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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김구라와 진성호, 누구 말이 막말인가



 
   이민을 와서 인터넷 덕분에 캐나다에서도 한국 텔레비전 시청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몇년 동안 보지 않다가 다시 접하게 된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가장 낯설었던 것은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떼를 지어 몰려나온 틈바구니 속에서 말 폭탄, 웃음 폭탄을 날리지 않으면 주목 받지 못하는 분위기. 

  그 낯선 풍경 속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가 김구라였다. 구라? 이름부터가 폭탄이었다. 황구라, 유구라 하면서 사석에서 유명 인사의 별명을 부르는 것은 들은 적이 있으나, 공공 매체에서 이름으로 '구라'를 쓰는 것부터 강렬했다. 이름 하나만으로 "네들 사석에서는 구라깐다고 말하잖아. 이게 뭐가 어때서…" 하는 인상을 풍겼다. 그는 이름 하나만으로 달라진 방송 문화를 드러내 보였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고 보기 싫기도 했으나 자꾸 보니, 그는 대단한 소구력과 흡입력을 가진 '방송인'이었다.  김구라의 특징은, 내가 보기에, 독설이나 막말이 아니라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자"이다. 일상에서 흔히 하는 까놓고 솔직하게 말하기가 방송을 통해 나오니 '독설' 혹은 '막말'이 되는 것일 뿐이다.

김구라는 정장 차림을 즐겨한다. 차림새의 근엄함과 구라. 그는 차림새와 이름만으로도 '까놓고 솔직하게 말하자'고 발언하는 듯이 보인다. 

  하긴 방송 환경과 분위기 또한 많이 바뀌었다. 과거 언급조차 하지 않던 타방송사에 대한 내용이 K본부니 M본부니 하면서 스스럼없이 나오고, '리얼' 오락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룰 정도로 이제는 '까놓고 말하기'가 일상화했다. '아닌 척' '모른 척' 하는 한국의 '척' 방송 문화가 사실대로 말하기,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바뀌었다. 

   내 눈에는 바로 그 중심에 선 이가 김구라로 보였다. 그는 새로운 방송 문화 때문에 스타가 될 수 있었고, 새로운 방송 문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스타이다. 나는 김구라의 바로 그 거침없음을 보려고 '라디오스타' '세바퀴' '절친노트' '오빠밴드' 등을 찾았다. 

  비록 그가 방송에서 듣기 부적절한 비속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앞뒤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말을 방송에서 해도 되는 거야?"라고 비판하면서, 그 말이 사용된 문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낱말 몇 개를 문제 삼는 것은 김구라로 대표되는 새로운 방송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처럼 한동안 한국 텔레비전을 보지 않다가 다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 친구 질문에 대한 뻔한 답변을 들은 뒤 "아이돌이라고 다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잖아? 이제는 솔직한 게 좋은 시대야"라든가 "(기획사)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도록 시켰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는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방송이라고 하지 못하는 말을 김구라는 스스럼없이 한다. 그가 방송에서 욕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했다손 치더라도,  프로그램 담당 PD들 또한 국회의원에 못지 않은 양식이 있고, 그 양식에 근거한 상식을 바탕으로 한 잣대로 걸러낼 것이다. 양식과 상식의 기준과 잣대가 그저 그렇다면, 방송사 자체 심의 혹은 방송심의원회 같은 데서 지적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같은 시청자들이 먼저 눈을 돌려버릴 것이다.

  '국회의원' 진성호(김구라에게 호칭을 붙이지 않았으니 공평하게 그냥 간다)가 '방송사'와 '문화부'의 국정감사장에서 이틀에 걸쳐 "저 사람(김구라) 좀 빼라"고 요구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김구라의 막말은 방송에서 그동안 꺼려하던 '직설적인 말'이지만 국회의원의 저 말은, 막말로 진짜 '막말'이다. 그가 진정으로 시청자의 언어 순화를 걱정한다면, 내가 만일 그라면, 나는 김구라의 이름부터 문제 삼았을 것이다. "구라, 봉알과 같은 비속어 이름을 어떻게 버젓이 방송에 내보내나?"라고…. 또한 그가 진정으로 시청자에게 끼칠 방송의 해악을 걱정한다면 국회에서의 폭력 장면을 버젓이 내보내는 방송도 문제 삼아야 하지 않나?

  그 의원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상식과 도덕성에서의 '특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아직도 조선일보에 기자수첩을 쓰는 방송담당 기자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설사 기자라 해도 비속어를 문제 삼을 수는 있어도, 누구를 빼라 마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들은 '올해의 막말 톱 10'을 뽑는다면 진성호의 "저 사람 빼라"는 말은 단연 1위이다. 국회의원은 시청자의 언어 교육을 담당한 자도 아니고, 그 또한 시청자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가 무슨 자격과 기준으로 특정인을 빼라, 마라 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김구라 한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김구라를 방송에 내보내는 방송사와 프로그램 제작자와 나처럼 김구라의 직설(독설이라고 하지만 그의 말은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을 능멸하는 발언이다. 김구라 식으로 진성호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네가 뭔데 빼라 마라야?"