰 변화가 초래될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하면, 다른 쪽은 아이패드가 다만 애플의 맥북/맥북 프로와 아이폰/아이팟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애플판 넷북 태블릿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한쪽은 그 동안 몰락 일로였던 신문과 잡지, 방송 들에 구원의 수단이 될 것이며, 아마존의 독점적 횡포에 휘둘려 두꺼운 신간 하드커버조차 그 e북 버전은 9.9달러에 팔아야 했던 출판사들이 다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하는 지렛대 구실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반면, '책 읽기' 기능에만 집중한 아마존 킨들이나 소니 리더와 달리 아이패드는 웹, 비디오, 사진 앨범, 아이튠즈, 게임기 등 멀티미디어를 한데 모은 이른바 '통합 디바이스'(Convergence device)이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출판 시장에 미칠 영향은 세간의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다른 쪽은 반박한다. 

아마존 킨들은 '독서'라는 한 가지 용도에 초점을 맞춘 기기이다. 아이패드에서 독서는 수많은 기능중 하나일 뿐이다.

킨들이나 소니 리더를 서점이나 도서관에 견준다면, 아이패드는 작은 서점 코너가 딸린 거대한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서점에만 머물기에는 여기저기 눈길을 잡아끄는 가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게임 가게, 음반 가게, DVD 대여/판매점, 영화관, 비디오방, 노래방 등등. 

어느쪽 주장이 더 맞을지, 아니면 양쪽 다 어느 정도 맞거나 어긋날지는 오직 시간만이 판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1, 2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아이패드는 책 읽기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까?

아이패드는 캐나다에 이르면 3월중, 늦어도 6월 전에는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살까? 아내에게는 "내 4월 생일 선물은 정해졌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직 모르겠다. 그 용도를 '독서'에 집중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아이패드가 과연 나의 독서를 도와줄지, 아니면 도리어 독서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아이팟 터치를 써본 경험에 따른다면 후자일 위험성이 더 높다. 시쳇말로, 책이 없어서 못읽었냐, 사방에 널린 유혹 때문에 책을 버렸지, 이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는지 정리해 보았다. 한 마디로 책의 홍수이고, 독서 채널의 홍수이다:

아이패드의 책읽기 기능인 아이북스. 애플에서 아이(i)가 빠지면 말이 안된다. 이 아이북스가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책읽기 기능을 제공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 종이책
  • 아마존 킨들
  • 소니 PRS-505 (지금은 '소니 리더'로 이름이 바뀌었다).
  • 아이팟 터치: 아이팟에 e북 리더로 설치된 앱은 
    • 스탄자(Stanza)
    • 코보(Kobo)
    • 킨들 훠 아이폰(Kindle for iPhone)이고
    • 자체 앱 형태로 내려받은 것도 여럿 있다. 대부분 *오라일리(O'Reilly)에서 나온 것들이다 (Beautiful Data; Beautiful Security; Search Patterns; Twitter Book; Best of TOC).
  • 블랙베리
    • 블랙베리용 모비포켓 리더를 설치해 몇번 독서를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무엇보다 화면이 너무 작아 비실용적이었다.
  • 개인용 노트북 (델 보스트로 1220): 
    • '킨들 훠 PC'
    • 소니 리더용 소프트웨어
    • 모비포켓(Mobipocket) 리더
    • 어도비 디지털 에디션(Adobe Digital Edition) - e북 표준으로 합의된 'EPub' 화일을 볼 수 있다. 소니 리더용 소프트웨어로도 EPub을 열 수 있다.
    • e리더(eReader) -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이 이 형식을 쓴다. 아이팟의 스탄자로도 볼 수 있다.
  • 직장의 데스크톱 (델): 개인용 노트북에 설치된 e북용 소프트웨어와 엇비슷하다. e리더만 깔지 않았다. 

문제는 이처럼 차고 넘치는 독서 채널이, 대개는 그들이 내세우는 '독서'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종이책과 디지털 책은 우리에게 같은 감동과 영감을 줄까, 아니면 질적으로 다른 영향을 끼칠까?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퍼온 이미지).

