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은 동메달을 딴 3명의 수퍼스타를 보다 보니, 절치부심했던 아사다 마오가 왜 김연아를 넘어서지 못했나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보였습니다. 바로 눈물입니다. 세 선수 모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세 선수 모두 울었으나 아사다 마오의 눈물은 다른 두 선수와 그 때와 의미가 달랐습니다.
김연아와 조애니 로세트. 김연아는 경기를 마친 직후 눈물을 흘렸습니다. 물론 우승을 확신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수 없이 만족스러운 경기를 했다는 의미였습니다. 김연아는 시상대에서도 잠시 눈물을 보였지만 1등을 했으니 당연히 터져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조애니 로셰트.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십분 살려 동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3위을 했으면서도 로셰트는 감격의 눈물을 뿌렸습니다. 그 눈물 또한 연습해온 대로 만족스럽게 연기를 했다는 의미가 큽니다. 지난 일요일 응원차 밴쿠버에 온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눈물이 더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다 마오는 달랐습니다. 김연아가 만족스런 연기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고득점까지 챙기자 경기를 하는 중에 표정이 매우 어두웠습니다. 경기를 마친 후에는 밝은 웃음도, 다른 두 선수처럼 눈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 위와 같이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금 동메달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경기 직후, 점수가 나오기 전 "내가 할 바를 다 했다" 또는 자기 경기 내용이 아쉬워서 눈물을 흘렸다면 아사다 마오 또한 '큰 선수' '대선수'로 인정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기자회견 중에 이렇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경기 성적과 결과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나온 눈물일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아사다 마오가 절대 강자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김연아와 라이벌 관계였다고 하지만 전세계에 수십, 수백만 피겨스케이터 가운데 2등을 차지했다면, 그것은 대단한 성적입니다. 더군다나 아사다 마오는 이번 올림픽에서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개인 기록도 갈아치웠습니다. 선수로서 최선을 다 했고,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우선 기뻐해야 했습니다. 조애니 로세트처럼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에게 져서, 그것이 아쉬워서 눈물을 흘린다면 아사다 마오는 넘버 원이 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애니 로셰트는 동메달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모릅니다. 이곳의 일간지 '토론토스타'도 올림픽특집판의 1면 머릿기사로 로셰트의 동메달 소식을 전했습니다. 동메달의 값어치를 금메달 못지 않게 높이는 것입니다. 반면, 아사다 마오는 인터뷰에서의 저 '아쉬움의 눈물'로 그 빛나는 은메달을 노메달보다 값어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모름지기 저 정도의 반열에 오른 최고 승부사라면, 자기 자신과 승부를 벌이고, 경기 성적에 만족했다면 그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만일 김연아라면 저런 식으로 눈물을 흘렸을까? 아닐 것 같습니다. 넘버원과 넘버투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입니다.
◇…김연아의 우승 소식을 외신들은 앞을 다퉈 보도했다는데, 정작 캐나다 최대 일간지 '토론토스타'는 사진 한 장 싣지 않았습니다. 금메달을 딴 여자 하키보다 동메달을 획득한 조애니 로셰트에게 더 비중을 두었고, 여자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내용은 오로지 로셰트에 관한 애잔한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자국 선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가 놀랄 만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고 밴쿠버 올림픽을 빛내는 스타로 떠올랐는데 컬러 사진 한 장 정도는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흑백 사진으로 구석에 작게 박아놓았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올림픽이 열리기 전부터 밴쿠버 올림픽을 알리는 기사에 김연아를 내세웠고, 금메달을 딴 이후에도 1면에 사진을 실은 것과는 참 대조적입니다.
토론토에서 4년 가까이 훈련해온 김연아에 대해, 토론토스타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지면을 내주지 않았고 설사 내줬다 해도 이상하게 기사를 썼습니다. 김연아를 오로지 '브라이언 오서가 키우는 선수'로 부각했을 뿐입니다. 심지어는 브라이언 오서라는 거장의 '기계'라는 표현까지 제목으로 쓰면서, 오로지 브라이언 오서가 이번에는 그 기계를 통해 금메달의 한을 풀까 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다소 진보적인 신문이어서 토론토스타를 좋아했는데, 김연아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도 인색하고 보수적이어서 조금 씁쓸합니다.
◇…김연아의 'Untouchable' 면모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장르가 다르다'는 점을 가장 먼저 들 수 있겠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경기'를 한 반면 김연아는 '발레'를 했습니다. 스포츠 경기와 발레의 차이는 큽니다. 아사다 마오가 깡총깡총 뛰는 스타일이었다면, 김연아는 우아한 춤사위를 보여주었습니다. 팔다리가 유난히 길고, 다른 신체 조건 또한 대회 참가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캐나다 방송 캐스터가 흥분하여 "Absolutely incredible performance"라고 격찬할 만합니다. 운동 경기를 발레의 경지로 올려놓았으니, 다른 선수들과는 게임이 안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SBS 방송 캐스터의 말은 아주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저 느껴야겠네요."
◇…김연아가 물론 잘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김연아 스타만들기 시스템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피겨 스케이터 쪽에서는, 미셸 콴 이후 큰 스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스타가 나와야 '흥행'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어쩌면 대스타가 있어야 심판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도 더 잘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연아는 시기 또한 잘 탔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타 기근에 시달리던 피겨스케이트 계에 실력과 빼어난 외모를 갖춘 '최고의 상품'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경기 전부터 공공연히 'Queen Yu Na'라고 부르고, 카타리나 비트나 미셸 콴 등 과거의 대스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가 하면, 텔레비전 중계 중에 한국에 광고 모델로 등장한 장면을 소개하는가 하면, 뉴욕타임스에서 저렇게 몇번 씩이나 크게 다룬 것을 보면 스타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스타가 있으면 대중은 즐겁습니다. 그런 걸 보면 '토론토스타'는 혼자 '뻘짓'을 하는 셈입니다.
◇…그나저나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나온 메달들은 김연아의 그것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이 값진 것인데, 김연아 때문에 또 묻히는 느낌이, 이 먼곳에까지 전해집니다. 이럴 때는 여자 하키 금메달보다 조애니 로셰트의 동메달 소식을 더 비중있게 다룬 토론토스타의 보도 방식 혹은 균형 감각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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