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더반.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도시입니다. 1974년 4월 어느날 아침 학교를 가려는데 아나운서가 흥분해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웃 집에서 와와 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홍수환이 남아공 더반까지 날아가 당시 챔피언이었던 홈그라운드의 아놀드 테일러를 때려눕히던 라디오 중계방송이었습니다. 몇 차례 다운을 빼앗을 끝에 15라운드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기억합니다.
경기 직후의 홍수환과 아놀드 테일러. 얼굴만으로도 누가 승자인지 쉽게 짐작하리만큼 홍수환의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홍수환은 말짱하고 테일러 눈탱이는 밤텡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여서 더욱 값졌다. 홍수환에게 일격을 당한 테일러는 페더급으로 올려 시대를 호령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나는 홍수환을 처음 알았고, 세계 챔피언 소리를 처음 들었으며, 밴텀급이라는 체급도 알게 되었습니다. 김기수 이후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에 오르며, 홍수환은 너무나 유명해졌고 숱한 화제를 낳았습니다. 오죽하면 아놀드 테일러, 카라스키야라는 이름까지 기억하겠습니까.
36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 홍수환이 어머니와 전화통화한 내용입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장하다, 대한독립 만세다."
녹화한 흑백 영상으로 타이틀전을 수없이 방영하면서 마지막에 꼭 끼워넣었던 모자의 육성 대화였습니다. 아들은 "먹었다"는 속어를 썼고, 엄마는 "대한독립"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 있었던 이라면 모두 기억하는 불멸의 명대사입니다.
홍수환과 허정무. 1970년대 중반부터 떠오른 동시대 스타입니다. 36년이 지나 홍수환의 바로 그 더반에 허정무호가 입성합니다. 당시 홍수환이 먹은 것처럼 상쾌하고 깔끔하게 16강을 먹기를... 홍수환은 타이틀을 거머쥔 후 서울 도심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였습니다. 나는 버스를 타고 태극기를 들고 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지하철도 없었습니다. 나이지리아를 꺾으면 커퍼레이드를 벌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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