출퇴근때 버스에서 읽는 것은 종이책이나 e북 리더(킨들이나 소니)이다. 하루를 통틀어 출근 30분, 퇴근 1시간이야말로 가장 진지하게, 온전히 책에 집중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종이책을 볼 때와 e북 리더를 볼 때의 차이이다. 종이책은 한 번 펼쳐들면, 그게 지루하거나 너무 어렵지 않은 한 오롯이, 단선적으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게 된다. 반면 킨들이나 소니를 통해 책을 읽을 때는 몇 페이지 읽다가 좀 재미없다 싶으면 제깍 초기 화면으로 돌아가 거기에 저장된 수십 권의 책중 다른 것을 고른다. 그리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라이브러리로 돌아가고... 단선적이고 일관된 독서가 종이책의 경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저녁때는 주로 컴퓨터를 한다. PC에 다양한 e북 리더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지만 정작 그를 통해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타이틀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이다. 

앱의 홍수에 휘쓸려 사라지는 e북, 독서의 시간

잠자리에 들면 다시 종이책이나 e북리더를 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이팟 터치를 꺼내든다. 잠이 들자면 일단 불을 꺼야 하고, 그렇게 불을 끈 상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아이팟 터치뿐이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쓸 수도 있지만 너무 크고 - 12인치밖에 안되지만 - 누운 자세로 다루기는 영 불편하다.

문제는 아이팟 터치를 집어들면 책 읽기가 저 멀리 변방으로 밀려버린다는 사실이다. 중심으로 들어오는 것은 거기에 깔린 앱(App)들이다. 트위티, 에코폰 같은 트위터 앱을 비롯해 페이스북, 링크트인, 캐나다의 일간지인 글로브앤메일, 유에스에이투데이, 뉴욕타임스, 타임, ESPN 스코어, 구글, 모바일 RSS 등을 몇 분씩만 훑어도 한두 시간은 쉽게 흘러가 버린다. 코보나 킨들 훠 아이폰, 스탄자 같은 e북 리더를 열어보기도 전에 잠자야 할 시간이 되어 버린다. 가끔은 잠을 설치기도 할 정도. 게임은 본래부터 안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여기에 아이패드를 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아이팟 터치의 쓰임새가 현저히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노트북 이용 시간도 줄겠지. 종이책은 물론 킨들과 소니 리더를 열어보는 기회도 눈에 띄게 줄 것이다. 문제는 그와 함께 진중한 독서가 점점 더 '멸종 위기의 종' 신세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진지한 독서는 적어도 30분 이상, 가능하다면 2, 3시간 지속적으로, 오직 그 책에만 집중할 때 가능하다. 아이패드가, 거기에 담긴 온갖 앱들의 매혹이, 그렇게 도 닦듯 책 읽기에 집중하는 것을 허용할까? 그게 내일로 닥친 중요한 기말고사를 대비한 공부가 아닌 한, 순전히 내 자유의지로 책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할까? 

아이패드를 쓰는 한 신문, 잡지, 유튜브는 자주, 열심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패드로 종이책 들여다보듯, 아니 종이책까지 갈 것도 없이 킨들이나 소니 리더를 통해 책을 보듯, 꾸준히 집중해서 독서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읽는 책의 내용은 가벼운 할리퀸이나 뱀파이어물이나 액션물, 추리물 따위로 치우칠 것이며, 그것도 한 번에 읽는 분량은 기껏해야 한두 챕터에 그칠 것이고, 그런 식으로 동시에 읽는 책의 타이틀은 적어도 3~10종에 이르러, 그 책들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마치 주의력 결핍증 (attention deficit disorder) 환자처럼 굴 것이다. 

