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2008년 6월
출판사: 브로드웨이 북스(Broadway Books)
포맷: e북(eBook), 224페이지
화일 크기: 241 KB
ISBN: 0385526776
(세인트 앨버트 = 김상현) "문제: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A) 달
왜 우리는 종종 부화뇌동하는가? 왜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엉뚱하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가?
(B) 태양
(C) 화성
(D) 금성
출연자인 앙리는 심각한 얼굴로 뚫어지게 질문과 답을 바라보았다. 긴장된 표정이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답변해주십시오." 사회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객석에 물어보겠습니다." 앙리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관객 여러분, 출연자를 위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은 무엇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가입니다. 답을 아시면 적으시고, 모르시면 기권해주십시오. (A) 달 (B) 태양 (C) 화성 (D) 금성 중에서 고르시면 됩니다."
관객의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는 객석에 앉은 앙리의 여자친구를 비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도대체 저렇게 쉬운 질문을 왜 직접 대답하지 않고 객석에게 물어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관객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
2%는 화성이었다 (왜냐고 묻지 마시라). 더 놀라운 것은 과반수인 56%가 태양을 꼽았다는 점이었다. 그에 비해 정답인 달에 투표한 사람은 42%밖에 되지 않았다. 앙리는 객석의 의견을 따랐고, 당연히 중도 탈락했다. 프랑스판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하는가?'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여기에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이것이다. 프랑스의 관객은 정말로 답을 몰랐을까? 정말로 천동설을 믿었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그리고 그게 실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주최즉이 미리 조율한 것도 아니고, 관객들끼리 사전 모의를 한 것도 아닌데, 절반 이상이, 그것도 즉석에서, 약속이라도 한듯이 틀린 답을 제시해 출연자의 탈락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저렇게 우습고 초보적인 질문의 답조차 모르는 출연자는 떨어져 마땅하다'라는 묵시적 동의가 군중 사이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오리 브래프먼(Ori Brafman), 롬 브래프먼(Rom Brafman) 형제가 쓴 책 '스웨이: 우리를 비이성적인 선택으로 이끄는 저항할 수 없는 힘'(Sway: The Irresistible Pull of Irrational Behavior)은 이처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행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동기에 따른 엉뚱한 선택 양상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묘사하고, 그 뒤에 도사린 심리기제를 분석한다. 우리가 왜 때때로 비논리적이고 황당한 선택을 하는지, 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지를 다양한 분석틀과 시각으로 설명한다 (한국 번역서의 제목도 같은 스웨이(Sway)이다. 부제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
브래프먼 형제는 뛰어난 이야기꾼들이다. 다양한 실제 사례를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지, 마치 잘 짜여진 플롯과 예기치 않은 반전으로 꼼꼼하게 직조된 꽁트나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다. 그리고 말 그대로 소설 같은, 믿기 어려운 사태의 반전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교한 분석틀과 잘 입증된 이론들로 명료하게 설명해준다.
스웨이에 소개된 대표적 사례는 이런 것들이다.
워싱턴 DC 전철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조슈아 벨. 유타 재즈의 명감독 제리 슬로운.
- 한때 항공사에서 '안전'의 대명사로 꼽히며 롤 모델로까지 꼽혔던 베테랑 비행사가, 어떻게 5백명 이상의 승객을 죽음으로 몰고간 초대형 항공사고를 냈을까?
- 주가가 빠질 때, 왜 수많은 사람들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파는 게 현명하다'라는 증권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주가 반등을 기대하다가 결국 몽땅 말아먹고 마는 것일까?
- 워싱턴 DC의 전철 승객들은 왜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변장한 조슈아 벨을 몰라봤을까? (위 사진)
- 왜 NBA 코치들은 개별 선수의 재능이나 노력보다 드래프트 순위에 더 연연해 그들의 출장 시간을 제한할까?
- 왜 채용 인터뷰가 종종 그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사람을 뽑게 될까?
- 20불짜리 지폐를 놓고 벌인 경매에서 왜 대학생들은 200불까지 불러댈까?
브래프먼 형제가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 쉽고 빨라 보이는 단기적 소견의 유혹을 잠시 밀쳐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태도를 기를 것.
- 감정적/즉자적 결정을 이성적/논리적 판단으로 재평가할 것.
- 우리의 판단과 결정에 선입견이 작용했는지를 재검토하는, 거의 '선'(禅)적인 접근법을 배양할 것.
- 우리가 옳거나 맞다고 믿는 가치 판단이나 결정이, 어쩌면 근본적 오류에 바탕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개방적 시각을 가질 것.
- 이른바 '본능'(gut instinct)을 곧바로 따르지 않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think twice), 생각하려 의식적으로 애쓰는 습관을 붙일 것 등.
'다 아는 내용이잖아?'라거나 '이런 걸 누가 모르나?'라고 반응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 전체를 찬찬히 읽은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말하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그 결론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상투적 담론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흥미 만점의 실제 사례들과, 그를 설명해주는 정립된 이론들로 탄탄하게 짜여져 있다면 그 설득의 힘이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뜻이다.
스웨이의 결론에 나오는 또다른 비유는 자동차 여행중 타이어가 펑크난 상황이다. '멀리 여행을 가는 중인데 펑크가 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타이어를 수리한 뒤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크게 두 가지다: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지름길을 택하고 여행 일정 자체를 완전히 수정하느냐, 아니면 어차피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수용하고, 본래 잡았던 계획대로 나가느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문화 예술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패드를 계기로 본 '웹 2.0' 시대의 책 읽기 (4) | 2010.01.31 |
---|---|
'호밀밭의 파수꾼'과 'The Catcher in the Rye' 사이의 아득한 거리 - J.D. 샐린저를 추모하며 (7) | 2010.01.30 |
클래식 음악계의 '작은 거인' 토마스 크바스토프 (5) | 2010.01.14 |
MBC 욕심이 '선덕여왕' 망쳤다 (9) | 2009.12.23 |
세계적인 휴머니스트 김영희 PD (3) | 2009.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