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성우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일명 일밤이라는 MBC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요즘은 워낙 드라마에 꽂힌 터라 예능은 잘 보지 않았는데, 일밤을 다시 보게 된 까닭은 다름아닌 김영희 피디 때문입니다. 이민을 오기 전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연예인은 최진실이었고,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피디는 김영희였습니다.
당시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는 그는 얼굴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몇년 전 '칭찬합시다'를 찍을 때는 검은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 구렛나루에 가까운 수염, 그리고 푹 눌러쓴 모자 등으로 몹시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쌀집아저씨라는 별명은 바로 이같은 외모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그를 만났을 때는, 얼굴이 위와 같이 깨끗하고 맑아보였습니다. "어, 많이 변하셨네요?"라는 말에 그는 "술 담배를 끊고, 고기를 끊었더니..."라고 답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감동이 있는 캠페인으로 격상시키기로 유명한 김 피디가 이번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고전 많이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더 잘 아시겠지만 그가 피디연합회 일로 몇년 동안 현장을 떠난 사이에, 방송 특히 예능 환경이 너무나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사는 나에게도 궁금거리였습니다.
지난 주에 혹시나 하고 일밤을 보았습니다. 사실 아버지 이야기를 그린 것은 그저 그런 눈물 짜내기로 비쳤습니다. 세상 아버지 가운데 자식에게 미안해 하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 있겠으며, 아버지에게 죄송해 하지 않을 자녀가 어디 있겠습니까? 눈물 짜내기라고는 하지만 요즘 예능에서 이만한 것도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연예인들끼리 서로 치고 받기 하면서 까불며 놀거나, 자기들끼리 놀면서 실제 성과는 하나도 없는 한국 음식의 세계화 따위의 얄팍한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김영희의 새로운 파워를 느끼게 한 것은 '단비'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피디가 이같은 발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잠비아라는 오지에 연예인들을 투입한 것만 해도 모험인데, 그들로 하여금 현지인들과 생활하게 하면서 물을 뽑아올리게 하는 내용. 말 그대로 그것은 생명수였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예인들의 태도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잠비아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덥썩 덥썩 받아먹고, 그들이 자는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그들이 쓰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바로 그같은 태도는, 일반인도 쉽게 하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특히 출연자들이 아이들과 율동을 하면서 노는 장면에서, 저건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율동을 해본 경험이 있으면 잘 압니다. 아이들은 절대 꾸미지 않습니다. 잠비아 아이들은 진정으로 즐거워 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드디어 맑은 물까지 터져나오는 장면에서 잠비아 사람들과 출연 연예인들은 눈물을 훌렸습니다. 현지의 스탭들도 눈물을 쏟으며 찍었을 것입니다. 나처럼 캐나다에 사는 시청자도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니까... 내가 아는 김영희 피디라면 편집을 하면서 눈물을 쏟았을 것입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이 이같은 감동을 안겨주겠나 싶습니다. 일에서는 독종 중의 독종이지만 품성은 한없이 인간적이고 서정적인 김영희 피디가 아니라면, 이런 감동과 눈물을 안겨줄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프리카 오지를 떠올리고,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생명수까지 안겨주는 바로 그 모습은 세계적은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김영희 피디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자원봉사자로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도움이 물조차 제대로 못먹는 잠비아에서 얼마나 간절한 단비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을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렸습니다. 물 한 잔을 먹어도 고맙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출연 연예인들 또한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 방송을 보는 내가 다 뿌듯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잘 놀고, 눈물을 유독 많이 보인 배우 한지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는 김영희 피디를 방송인을 넘어 휴머니스트라 부르면 좋겠습니다. 휴머니스트도 저 정도라면 세계적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겠습니다. 과연 김영희 피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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