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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한국 선수를 주눅 들게 한 감독 허정무


  지금부터 쓰기 시작하는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논리적인 근거 또한 희박합니다. 수십년 한국 축구를 즐겨온 팬의 한 사람으로서 갖는 '직관'이 유일한 근거입니다. 

  그러나 나는 최근 한국의 국력과, 그것을 백그라운드로 하는 한국 스포츠의 장족의 발전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나의 직관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토론토 시간으로 오전 7시30분부터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조별 예선 2차전에서 1패 하기는 한국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패배와 한국의 그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은 아깝게 졌지만 한국의 패배에는 '아깝다'는 말조차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져도 사기충천했으며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지만 한국의 패배는 반대로 사기를 떨어뜨렸고 비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차두리를 왜 기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비난이 가장 컸습니다.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자 전술을 위한 핵심 카드인 만큼 특정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 허정무 감독이 가장 비난 받아야 할 문제는 무기력증입니다. 한 골을 먹고 두 골을 넣자며 독하게 살아나는 게 아니라,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지는 무기력증. 과거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 나가, 실력 한번 보이지 못한 채 무너지던 바로 그 모습, 24년 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에 무너지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네가 마라도나냐?":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를 걷어차는 허정무. 당시만 해도 큰 대회에서 강팀을 만나면 주눅부터 들어 제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두 골을 어이없게 내주고 난 뒤, 제 정신을 찾아 두 골을 만회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시대와 선수가 달라진 지금, 허정무호는 아르헨티나 전에서 아주 오랜만에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네가 마라도나냐?"는 당시 신문에 실린 유명한 사진 캡션입니다. 이 말 속에 당시 한국 축구 위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허정무는 마라도나와 처음 경기했겠으나, 박지성 등은 메시 이과인 차베스와 적과 동지로 일상적으로 만날 만큼 시대가 변했습니다. 북한이나 일본처럼 잘 싸우고 지면 박수를 받습니다. 아르헨티나 전에는 박수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무기력증은 선수가 아닌 감독에게서 나왔습니다. 전반에 먹은 두 골 모두 오른쪽이 뚫려 헌납했습니다. 오른쪽이 뚫려 센터링이 올라갔다면 감독은 바로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허정무 감독은, 24년 전 아르헨타나에게 깨질 때의 한국팀처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 조치란 상식입니다. 아르헨티나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오른쪽 구멍을 틀어막는 일입니다. 후반에도 그 구멍은 여전히 뚫려 있었고, 아르헨티나는 열려 있는 바로 그 오른쪽 구멍을 통해 두 골을 뽑아냅니다. 너무나 쉽고 여유있게 뽑아냅니다. 오범석과 최종 수비수 조용형이 한데 몰려 우왕좌왕하는 모습마저 연출되었습니다.

  허 감독은 왜 그 구멍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바로 감독 자신이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전에 관한 한 한국 선수들은 21세기형이었으나 허 감독은 20세기형이었습니다. 21세기 한국 선수들은 강팀에 주눅 들지 않습니다. 히딩크가 뿌린 씨앗이기도 하거니와 세대 자체가 그렇습니다. 야구팀이 WBC에 나가 미국 일본과 맞짱을 뜨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김연아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 또한 빙상 강국에 꿀리는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 제 실력도 발휘하기 전에 주눅부터 드는 촌티가 이들에게는 없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했던 홍명보 황선홍 세대가 히딩크의 조련을 받아 주눅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면, 그 뒷세대는 그들 스스로 주눅들지 않는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야구든 축구든 골프든, 아니 미술이든 음악이든 학술이든 어느 곳에서도 박지성 김연아 세대는 주눅이 들지 않고 맞짱을 뜹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눅들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120% 발휘하여 상대를 오히려 주눅들게 합니다. 정신뿐 아니라 신체적인 조건 또한 월등히 좋아졌습니다.

  오늘의 일본이, 그제의 북한은 강팀에 주눅들지 않는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반면 허정무 감독은 그 좋은 자원을 가지고, 잔뜩 주눅들어, 허둥지둥 어떤 대안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염기훈 선수가 골을 넣지 못한 것에 경기 흐름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봐주기 힘듭니다. 선수가 골을 못 넣어서가 아니라, 오른쪽이 뻥뻥 뚫려 세 골, 네 골이 들어가는 데도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잔뜩 주눅든 감독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감독이 제 역할을 못하니, 감독의 그 주눅은 선수들에게 바로 전염됩니다.

  져도 좋으니 제 실력이나 발휘하라는 말은 1990년대까지 쓰인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선수들이 주눅들지 않으니 이런 격려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흘러간 옛 격려를 다시 하게 하니, 모든 것은 주눅에 익숙한 감독 탓입니다. 북한을 닮아라, 일본을 닮아라 하는 말이 왜 나오겠습니까.

  1998년 잔뜩 주눅든 차범근 호는 네덜란드에 참패했습니다. 차범근은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당시 허정무는 대회 중 공개석상에서 차범근을 비난해 도중하차에 일조했다고 합니다. 

  당시와 비교해 시대가 변하고, 한국 축구의 위상이 달라지고, 선수가 주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좋은 환경과 자원을 가지고 감독 허정무가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자못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프리미어리그의 광팬인 뉴욕 친구의 촌평에 따르면, 한 마디로 전략 전술의 부재가 참패의 원인인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박지성을 뛰지 못하게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평소 10km를 넘게 뛰던 박지성이 7km 남짓밖에 못 뛰었다는군요. 감독이 선수의 기량을 극대화하는 포지션을 찾아주지 못했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