클릭, 트윗, 이메일 확인하고 보내기, 이 책 열어 슬쩍 훑어보고 다른 책 흘낏 들여다보고, 재미있어 보이는 신문이나 잡지 기사 대충 살펴보고, 다른 이들의 블로그 둘러보고, 페이스북에 몇 자 적고, 다시 책 몇 줄 훑어보고...가만, 아까 읽은 책이 뭐였지? 무슨 내용이었더라? 여기까지 읽었던가? 아니, 더 앞으로 가야 하나? 모든 것이 하이퍼링크의 거미줄로 뒤얽힌,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디지털의 방대한 숲속에서 스토리는 길을 잃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읽던 책의 스토리는 물론 맥락조차 희밎해지고, 논리의 연결 고리는 끊기고, '깊은 독서'에서 얻을 수 있었던 통찰력은 연목구어가 되며, 처음에 재미있으리라 기대했던 책은 간헐적이고 불규칙한 독서로 김빠진 맥주처럼 여겨져 제대로 끝내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활자의 바다', '활자의 산맥'은 물이 빠져버린 황량한 개펄처럼 부박하고 변덕스러운 디지털 픽셀의 사막으로 대치될 것이다.


정보시대의 대가는 비싸다

아이패드가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또 하나의 '정보 도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망중 하나이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은 그러한 '디지털 생활'을 즐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아이패드의 기기 값은 그 비용의 시작에 불과하다. 

다양한 아이패드용 액세서리, 온갖 기발하고 유용한 아이디어와 혜택으로 무장한 아이패드용 앱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지면서 우리 주머니를 노릴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3G를 택한다면 매달 내야 하는 통신료도 만만찮을 게 분명하다. 미국의 경우 무제한 데이터 이용료가 월 30달러'밖에' 안한다고 자랑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이 이미 쓰고 있는 아이폰이나 블랙베리, 또는 다른 스마트폰의 이용료 '위'에 추가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잠깐, 내가 통신료로 얼마나 내고 있는지 따져본다. 홈폰과 고속 인터넷을 한데 묶은 - 그래서 약간의 할인 혜택을 받는 - 쇼(Shaw) 케이블 이용료가 월 43달러. 아내의 아이폰 이용료가 월 64달러 안팎 (그것도 데이터 이용료를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콜 디스플레이 기능도 없애고 해서 가장 싼 수준으로 바꾼 것인데도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100달러가 넘는다. 다행이라면 TV를 없애 HD 티비니, VIP 채널 패키지니 뭐니 하는 복잡한 시청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겠다. 회사에서 지급된 블랙베리 덕택에 내쪽 이동통신료가 안든다는 점도 위안거리. 

정보통신료뿐인가. 가스비, 전깃세, 수돗세, 쓰레기 수거비, 재산세, 신용카드 대금, 해서 매달 내야 하는 비용이 이미 어깨를 짓누르는 마당이다. 그러니 그게 월 30달러'밖에' 안한다고 해도 결코 만만한 부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킨들이나 소니가 클릭 한 번만으로 e북을 살 수 있게 함으로써 내게 던지는 충동 구매의 유혹은 종종 속수무책이다. "Resistance is useless!"라는 한 소설의 표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여기에 아이패드가 추가된다면 그러한 뜻하지 않은 충동 구매, 혹은 accidental purchase의 경우가 훨씬 더 높아지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흠...
 
그래도 아이패드를 사야 할까? 

참고로, 오라일리에서 출간된 책을 가장 값싸게 구해볼 수 있는 방법은 아이폰/아이팟용 앱으로 받는 것이다. 예컨대 피터 모빌(Peter Morville)의 신간 'Search Patterns'는 e북으로 살 경우 32미국달러이다. 아직 아마존 킨들 버전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나온다고 해도 20달러 이상일 게 분명하다 (오라일리의 책들은 아마존닷컴에서조차도 그 할인폭이 적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같은 책을 앱으로 받으면 5달러밖에 안한다. 나온 지 몇년 된 책은 더 싸다.

* 디지털 시대의 독서, e북의 활성화에 따른 책의 운명, 디지털 픽셀로 모든 것이 대치된 사회의 문화를 진지하게 성찰한 이들로는 니컬러스 카(Nicholas Carr),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 등이 대표적이다. 맛보기로, 카의 '텍스트의 급속한 진화 - 문학의 황량한 미래'(The Rapid Evolution of “Text”: Our Less-Literate Future); 그리고 존슨의 'e북이 책 읽기와 쓰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How the E-Book Will Change the Way We Read and Write)를 읽어보기 바란다. 실로 통찰력 깊은 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