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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토론토에서 북한 응원 딜레마



  월드컵 기간이 되면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뉴욕 토론토와 같은 여러 민족이 모여사는 도시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풍경일 터인데, 민족성을 표출하는 것을 장려하는 토론토에서는 그 색깔이 유독 강할 것입니다.

  다름아닌 자기 나라 국기를 차량에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국기(國技)나 다름없는 하키가 선전을 하면 토론토 메이플립스의 깃발이 자주 보입니다. 차량에 자기가 좋아하는 팀의 깃발을 꽂고 다니며 팀을 응원하고, 응원하는 팀의 선전을 자랑하는 일을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모국이 선전하면 으쓱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길거리에서 국기를 파는 모습입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와 캐나다기를 팔고 있습니다.


  국기를 파는 가게는 말 그대로 대박입니다. 평소에는 물건을 도매로만 팔던 위의 회사는 지금 소매를 겸하고 있습니다. 태극기가 눈에 띄게 보이는 이유는 한국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국기 가운데 당연히 북한 인공기도 섞여 있습니다. 32개국 국기를 제작하면서 일부러 빼놓을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인공기는 토론토에서 가장 적게 팔릴 확률이 높습니다. 저 깃발을 꽂고 다닐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차량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반면, 아직까지 북한 인공기를 달고 다니는 차는 보지 못했습니다. 

  토론토 최대 일간지 <토론토스타>에서는 지난 주말 바로 이 점을 주요 기사로 삼았습니다. 이곳 코리언들이 정치적으로 라이벌인 남북한 응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토론토에 사는 한국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내놓고 북한을 응원한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북한을 응원하면 간첩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심정적으로는 응원하지만 내놓고 응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드러냈습니다. 한국의 길거리 응원처럼, 한국 경기가 열리는 꼭두새벽에 한인회관에 모여 단체 응원하는 것처럼 북한을 응원하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토론토에 한국인으로 살면서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서 받는 가장 짜증나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남한에서 왔니, 북한에서 왔니?"

  심지어 중국 것들도 이렇게 묻습니다. 버럭 화가 납니다. "너는 도대체 아는 게 뭐냐?"면서...

  외국인들에게는 저런 질문이 이상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하니, 토론토 코리언이 북한을 응원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게 신문의 주요 기사거리가 됩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충실하게 했고, 기사를 꽤 잘 썼습니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인공기를 차량에 부착하는 데도 강한 거부감 혹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어느 누가 이곳의 어느 게시판에다가 "정치는 잠시 접어두고 태극기와 인공기를 함께 달고 다니며 응원하자"고 제안했다가 치도곤을 맞고 '깨갱'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모두 북한을 응원합니다. 다른 나라와 붙으면 당연히 북한을 응원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남북 단일팀을 구성했을 때 앞세우는 한반도기가 있다면 참 유용하겠다 싶습니다. 자동차에 인공기를 달고 다니기는 좀 그렇고, 심정적으로 북한을 응원하다는 것을 직접 드러내 보이는 가장 효과적인 깃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