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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캐나다 이민자들의 '학력 과잉'



    
  (토론토=성우제) 캐나다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 교류하면서 느끼게 되는 놀라움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학력 과잉' 문제입니다. 이민만 오면 중뿔나게 무슨 살길이을 열어줄 것도 아니면서 캐나다 정부는 마치 직장이라도 알선해 주려는 듯 이민자의 학력 경력 등을 무척 따집니다. 하여 한국뿐 아니라 캐나다에 이민을 온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은 최소한 대졸자입니다.

   요 몇년 사이에, 일 관계로 중국 아랍 인도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있는데, 그들의 학력과 지적 수준을 보고 여러 번 놀랐습니다.




  사람을 서너 차례 만나면 느껴지는 지적인 'Force'가 있습니다. 요즘 새삼스럽게 확인한 사람들이 몇명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나라에서 최고급 엘리트였다가 이민을 와서는 단순 육체노동에 종사한다는 것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본인이 선택해서 단순 육체노동에 종사한다면야 엘리트고 자시고 말할 거리가 없겠습니다. 문제는 본인이, 자국에서 받은 교육과 쌓은 경력을 캐나다에서 써먹을 줄 알고 왔는데, 그럴 환경이 되지 않으니 생존을 위해 원치 않는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점입니다.

  루이라는 이름의 아랍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이라크 국립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입니다. 30대 중반인 그는 캐나다에 와서 취직자리를 구하다가 여의치 않자, 이곳 칼리지에서 다시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취직자리가 마땅치 않아, 원하던 분야에서 여러 단계 낮춰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이 성이 차지 않아서 아예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는 지금 전공과는 전혀 관련없는 의류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합니다. 이름이 좋아 매니저지, 머리는 별로 필요치 않고 힘이 많이 필요한 직종입니다.


  몇 주 전에, 어느 의류회사에 갔다가 새로 온 직원을 만났습니다. 인상을 보아하니, 많이 배운 사람이고 뭔가 특별한 전문직에 종사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단도 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네 직업이 뭐였니?"라고 물으면 실례가 되니까 "혹시 중국에서 심리학자로 일하지 않았니?"라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라면서 "그 비슷한 거다. 그런데 절대 맞추지 못할 거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답을 듣고 1초만에 전직을 맞췄습니다. 속으로 짐작만 했습니다. "흠...정신과 의사였군."

  몇 주 뒤에 다시 물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너, 정신과 의사였지?" 이번에는 더 놀랍니다. "어떻게 알았느냐"며... 척 보면 압니다. 그녀는 중국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딸을 교육시키러 온 기러기엄마입니다. 4~5년 체류하게 되니 공부를 하여 의사 직업을 가지려고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사정을 알아보고 금세 포기했다고 합니다. 중국 경력을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 다시 공부해 보았자 의미를 찾을 만큼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올해가 캐나다살이 3년차인데 몇년 후 중국으로 되돌아갈 예정입니다. 중국으로 가면 그 자리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수리더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의류회사 사장은 인도 캘커타국립대학 경영학과 출신입니다. 인도에서는 머리가 가장 좋은 축에 드는 엘리트였습니다. 역시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 의류 수입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해도 좀 크게 하고 싶은데, 시장 자체가 좁아 좀 답답하다고 합니다.

  소피아라는 이름의 중국 출신의 의류회사 사장. 역시 작은 회사입니다.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 대학 법학과 출신으로, 캔사스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캐나다에 와서 직업을 구하려 해도 별무소득. 그래서 아르바이트 삼아 의류회사에 취직했다가, 그곳에서 이런 저런 방법을 배워 자기 회사를 차렸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전공은 전혀 써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한국 이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의 경력을 이으려 해도 절대 이을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이야 애초부터 그 길을 포기했지만, 전공을 살려 일을 만족스럽게 해나가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소수 중에는 뛰어난 사람도 적지 않아, 이민1세로서 일가를 이룬 케이스도 있으나 전체로 보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캐나다는 이렇게 고학력 전문경력자들을 우대하여 받아들여놓고는, 제대로 써먹지도 못합니다. 이럴 것이라면 왜 그렇게 고학력을 따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10km 달리기 기록 같은 체력장 점수를 고학력보다 훨씬 더 필요로 하는 곳에서...

  누구에게 들으니, 택시 운전기사 가운데 토론토 운전기사 학력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박사를 하고도 마땅한 직업을 얻지 못해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숱하다고 합니다. 이민자 나라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