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는, 캐나다에 살면서 유일하게 즐기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 제작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출연하는 가수들이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탈락'이라는 구도가 선의의 경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지나친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안쓰럽다는 생각도 갖게 합니다. 뮤지션들을 저렇게 몰아붙여도 될까 하는 안타까움 한켠으로, 저렇게 하니 감동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얻는 거다라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이것을 아이러니라 해야 할지, 필요악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 밴드 자우림이 나왔을 때, 제작자들이 그 필요악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도입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것은 좋은 프로그램,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최소한의 굴욕적 장치라기보다는, 제작자의 무지와 횡포가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뉴스를 보니 자우림의 김윤아가 방송을 본 후 청중과의 교감이 편집된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오늘 DAUM에 공개된 편집 안된 영상을 보니, 뮤지션으로서 아쉬움 정도가 아니라 장탄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우림은 <고래사냥>을 노래하기에 앞서 '응원'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고래사냥이라는 노래를 들고 나온 분명한 이유를 사람들에 대한 '응원'에 두었고, 쌍팔년 느낌이 나는 대형 응원 깃발까지 동원했습니다.
뮤지션의 의도가 반영된 무대 공연은 하나의 완결된 작품입니다. 연주 중간에 들어가는 멘트에 대해서야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공연 자체를 잘라버리는 것은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무시 또는 폭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 사정으로 그랬다면 개그맨들의 말 몇 토막만 줄여도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음악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 제작자라고 해도 그렇지,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이렇게 가위질을 하는 것은 가수와 팬들에 대한 예의 차원을 넘어 비상식적이고 부도덕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윤아는 인터뷰에서 "청중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셨다"고 했습니다. 교감을 요청했을 때 그만큼 적극적으로 호응해줬다는 말인데, 제작자들은 가위질을 해댐으로써 김윤아가 한 말의 의미마저도 무참하게 뭉개 버렸습니다. 자우림은 응원의 느낌을 갖게 하기 위해 가장 유명한 응원곡 멜로디를 동원했고, 남녀를 나눠 합창을 하게 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연습하고, 연주 중에 실행에 옮겼습니다.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때 대형 깃발이 무대를 가로질렀습니다. 제작자는 바로 이 아이디어와 작품 자체를 제 맘대로 잘라버렸습니다. 공연 편집에 대해 사전 교감도 없었다는 것은 김윤아의 아쉬움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청중 평가단이 밴드와 함께한 바로 그 교감에 감동하여 자우림에게 몰표를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작자의 가위질은 현장을 보지 못하는 시청자에 대한 기만과 연결됩니다. 작품에 대한 제작자의 가위질은 뮤지션과 청중을 모독하고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무지와 오만과 편견이 느껴집니다.
나는 나가수에서 가수들의 경쟁 구도를 관심을 끌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라고 좋게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자우림에 대한 가위질을 보면서, 경쟁 구도에까지 끌어온 뮤지션들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경지에 이르른 몰상식을 봅니다. 과거 공연윤리위원회가, 자기들 멋대로, 입맛대로, 대중음악과 영화에 가위질 해대던 기억이 떠오를 지경입니다. 창작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심의자(나가수의 제작자)가 자기 구미에 따라 잘라버리는 가위질은 예술가와 예술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자 모욕입니다.
아무리 제작자라 하지만 가수의 작품을 싹둑 잘라버리는 가위질을 할 권한은 없습니다. 화가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떤 부분을 싹둑 잘라버리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과거 같으면 자우림 YB 같은 밴드가 심하게 항의하며 출연을 거부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이들이 들어 세상을 둥글게 살기로 했겠으나 마음 한 켠으로는 참 착잡했을 것입니다. 보는 내가 다 안쓰러운데…. 아무리 예능PD라고 하지만 신PD, 반성해야 합니다. 자기가 만든 예능 프로그램을 윗선에서 누가, 사전 상의도 없이, 자의적으로, 싹둑 잘라버리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문화 예술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뽑은 <나가수> 노래 베스트7 (1) | 2011.08.22 |
---|---|
박정현이 최강인 7가지 이유 (8) | 2011.08.16 |
실비 바르땅에서 슈퍼주니어까지... (1) | 2011.07.05 |
나가수에 소개하고 싶은 가수 (4) | 2011.07.05 |
임재범과 동갑인 나도 그의 노래 들으면 눈물이 나는데... (9) | 2011.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