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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기자 초년병과 지망생에게 필독서 2권


  한국에 너무나 짧고 굵게 다녀온 탓인지 아직도 비몽사몽입니다. 새벽에 잠을 깨고 또 자도 낮에는 졸립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온 탓인지, 모국의 시간이 내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갔을 적에 사진가 강운구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강선생님을 뵌 까닭에 대해서는 따로 적도록 하겠습니다. 늘 그러셨듯이, 강선생님은 내게 책을 주셨습니다. 

  <특집! 한창기>(창작과비평사)

  나온 지 한참되어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시리라 믿습니만, 나는 저 책을 한국 방문중에 끼고 살았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부터 손에서 뗄래야 뗄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잡지사, 나아가 언론사에 끼친 한창기씨의 업적을, 저 분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목소리 혹은 시선을 통해 조명하는 '잡지' 형식의 단행본이었습니다.

  브리태니카 사전 판매부터 본격화한 한창기의 이력은 뿌리깊은나무로 용솟움치다가 전두환 철권에 위기를 맞은 뒤 샘이깊은물로 보기좋게 재기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사이 사이 한창기는 이런 저런 뜻깊은 시리즈물을 출판합니다.

  한창기를 직접 만난 적은 없으니, 그에게 배운 바도 없습니다. 그러나 <특집! 한창기>를 읽으면서, 내가 한창기의 자장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문득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인생의 스승으로 꼽는 위대한 선생님들의 인명 목록에, 한번도 직접 배운 적 없는 '한창기'를 끼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바로 그 자장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에 대한 처절한 집착, 우리 문화에 대한 빼어난 안목,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 등등을 읽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잡지쟁이로서의 독선과 고집, 드높은 안목 또한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직접 배운 바 없으나 그의 영향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쉰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작고한 1997년 2월, 나는 뉴욕에 놀러갔다가 특종을 잡았습니다. 화가 이 불이 MoMA에서 전시하다가 작품을 강제 철저당했다는 이야기. 미술계에서는 대단히 큰 뉴스였습니다. 나는 지면을 더 요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한창기 추모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한창기 선생이 편집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추모 기사를 줄이고 특종 기사를 키웠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지면으로 만나 뵈었으나, 나는 한국 잡지 언론계에서 한창기의 피를 받았구나 하는 느낌을 구체적으로 갖게 됩니다.

  한창기와 이런 저런 인연을 맺은 이들이, 각자 지닌 색깔과 시각으로 한창기를 조명한 책이 <특집! 한창기>입니다.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은 과거 주간지 시사저널 기자들이 쓴 시사저널에 관한 애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한창기'가 화두였다면 '시사저널'을 화두로 쓴 책이 뒤의 것입니다.

  이 밤에 우연히 그 책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과장된 면도 있고, 나쁜 것은 빼고 좋은 것만 쓴 측면도 있지만 청춘과 순정을 바친 기자들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새삼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자 지망생이든 현직 기자든 위의 두 책을 정독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