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지난 뉴스여서 퍽 익숙할 수도 있겠습니다. 토론토에 살면서도 SM 소속 가수들이 파리에서 어떻게 공연했는가 하는 뉴스를 접했으니, 한국에서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공연 현장 모습을 유튜브로 보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어릴 적 샹송에 열광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던 발음으로 흥얼대던 바로 그 모습을, 수십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소녀들이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샹송을 처음 만난 것은 1977년이었습니다. 나의 큰 누이가 대학 졸업식을 하던 무렵이어서 뚜렷하게 기억하는데, 당시 상업방송이던 TBC에서 실비 바르땅이라는 샹송 가수를 초청하면서 스팟 광고를 무수하게 내보냈습니다. 광고에 나온 실비 바르땅의 모습은, 요즘 흔히 말하는 여신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예쁜 서양 여자는 처음 보았습니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멜로디는 너무도 달콤했습니다.
동영상을 찾아보니 없고 폴모리아와 협연한 노래만 흘러나옵니다. 모짜르트의 교향곡 40번만 들으면 나는 남영동 숙대 앞 철교 밑을 지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마 그때 실비 바르땅의 이 목소리가 전파사에서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괜히 내 노래 같고, 나를 위한 노래 같아서 신이 났습니다.
물론, 노래 제목도 몰랐고, 그 곡이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실비 바르땅의 내한 공연은 당연히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1977년이니 실비 바르땅은 한물간 가수였을 테고, 한물 갔으니 한국에 들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실비 바르땅 이후 샹송에 관심을 좀 가졌더니, 에디뜨 피아프, 이브 몽땅에서부터 아다모, 자크 브렐을 거쳐 조르주 무스타키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중학 시절부터 대학원 때까지 관심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마지막 가수가 프랑수아즈 아르디입니다. 불문과에 들어간 것도 다음과 같은 장면이 몇 퍼센트는 작용했을 것입니다. 음유시인 이브 몽땅과 자끄 브렐입니다. 그리고 에디뜨 삐아프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서가 바뀌고, 받기만 하던 한국의 대중문화가 문화 예술 선진국이라 자랑하던 프랑스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우리 딸이 곁에서 "SM타운의 파리 공연 티켓이 15분만에 다 팔렸다"고 알려줍니다.
과거 내가 받던 바로 그 감동을 지금 프랑스 10대들이 되돌려 받고 있습니다. 내가 갖던 프랑스에 대한 환상은, 지금, 한국에 대한 프랑스 소녀들의 환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샹송에 관심을 갖는 10대는 거의 없으나, 프랑스에서 K-POP에 대한 관심은 뜨겁습니다. 키워졌느니, 노예계약이니 어쩌니 하면서 현지 언론이 아무리 비판해도 K-POP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 저들의 10대가 열광합니다. 저들은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은 물처럼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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